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드 하면 샤넬? 원조는 양치기 패션이야

2024. 1. 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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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인문학
우리가 몰랐던 트위드의 '과거'
스코틀랜드 직조방식 뜻하는 '트윌스'
런던 상인이 잘못 읽어 트위드로 불려
따뜻한데 질기고 방수성까지 탁월해
사냥 즐긴 男귀족 스포츠웨어로 유명
코코 샤넬, 부자 남친 옷 입고 "이거야"
스커트 등 우아한 여성복으로 재탄생
'올드머니 룩' 정석…다이애나도 애정
재클린 케네디의 핑크 트위드 슈트.(아래 사진)


멋을 낸 듯 아닌 듯,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소재로 승부하는 ‘올드머니 룩’. 요즘 패션계를 장악하고 있는 트렌드다.

벼락부자들의 과시용 패션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대대로 부유한 집안 출신의 후손들 같은 패션. 큼직한 브랜드 로고보다는 우아한 실루엣과 은은한 발색의 고급 소재 옷들이 당분간 패션계의 주인공이 될 기세다.

올드머니 룩을 대표하는 최고의 아이템은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물려준 샤넬 트위드 재킷이 아닐까? 럭셔리 브랜드가 그야말로 소수의 전유물이던 시절, 상견례나 결혼식 같은 집안 대소사를 빛내기 위해 챙겨 입던 단아한 트위드 말이다. 샤넬 트위드 재킷을 물려받아 입고 있는 자가 그야말로 진정한 올드머니 룩의 승자다.

우아한 여성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트위드라는 이름은 원래 소재를 일컫는 말이었다. 태생은 자연을 즐기는 남성을 위한 거칠고 투박한 원단에서 시작됐다. 영국 시골의 넓은 자연을 배경으로 양치기부터 여우와 꿩 사냥, 그리고 골프와 하이킹을 즐기는 남자들을 위한 옷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이런 배경을 지닌 까닭에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트위드 재킷이나 슈트를 물려받아 입고 있다면, 이 또한 진정한 올드머니 룩의 남성적 재현이라 할 수 있겠다. 올드머니 룩의 진수, 금수저들의 스타일은 트위드를 모르고서는 불가능하다. 지금부터 함께 트위드에 대해 알아보자.

 사냥꾼과 양치기의 옷에서 귀족의 패션으로

트위드라는 이름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의한 것이었다. 1830년대 초 런던의 상인 제임스 로크는 스코틀랜드의 원단 제조공장으로부터 받은 주문서에 흘려 쓰인 ‘트윌스(tweels)’라는 단어를 ‘트위드(tweed)’로 잘못 읽었다. 열혈 사업가였던 그는 ‘트위드’라는 이름으로 원단을 팔았고, 이 단단하게 짠 거친 울 원단의 이름은 이후 트위드로 고착됐다. 원래 원단을 직조하는 방식을 일컫는 ‘twill’의 스코틀랜드 단어 ‘tweel’이 쓰였던 것인데, 원단 공장들이 즐비하던 스코틀랜드 트위드강의 이름과 혼동한 것으로도 추측된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이 튼튼하고 질기고 따뜻하며 방수성까지 탁월한 트위드는 너른 땅을 소유한 상류층의 시골 별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냥과 낚시 혹은 영지 산책을 위한 아웃도어 의류로 크게 활용되며 귀족들에게 사랑받는다. 그러다 에드워드 시대를 맞아 상류사회의 유유자적한 삶을 동경하던 중산층의 관심을 끌었다. 세기말적 암울함으로 마무리된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에드워드 7세의 시대가 오며 영국은 그야말로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격앙된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다. 사냥은 물론 골프, 자전거, 그리고 초기의 자동차를 즐기던 이들은 너나없이 튼튼하고 질긴 트위드를 입고 화려함을 뽐냈다.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 웨어에도 트위드가 쓰였다. 당시를 배경으로 등장한 스코틀랜드 작가 케네스 그레이엄의 1908년작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엔 모험심 가득한 두꺼비 주인공이 온통 화려한 트위드를 즐겨 입은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코코 샤넬, 재벌 연인의 옷을 걸친 뒤…“유레카”

트위드는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때, 이 매력적인 소재를 천재 디자이너인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1920년 초 당시 세계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이던 웨스트민스터 공작 2세와 염문을 뿌리던 코코 샤넬은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트위드와 운명적인 조우를 한다.

스코틀랜드의 예측 불허 날씨에 쌀쌀함을 느낀 샤넬은 연인의 낡고, 조금은 해진 트위드를 우연히 걸치게 된다. 오래 입어 낡고 해어져 실밥이 튀어나온 그 재킷은 샤넬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고 샤넬의 눈은 반짝였다. 질기고 뻣뻣하고, 시골스러운 데다 남성적이기만 한 트위드에 부드럽고 우아하며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더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1924년부터 스코틀랜드의 방직 공장에서 창조적인 컬러 조합으로 트위드를 생산하기 시작한 샤넬은 1927년부터 본격적으로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를 여성복으로 제안했다. 획기적인 소재와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의 지위를 반영한 디자인은 금세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아예 1930년대부터는 프랑스 북부로 방직공장을 옮겨 실크나 면 같은 좀 더 가벼운 소재를 섞어 오늘날 여성들에게 알려진 바로 그 트위드 원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제니와 바비까지…트위드의 벨 에포크는 ‘지금’

샤넬의 시도는 벨 에포크 시대를 통해 강조되던 여성성의 굴레를 벗겨 더 편하되 우아한 옷으로 여성들에게 패션의 자유를 선물했다. 이후 급진적인 디자이너들은 파리를 무대로 더 자유로운 소재와 디자인을 시도하며 트위드를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성장시켰다.

샤넬 트위드는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부터 오늘날 블랙핑크 제니는 물론 지드래곤(GD)과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유명한 트위드는 미국의 역사 속에 있다. 1963년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범인의 총알이 대통령의 머리를 관통하던 현장에서 대통령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착용했던, 짙은 핑크와 네이비 블루의 샤넬 슈트가 바로 그것. 부인 바로 옆에서 피살된 케네디 대통령의 피와 파편으로 범벅이 된 트위드 슈트는 원래 재클린 케네디가 가장 사랑했던 옷이다.

영화 ‘젠틀맨’ 주인공인 매슈 매코너헤이의 트위드 패션

한편 오리지널 트위드 본연의 남성성도 꾸준히 유지돼왔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끈 미국의 아이비 룩과 프레피 룩은 미국의 실용주의와 함께 트위드의 인기를 견인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몇 년간 힙스터의 등장과 맞춤복에 대한 관심으로 또다시 큰 사랑을 받게 된다. ‘트위드 런’이라는 단체는 트위드를 입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행사로 전 세계 대도시에 트위드의 매력을 알렸고, 젠틀맨이 등장하는 영화들엔 어김없이 트위드 슈트를 입은 남자들이 매력을 발산한다.

트위드의 매력의 끝은 어디일까. 실수로 불린 이름치고는 그 생명력도, 그리고 패션에 미친 역사적 존재감도 대단하다. 아름다운 트위드의 명성에 기여하고 싶다면, 아니 적어도 올드머니 룩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 ‘젠틀맨’ 속 매슈 매코너헤이의 트위드, 그리고 영화 ‘바비’의 트위드를 찾아보기 바란다. 마고 로비가 입은 트위드는 오래전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 전성기에 소개된 클라우디아 시퍼의 옷을 부활시킨 결과다.

이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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