[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저출산 해법, 모르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 치러야 한다
중차대한 저출산 문제
통상적 지출 규모의 비용 내에서
해결하려 하니 될 리가 있겠는가
배우 오디션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가 과제라면 참가자들은 어떤 상황을 연기할까? 음침한 실험실에서 두 눈 번뜩이며 정체불명의 용액을 옮겨 담는 모습, 머리 박고 현미경 속 세포를 뚫어지게 보는 모습, 실험용 생쥐에게 이런저런 자극을 가하는 모습 등등. 퀴즈쇼에서 ‘과학의 세부 분야 5개를 말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대부분 물리, 화학, 생물 등을 나열할 것이고 모자라면 컴퓨터학, 전기·전자 등을 더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 행정, 경제 등을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엄연히 사회‘과학’으로 분류되어, 많은 대학에서 이 전공들은 사회과학대학에 소속되어 있다.
비록 과학이라 불리지만 정치, 행정, 경제 등 사회문제를 다루는 연구는 자연 현상을 다루는 연구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사실관계 규명이 어렵다는 점이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는, 피사의 사탑 위에서 무게가 다른 두 개의 쇠공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갈릴레오의 일화는, 실은 제자의 창작물이라는 것이 정설이기는 해도, 사회과학과 구분되는 자연과학의 특징인 ‘실험을 통한 사실관계 규명’을 잘 보여준다.
사회 현상의 인과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고, 각 사회를 형성하는 고유한 역사·문화·제도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탓에 실험을 통한 객관적인 검증이 어렵다. 그래서 정답을 찾기 어렵다. 국가마다 경제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 원인에 대해 오래전부터 기후, 인종, 종교 등 다양한 특성이 거론되었다. 가난한 서남아프리카와 잘사는 서유럽 국가는 기후, 인종, 종교가 다르다. 하지만 그 밖에도 다른 특성은 부지기수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온갖 요인은 서로 얽혀서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탓에, 개별 효과를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실험을 한다는 것은, 다른 요인들의 영향은 통제한 채 관심 대상인 특정 요인의 인과관계만을 따져본다는 의미이다. 사회문제 연구는 그저 수동적으로 관찰할 뿐이지, 연구자가 인위적으로 다른 요인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은 실험과 비슷하게, 다른 요인의 영향이 배제된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연구자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라는 의미로 ‘자연 실험’ 상황이라고 부른다. 자연 실험 상황은 사회 현상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데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향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거의 확실한 MIT 대학의 아제모을루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체제(제도)가 경제성장 차이를 가져오는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이의 근거로 든 것이 남한과 북한의 경제 수준 비교이다. 남한과 북한은 하나의 국가였다. 단일민족으로 동일한 역사·문화·제도를 지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체제가 도입되었다. 그래서 다른 요인의 영향을 통제한 채, 체제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파악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훌륭한 자연 실험 상황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으뜸가는 고민은 저출산이다.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했으나 백약이 무효했고 상황은 악화되었다. 그래서 얼마 전 신년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실증을 통한 저출산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담당 부처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그동안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마련이 부족했다고 자성하면서, 향후 실증연구를 통한 체감도 높은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성장만큼은 아니겠으나 저출산 역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특성과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래서 어떤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관한 멋진 자연 실험 상황이 있다. 바로 공무원과 민간기업에 근무하는 기혼 여성의 출산율 차이다. 공무원과 민간기업 종사자는 모두 동시대의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다.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온갖 사회적 요인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직 직장이 정부냐, 민간이냐만 다르다. 그래서 두 집단의 출산율 차이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부와 민간기업의 여건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의 출산율은 민간기업 종사자보다 크게 높다. 물론 공무원 출산율도 1보다 약간 큰 정도이니 여전히 낮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여건이 공무원만큼 된다면, 지금보다 출산율이 대폭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내 주장에 시큰둥한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걸 여태 몰랐느냐면서. 육아휴직 보장, 정시퇴근 등 일·가정 양립 여건의 취약함이 우리 사회 저출산의 중요 원인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를 몰라서 여태껏 못 고친 것은 아닐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은 고전문학 중 대표적인 사회풍자소설이다. <허생전>의 마지막 대목에서 어영대장 이완은 허생에게 북벌론의 계책을 묻는다. 허생이 첫 번째 계책을 말하자 이완은 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젓는다. 두 번째 계책도 못하겠다 말하고 세 번째 계책도 불가하다고 답한다. 이에 허생이 “내가 세 가지를 알려줬는데, 너는 하나도 행하지 못한다니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쳐야 할 것이다”라고 일갈하니 이완은 줄행랑을 친다.
이 대목은 흔히 실제로 행할 의지는 없으면서 말로만 북벌을 외치는 당시 위정자들의 가식을 비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는 여기에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저출산은 대한민국의 존속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를 통상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규모의 비용 내에서 해결하려 하니 될 리가 있겠는가. 글쎄,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과연 몰라서일까, 못해서일까.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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