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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4. 1. 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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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

14 _바라카 작은도서관 정신

바라카의 사춘기 아이들은 남들 옷, 여행지, 맛집 자랑을 들을 때면 초라함에 주눅 든다. 기학과 현경은 2년 전 경기도 포천에 밭을 샀다. 아이들이 흙을 밟고 먼 산을 보며 시야를 틔워 사각 스크린이 아닌 실제 세상에 살도록 모두의 주말농장을 마련했다. 감자농사를 함께 지어 수확물을 나눴다. 바라카 작은도서관이 자연 속 오아시스이길 바란다.

바라카 작은도서관에 오는 한 이집트 가정의 막내 돌잔치 사진이다. 바라카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잔치에 한국인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대학생 멘토 선생님들이 함께 축하하고 있다. 왼쪽 뒷줄에서 세번째가 바라카 작은도서관장인 이현경 선생님. 앞줄 맨 오른쪽이 김기학 이주민가정 지원센터장이다. 김기학 제공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우사단길 고갯마루에 있는 바라카 작은도서관. 2층 여학생 방에서 아랍어 선생님을 인터뷰하는데 방문 너머에서 왁자함이 전해졌다. 초등학교 겨울방학식 날이었다. 거실로 나오자 곱슬한 갈색 머리를 위로 묶은 두 소녀가 큰 눈을 생글거리며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몇살이세요?”

절대 순수의 명령에 무의식이 먼저 조복한 듯 내 입에서 답이 쏟아졌다.

“오십두살인데요.”

“어머나! 정직한 어른이시네요. 다른 어른들은 그냥 백살이라고 하는데 참 착하세요.”

‘그렇지. 어른들은 고분고분하면 착하다 하니, 나도 이 아이들한테 착한 어른이 된 것이지.’ 나도 물었다. “몇 살이에요?”

소녀들이 외쳤다. “아홉살요.”

첫 만남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환대의 합창이라고 해야 할까?

2011년, 김기학 목사와 아내 이현경은 이집트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민 항쟁이 일어나 독재정권이 무너진, 그러나 군부가 집권한 이집트 ‘아랍의 봄’ 시기였다. 꼬박 10년 만이다. 한국이슬람연구소에서 일했던 현경이 영국 런던에서 이슬람학 석사 학위를 받는 동안 기학은 신학공부를 이어가며 종교 간 대화에 나섰고, 이슬람교 또한 세상 모든 이를 귀히 섬기자는 자신의 가치와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현경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무슬림들이 세운 심장병 어린이 지원단체에서 활동했다.

7년 이집트 활동을 접고 한국에 온 기학과 현경은 다시 이슬람계 이주민들 곁에서 짐을 풀었다. 한국문화에 낯설고, 아직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이집트, 예멘, 모로코,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사람들로 대부분 난민이었다. 그들은 싼값에 나온 이태원 재개발 예정지 빈방들에 모여들었고, 기학과 현경은 이주민가정 지원센터를 열었다.

이집트 난민은 아랍의 봄 때 반정부 시위를 하다 탈출한 사람과 생활고로 떠나온 사람이 섞여 있고, 모로코인은 모두 먹고 살길을 찾아 온 사람들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제난민이 꼭 중남미에서 북미로 올라오는 행렬, 사하라사막 이남에서부터 올라와 면도날 박힌 철망으로 뛰어들며 유럽으로 가려는 행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로코에서는 대학을 졸업해도 할 일이 없다. 특히 대졸 여성은 80%가 무직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한국에 와 난민신청을 하고 임시비자를 6개월마다 갱신하며 의료보험 없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 엄마들과 어린아이들은 온종일 반지하에 틀어박혀 있고, 이태원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2018년 봄, 예멘에서 피난 온 자밀라(가명) 가족이 기학을 찾아왔다. 이태원 일대 방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기학은 이들을 센터 사랑방에 재우고 일주일 만에 살림집으로 옮겨줬다. 문제는 자밀라였다.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데, 한글은커녕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했다. 현경이 옆에 끼고 가르쳤다. 석달 만에 학교에 입학했고, 소문이 나면서 이집트, 이라크, 예멘에서 온 여섯 아이가 찾아왔다. 그렇게 한국어 교실이 시작됐다. 그해 7월, 마침내 이주민 엄마와 아이, 여성을 위한 바라카 작은도서관이 탄생했다.

