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27일부터 확대… "문 닫아야 하나" 영세사업장 ‘대혼란’
권구성 2024. 1. 25. 18:23
유예 개정안 여야 합의 끝내 불발
50인 미만 94% “준비 안 됐다”
처벌위주 제도 개선 전혀 안돼
소상공인 “모두 범법자 될 판”
대통령실 “현장지원 신속 추진”
사업주 안전·보건의무 기준 모호
“안전 투자보다 서류 준비만 급급”
경영계 “유감”… 한국노총은 “환영”
50인 미만 94% “준비 안 됐다”
처벌위주 제도 개선 전혀 안돼
소상공인 “모두 범법자 될 판”
대통령실 “현장지원 신속 추진”
사업주 안전·보건의무 기준 모호
“안전 투자보다 서류 준비만 급급”
경영계 “유감”… 한국노총은 “환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25일 여야 합의 불발로 끝내 무산됐다. 경영계와 소상공인들의 우려 속에 지난해 9월 여당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5개월여간 공회전을 거듭한 끝에 전면 시행 이틀을 앞두고 무산된 것이다. ‘법 조항의 모호성’, ‘처벌 중심의 재해 대책’ 등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에도 제도를 손보려는 정치권의 노력 없이 모든 책임을 영세 사업주에게 떠넘기게 됐다. 당장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의 동네 식당과 빵집, 카페 등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 오르면서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가게 문을 닫으라는 거냐”는 원성이 터져 나온다.
◆“중소기업인 범법자 될 위기”
이날 국회 본회의는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의 2년 유예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데드라인이었지만,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 본회의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중대재해법은 부칙을 제외하면 조항이 16개로 단출하다. 개정안은 부칙의 유예 시기를 2년 더 연장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개정안 처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산업안전보건청 연내 설치 문제를 풀지 못해서다. 소상공인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정쟁 탓에 민생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규탄대회를 열고 “수많은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은 유예가 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폐업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조건을 붙이며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는 오만하고 비정한 정치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선 당 회의에서 “정부에서 제가 이야기한 조건에 대해 어떤 것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어려운 여건에 처한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정부는 법 시행에 따른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도 중소기업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지 말고 여야가 함께 대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월1일 본회의가 예정된 만큼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 이후라도 여야가 보완 입법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여당과 경영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를 촉구한 것은 이 법이 사업주의 ‘처벌’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은 사업주에게 떠넘기는 구조인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의 영세 사업장에서는 안전을 위한 인력 배치나 투자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적인 예가 안전과 보건을 담당하는 인력을 배치하는 문제다. 제조업 등의 상시 근로자 20∼29명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 담당자를 1명 이상 둬야 하는데, 중소 사업장의 여건상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1월 50인 미만 사업장 105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한 사업장의 94%가 ‘법 적용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의 45%는 중대재해법이 규정한 안전보건 담당자가 없다고 했고, 안전보건 담당자가 있는 기업의 57%도 사업주나 현장소장이 업무를 수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한성 한국파스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협력업체 20곳이 모두 50인 미만 사업장”이라며 “당장 27일부터 이들 사업체에 법이 적용돼 협력업체가 부담을 느끼면 우리도 영향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특히 코로나19의 타격이 큰 중소기업들은 미처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이란 변수를 맞이하게 됐다. 박평재 한국표면처리협동조합 이사장은 “법을 안 지키겠다는 게 아니라 지킬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라며 “중소기업인이 모두 범법자가 될 위기”라고 토로했다.
중소 사업장이 중대재해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컨설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절반 이상이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50인 미만 사업장 83만곳 중 컨설팅과 기술지도를 받은 곳은 43만곳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지원을 총동원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설명했다. 고위험 사업장 8만곳 중 컨설팅을 마친 곳은 1만7000곳에 불과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본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을 열고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실효성 논란 여전
제도 시행 3년 차를 맞은 시점에서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2020년 1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과 2021년 1월 제정된 중대재해법은 처벌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업주의 경각심이 사고를 예방할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은 통계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중대재해법의 시행 첫해인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1년간의 사망자가 644명, 사망사고는 611건으로 집계됐다. 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21년 사망자 683명, 사망사고 665건에 비해 각각 39명(5.7%), 54건(8.1%)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시행 첫해 법이 적용된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범위를 좁히면 사망자가 256명으로 전년도의 248명보다 8명 증가했다. 반면 법이 시행되지 않았던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사망자가 388명으로 39명 줄었다.
지난해의 경우 1년치 통계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 3분기까지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서 사망자 459명, 사망사고 449건으로 각각 51명, 34건 감소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가 192명으로 전년 대비 10명(4.95%) 감소했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의 감소폭(13.31%)보다 낮았다.
경영계는 유감을 표했다. 경총은 “국회가 하루속히 법 적용 유예 연장 방안과 산업재해 취약 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 마련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이 환영의 뜻을 밝히며 “정부와 국회, 사용자 단체가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 의무를 준수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권구성·이지민·조병욱·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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