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VS제작진 전쟁' 되어버린 '고려거란전쟁'…불편함은 시청자 몫 [MD포커스](종합)
[마이데일리 = 박서연 기자]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원작자와 제작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시청자들의 불만도 상당한 상황이다. KBS가 시청자 청원에 답했지만, 여전히 '고려 거란 전쟁'의 방향성에 대한 의심을 거두진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KBS는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아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을 선보였다. 많은 시청자들이 기다렸던 대하사극인 만큼 '고려 거란 전쟁'은 순조로운 첫 출발을 했고, 시청률 10%를 돌파할 만큼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7회, 18회부터 잡음이 일었다. 방송 말미 강감찬과 갈등을 빚은 현종이 말을 몰다 낙마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고, 붕괴된 현종의 캐릭터 등에 대해 시청자들은 '현종을 금쪽이로 묘사했다. 현쪽이가 됐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이후 '고려 거란 전쟁' 원작 소설 집필자인 길승수 작가는 "드라마 작가가 자기 작품 쓰려고 원작을 무시하고 대본을 썼다", "현종의 낙마는 원작에 없었던 내용이다", "역사적 사실을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고 극본을 썼어야 했는데 안됐다", "드라마가 삼류에서 벗어나길 기원한다" 등의 글로 비판하며, 역사 왜곡 우려 목소리를 냈다.
이에 '고려 거란 전쟁' 측은 23일 제작기를 공개했다. 제작진은 "2022년 상반기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고 이후 전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 장면 및 전투 장면의 디테일을 소설 '고려거란전기'에서 참조했다"면서 "같은 해 하반기 이정우 작가가 '고려 거란 전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대본 집필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정우 작가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한 후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전 감독 역시 이 작가의 의견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회부터 지금까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정우 작가 역시 "저는 이 드라마의 작가가 된 후, 원작 소설을 검토하였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다. 제가 대본에서 구현한 모든 신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창작된 장면들"이라며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라고 전했다.
'고려 거란 전쟁' 측의 입장을 접한 길승수 작가는 "웃기지도 않는다. 확실히 제 소설과 다른 방향성이 있더라. 천추태후가 메인 빌런이 되어서 현종과 대립하며 거란의 침공도 불러들이는 그런 스토리였다"면서 "KBS 드라마 '천추태후'도 있는데, 그런 역사왜곡의 방향으로 가면 '조선구마사' 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고려 거란 전쟁' 전우성 PD는 길승수 작가가 자신의 소설과 스토리텔링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 관련 자문을 거절했다고 밝혔지만, 길승수 작가는 자문을 거절한 바 없다며 "이정우 작가로 교체된 다음에 회의를 갔는데, 이정우 작가가 마치 저의 위의 사람인양 저에게 페이퍼 작성을 지시하더라. 페이퍼 작성은 보조작가의 업무이지, 자문의 업무가 아니다"라면서 "지금이라도 사태를 거짓으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대하사극인데 역사적 맥락을 살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라고 털어놨다.
길승수 작가와 제작진의 계속된 폭로전에 '고려 거란 전쟁' 야율융서 역의 배우 김혁도 의견을 냈다. 김혁은 "너무나 답답해서 제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드라마다. 100% 역사 고증 프로그램이 아니라 고증을 토대로 재창조해서 드라마로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역사 왜곡 논란에 처한 '고려 거란 전쟁'에 시청자들은 작가 교체 요구 청원을 했다.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는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전개를 원작 스토리로 가기를 청원합니다'와 '고려거란전쟁의 완성도를 위한 청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글이 올라왔고, 두 청원글 모두 1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에 KBS 측은 25일 "최근 불거진 여러 혼란에 대해 제작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죄의 말씀 올린다. 또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방송 내용에 관해 시청자분들의 애정 어린 비판과 따끔한 질타의 목소리 역시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제작진의 입장도 전했다. 제작진은 "KBS는 2021년경부터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를 준비하였고 그의 일환으로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을 기획했다.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고려시대의 경우 역사의 행간을 메우기 위한 작가의 상상력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드라마만의 재미와 감동을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과장'과 '왜곡'을 피하기 위해 제작진은 역사서에 기초한 고증과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면밀하게 대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길승수 작가의 소설 '고려거란전기'의 판권을 구매하게 되었고 전투 장면 등의 고증에 도움을 받았다. 판권 구매한 소설 '고려거란전기'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참고 자료 중 하나였고 '고려 거란 전쟁'의 드라마 내용은 1회부터 사료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새롭게 창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시청자들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 잘 알고 있다"는 제작진은 "'고려 거란 전쟁'은 남은 회차를 통해 고난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개혁하여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동북아에 평화의 시대를 구현한 성군 현종의 모습을 더욱 완성도 있게 그려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고려 거란 전쟁'은 K-콘텐츠 경쟁력 분석 전문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 공식 플랫폼 펀덱스에서 발표한 1월 3주 차 TV-OTT 통합 화제성 드라마 부문 2위를 차지한 후 4주 차에는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요즘 가장 즐겨보는 방송영상프로그램을 물은 결과 '고려거란전쟁'은 선호도 4.5%로 2위에 올랐다.(1월 16일~18일 조사)
화제성과 선호도 모두 잡은 '고려 거란 전쟁'이지만 '대하사극'이 '웹소설' 같다는 평을 받는 데엔 제작진의 책임이 따른다. 시청자 청원에 대한 제작진의 응답으로 원작자와 제작진의 폭로전이 끝이 날지, 또 '고려 거란 전쟁'의 향후 전개는 왜곡 없이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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