2022년 12월 초 처음으로 바라카를 찾았다. 오후 1시가 지나 보광초등학교 아랍어 보조교사 일을 마치고 돌아온 현경이 냄비를 불에 올리고 간식을 준비하며 종종거렸다. 문득, ‘공부방은 모두의 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 모두의 서재이고, 공원이 모두의 뜰이듯. 동네에 바라카 같은 곳이 있다면 옹색하게 살더라도 아이들은 공부방에 간식과 엄마 같은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겠다 싶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2019년 말 여학생을 위한 도서관을 따로 열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도서관은 밤늦도록 불을 밝혔다. 학교가 온라인수업을 하게 되면서 바라카 중고생 중에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집에 인터넷이 없거나, 있어도 어린 동생들과 한 방에서 북적거려야 했기 때문이다. 기학과 현경은 이들에게 학교 수업을 듣도록 방을 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성적을 알게 됐다. 심각했다. 초등학생 때 와서 6개월 만에 한국어를 익힌 아이들은 부모의 입이 되어 출입국관리소, 주민센터, 은행 등에 동행하느라 학교를 자주 빠졌다. 바라카 선생님들은 야학을 열기로 결심했다. 2023년 봄, 바라카 맏이들인 22살 20살 여학생이 경희대와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스승들도 제자들도 무지무지 고생한 2년이라고 숨을 크게 내쉰다. 다섯명으로 시작한 야학에 지금 열명이 온다.

바라카 식구들이 사는 우사단길 주변 이슬람사원 아래로는 구석구석 집이 집을 기대어 이어진다. 계단인가 싶어 오르면 골목이고 지하실인가 싶어 머뭇머뭇 내려가면 또 골목이다. 이슬람사원 앞에서 기학을 만나 안내를 받고서야 이주민 가정지원센터 사랑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자 눈이 시원해졌다. 푸른 벽장식이 터키블루가 지중해 색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했다. 매일 사랑방에 들린다는 아랍 할아버지가 건넨 커피잔을 받고 비잔틴 문명의 후예가 즐기는 일상의 품격을 깨우쳤다. 그들의 궁핍만 보며 나는 유구하고 아름다운 이슬람문화를 놓치고 있었다. 떠나올 때 고르고 골라 넣었을 세간일 텐데.

지금 바라카 식구 중 반이 보금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슬람사원 아래 한남 재개발 3구역에 사는 가족들로 5월까지 나가야 한다. 기학은 전 주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세아이 아빠를 경기 남양주 마석으로 데려가 둘러보도록 했다. 그 아빠는 그날 새벽 4시에 집을 나와 6시반 곤지암 인력사무실에 도착해 운 좋게 반나절짜리 일을 잡아 하고, 다시 이태원으로 돌아와 기학과 함께 마석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 전철역에서 그 아빠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종일 굶었던 것이다.

그는 2년 전까지 주한 아프가니스탄대사관 직원이었다. 탈레반에게 아버지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카불대학교를 나와 영어에 능통한 재원인데, 탈레반 재집권으로 난민이 되었다. 그와 같은 처지의 아빠들이 세명 더 있다. 기학은 당장 떠나야 하는 3구역 식구들에게 남양주, 포천 일대를 보여주고 있다. 공단이 있고 이주민이 살아 혐오가 덜하기에 안내하는데 부모들은 바라카가 어디로 갈 지부터 정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곳에 먼저 가 있겠다고. 하지만 2구역에 속한 바라카는 2025년 여름까지 기한이 남아있는데, 아직 정해진 게 없어 답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기학과 현경은 도약을 설계하고 있다. 자연 가까이에서 편견과 자본주의의 영향을 덜 받으며 선주민과 어우러지는 생태마을을 이루는 것이다. 공단으로 가도 이태원에서 텔레비전으로만 자연과 세상을 보던 쓸쓸함은 반복될 터다. 바라카의 사춘기 아이들은 남들 옷, 여행지, 맛집 자랑을 들을 때면 초라함에 주눅 든다. 기학과 현경은 2년 전 경기도 포천에 밭을 샀다. 아이들이 흙을 밟고 먼 산을 보며 시야를 틔워 사각 스크린이 아닌 실제 세상에 살도록 모두의 주말농장을 마련했다. 감자농사를 함께 지어 수확물을 나눴다. 바라카 작은도서관이 자연 속 오아시스이길 바란다.

“저는 여기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웠어요. 모두가 서로를 환대해요. 다름을 평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바라카를 채우는 이 에너지는 이곳을 다녀간 모두의 태도를 타고 사회로 흘러가고 있어요.”

영어를 가르치는 자하라 선생님의 말이다. 타인에 대한 거리감을 덜어내게 되었다며 봉사하러 왔던 수많은 한국인도 같은 고백을 한다고 전했다. 사랑, 기쁨, 연민도 사나움처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전염된다. 마음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바라카는 축복이라는 뜻의 아랍어다.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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