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와이프' 송재림 "말 많이 해 입병도...연극 너무 재밌네요"
"새로운 자극 필요해 용기...미뤄둔 과제 끝낸 기분"
"대사 많아 압박감 커...매일 10시간 이상 연습했죠"
"아이바, 자기 자신에 솔직한 인물...제 성격도 달라졌어요"
2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MHN스포츠 장민수 기자) "연극은 관객이 완성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할 때마다 그게 조금씩 완성되는 것 같아요. 공연마다 매번 바뀌는데 너무 재밌어요. 왜 배우들이 연극을 무서워하면서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아요."
배우 송재림이 '와이프'를 통해 첫 연극에 도전했다. 2009년 데뷔 후 활발히 연기 활동을 펼쳐오던 그가 1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이유는 뭘까. 당연히 배우로서 가진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는 "그동안 관성에 의해 해왔던 것 외에 저를 낯선 환경에 두는 자극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대본이 왔을 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이제 나이가 만 38세로 40세가 됐다. 그런 기점에서 무모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미뤄왔던 숙제 같았는데 지금 그 과제를 끝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와이프'는 1959년부터 2042년까지 4개의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과 퀴어의 삶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 주체성, 편견, 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전한다. 송재림은 로버트, 아이바(28세) 역을 맡았다. 배우들은 1인2역 이상을 소화함은 물론, 동성애를 연기해야 한다. 첫 연극인데 쉽지 않은 작품이다.
송재림 역시 처음 대본을 보고는 "딱 봐도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이어 "나와 정반대 성격의 인물이다. 표면적으로만 봐도 난 말이 느린데 그 친구는 말이 빠르고 많다. 가끔 어렵고 다른 것에 끌릴 때가 있듯이 '와이프'가 그랬다"라며 새로운 표현에 대한 이끌림이 컸다고 밝혔다.
2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10시간 이상씩 연습에 몰두했다. 정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 입에는 항상 펜을 물었고, 속사포로 쏟아지는 대사를 암기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다. 평소 성격과 달리 말을 많이 하느라 입병까지 났을 정도라고. 그러나 그마저도 그에게는 새로운 재미로 다가왔다고 한다.
"대사가 엄청 많아서 압박감이 컸어요. 제 캐릭터 대사를 형광펜으로 그어보니까 펜 하나를 다 쓰게 될 정도였죠. 또 외우는 것뿐 아니라 메시지를 찾아 전달해야 하잖아요. 연출님, 배우들과 함께 찾아가면서 했는데 그런 과정이 너무 재밌었어요."
무대 위 그가 맡은 인물들은 정반대 성격을 지녔다. 로버트는 딱딱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아이바는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는 게이, 핀은 조심스럽고 눈치 보기 바쁜 남자. 당연히 연기의 톤도 달리 가져가야 한다.
송재림은 "로버트의 꼰대스러움을 연기하기 위해 딱딱하고 무겁게 갔다. 반면 아이바는 진정성 있는 대사를 하기 위해 재밌게 놀아야 한다. 또 인터미션 전에 텐션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말도 빠르고 톤도 높게 잡게 된다. 핀 같은 경우는 다른 인물들 틈에 잘 스며들 수 있게 보조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송재림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아이바로 존재할 때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특징적인 요소들을 잘 살려내 관객을 사로잡는다. 또한 남녀를 떠나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감정을 표현해낸다. 그가 선보이려는 아이바는 어떤 인물일까.
"아픈 상황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친구죠. 본인이 생각하는 퀴어함, 나다운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진 친구고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요. 그러니까 상대에게 솔직함을 드러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에릭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여린 마음도 찾아볼 수 있고요."
성소수자를 연기하는 건 데뷔 당시 뮤직비디오(메이다니 '몰라ing')를 제외하고는 처음이라고 한다.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그들도 그냥 사람의 한 형태이지 않나"라며 공감이 어렵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대신 극중 인물이 살던 시대의 모습 등을 참고하며 준비했다.
"퀴어에 대한 편견 같은 건 없어요. 그들도 그냥 사람의 한 형태잖아요. 또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고요. 너무 흉내만 내면 스테레오타입이 되니까 최대한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 건 있어요. 근데 톤을 높게 잡는 건 사실 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할 수 없어서예요. 호흡이 부족해지거든요."
꽤 오랜 시간 아이바로 지내다 보니 송재림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말의 속도와 투가 달라지는 건 물론, 성격도 밝아졌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수동적으로 대답만 했다면 이제는 말을 하려고 한다. 주관을 말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려고 하는 게 더 생겼다. 연극하면서 입이 풀리기도 했고, 감정도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연극은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많은 변화를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관객과 함께하는 연극만의 재미에 빠졌다는 그는 "앞으로도 기회가 오면 계속 연극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에게 찾아온 수많은 변화들. 그것이 곧 송재림이 생각하는 '와이프'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극중 아이바 28세를 58세가 완성시켜요. 한 인물의 청춘과 안주, 이후의 삶까지. 아이바를 두 배우가 연기하고 다른 색깔로 보여주면서 변해버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 그러던 중에 수잔나의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대사를 들으면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건 뭔가, 변해간다는 사실인 건지 사람들 사이 관계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는 건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돼요."
사진=글림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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