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에 돈 범벅인 여야 저출생 공약…사교육 대책은 또 빠졌다
출생 후 발목 잡는 ‘월평균 52만원’ 사교육비 경감책은 없어…”각종 대책 효과마저 경감될 수밖에”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같은 날 나란히 저출생 대책 공약을 발표했다. 도합 31조원이 드는 매머드급 정책으로 빼곡히 채워져있다. 그런데 면면을 살펴보면 기존 정책을 확장하는 데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정작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사교육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 한계를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1월18일 오후 저출생 대책인 '일·가족 모두행복'을 발표했다. 총선 1호 공약이다. 앞서 민주당도 이날 오전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을 내놨다. 양당은 육아휴직 신청 시 자동휴직을 추진하는 방안을 동일하게 발표했다. 그 외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결이 달랐다. 국민의힘은 '시간'을, 민주당은 '돈'을 주는 데 초점을 뒀다.
국민의힘은 '노동', 민주당은 '집값' 저격
우선 국민의힘은 남성의 1개월 유급 출산휴가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임신 중에도 육아휴직 사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남성의 출산휴가는 10일이고, 여성과 달리 출산한 후에야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그 밖에 국민의힘은 육아휴직 급여를 현행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육아휴직을 중소기업이 적극 시행할 수 있도록 대체인력 지원금을 2배 올린 160만원으로 정하겠다고 했다. 자녀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연간 5일의 유급휴가를 추가 지원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주로 기존에 있던 휴직제도의 확대 적용과 그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완화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민주당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가진 모든 국민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을 하지 않아도 휴직급여를 주겠다는 뜻이다. 또 지금은 8세 미만 자녀에게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주고 있는데, 민주당은 이에 더해 8~17세에게 월 20만원씩 주겠다고 했다. 추가로 0~18세 자녀가 있는 부모의 펀드계좌에 정부가 월 10만원씩 입금해 주기로 했다. 사실상 자녀가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달 20만~3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여당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주거 지원책이다. 민주당은 모든 신혼부부가 가구당 10년 만기로 1억원을 대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을 차등 감면해 준다. 셋째를 낳으면 원금을 전액 탕감해 주니 사실상 1억원을 무상 지급하는 셈이다. 그 밖에 2자녀 출산 시 24평짜리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을, 3자녀 출산 시 33평짜리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대책은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 때부터 줄곧 강조해온 보편복지 철학과 맞닿아있다.
여야의 공약을 보면 각각 다른 저출생 원인을 상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노동', 민주당은 '집값'이다. 둘 다 근거도 있다. 1월3일 국토연구원은 주택 가격 급등이 출산율 저하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또 OECD는 작년 말 한국의 장시간 노동문화를 걸림돌로 지적했다. 두 요인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역시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실효성과 창의성이다. 국민의힘이 확대하려는 육아휴직 지원책은 이미 정부에서 시행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부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육아휴직 지원금을 지급해 왔고, 작년부터는 대체인력 지원금도 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7∼10월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5038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답한 곳은 전체의 52.5%에 그쳤다. 심지어 20.4%는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종 지원금에도 5곳 중 1곳은 여전히 '육아휴직 불모지'인 것이다.
또 다른 맹점은 대체인력이다. 여당은 대체인력 지원금을 늘린다지만 중소기업은 단기간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정부도 같은 이유로 대체인력 지원금을 2021년 폐지한 적이 있다. 또 정규직으로 대체인력을 뽑으면 추후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후 업무 중복이 발생할 텐데 이에 관한 대책은 없다. 그 밖에 복귀 후 승진에 불이익을 주거나, 육아휴직자로 인해 업무 부담이 커진 직원들이 눈치를 주는 분위기도 장애물이다.
민주당 공약 역시 기존에 시행 중인 육아휴직과 아동수당의 대상∙범위만 넓혔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발견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돈을 줘서 아이를 낳게 하자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란 지적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2009~21년 기초단체의 저출생 대책을 분석한 결과, 출산장려금 지급보다 지역 인프라 확대가 출산율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무분별한 현금 지원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킬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지급 수당 웃도는 사교육비…출산율 더 떨어질 수도
특히 사교육 시장의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교육부와 통계청의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전년보다 11.8% 늘어난 41만원으로 집계됐다. 사교육 참여 학생만 따로 분류하면 52만원이다. 민주당이 초·중·고 자녀에게 매달 주겠다는 지원금(20만~30만원)을 웃돈다. 결국 지원금이 사교육 시장으로 고스란히 유입돼 비용 인상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해 12월 "월평균 사교육비가 1만원씩 증가할 때마다 합계출산율이 0.012명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 말대로라면 지원금 증액이 사교육이란 함정 때문에 장기적으론 오히려 출산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정적으로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하다. 국민의힘은 필요 예산을 3조원으로 추산했고 민주당은 28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봤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특별회계를 구성해 이를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구체적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제시한 28조원은 올해 정부가 저출산 관련 5대 핵심과제에 배정한 예산 15조4000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은 시사저널에 "여야가 득표에 도움도 안 되는 인구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건 나름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정책 발표 시기가 너무 늦었고 출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한계"라고 지적했다. 여야 모두 사교육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부분도 단점으로 꼽혔다. 이 원장은 "이제 출산을 해도 1명씩만 낳을 텐데 그러면 교육열이 집중돼 사교육비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면 각종 저출생 대책의 효과가 경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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