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칼럼] ‘윤심’ ‘찐명’ 공천의 역습

김광덕 논설실장·부사장 2024. 1. 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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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박 공천·옥새 파동으로 朴정부 붕괴
‘6공황태자’ 권력 잃자 동행 의원 전무
충성 기준 공천해도 패배하면 다 떠나
싸움꾼 아닌 살림꾼 공천으로 ‘새 바람’
[서울경제]

“권력을 잃으면 배우자와 자식 빼고 다 떠나간다.”

권세가 있을 때는 빌붙고 권세가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 인심을 뜻하는 ‘염량세태’를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부나방’들이 몰려드는 대선 후보 경선의 막이 내린 뒤 풍경을 보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여야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나 캠프 인사들의 경우 측근들이 가장 먼저 곁을 떠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의 특등 공신이었던 박 전 의원은 사조직 ‘월계수회’를 만들어 관리했다. 그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 실세였을 당시 월계수회 회원은 무려 180만 명, 관리 회원은 8만 명에 이르렀다. 그는 원내 중심의 ‘대지회’도 만들었다. 1992년 4월 총선 직전에 대지회에 발을 담근 국회의원은 63명에 달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박 전 의원이 반발해 그해 10월 탈당할 때 동행한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니 “잘 보이려는 사람들에게 공천과 자리를 줘봐야 결국 다 꽝”이라는 웃픈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공천’은 이내 부메랑을 맞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11월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진박 공천’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진박 감별사’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에 반발해 ‘옥새 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여권은 역풍을 맞았다. 당초 총선 승리가 예상됐던 여당은 대패했고 이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당초 ‘진박’ 인사들을 대거 당선시켜야 박 전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 실제로는 정반대로 전개됐다.

4·10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착수한 양대 정당의 요즘 상황은 8년 전 ‘추억’을 소환한다. 현역 의원들을 물갈이하고 그 자리에 여야 보스에게 맹종하거나 아첨하는 인사들을 내리꽂으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에서는 각각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 공천’ ‘찐명(진짜 친이재명계) 공천’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국민의힘 쪽에서는 용산 대통령실 참모 또는 주요 당직을 지냈으나 실력·자질이 모자란 인사들이 ‘윤심 팔이’를 하면서 영남·강남권 등 텃밭 지역구를 노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찐명’ 공천을 무리하게 강행하려는 광경은 더욱 가관이다. 민주당 예비 후보들 사이에 “내가 이재명 대표와 더 가깝다”는 경쟁이 가열되는 것은 ‘진박 감별사’를 연상시킨다. 친명계 인사들은 비명계 현역 의원 지역구 출마를 잇따라 선언하면서 해당 의원을 겨냥해 “수박(배신자)을 뽑아버리자”고 외치고 있다. 민주당 비례대표 이수진 의원이 불과 11일 사이에 서울 서대문갑 출마-불출마-경기 성남 중원 출마 선언 등으로 오락가락 행태를 보인 것도 중원의 비명계 윤영찬 의원을 저격해 공천을 따내기 위한 노림수다.

그러나 ‘윤심’ ‘찐명’ 공천이나 ‘친한(친한동훈 비대위원장)’ 공천을 시도한다면 역습만 초래할 것이다. 만일 총선에서 진다면 계파나 충성도를 고려해 공천한 것은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공천을 도와준 보스를 따를 것으로 믿었던 의원들이 슬그머니 발을 뺄 것이다. 외려 공정한 공천으로 총선에서 이기면 당 지도자의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선거에서는 구도와 이슈·공천 등의 조합에 의해 ‘바람’이 형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천이 결정적 키가 된다. 순풍을 만들어내려면 적정선에서 물갈이를 잘하되 실력과 자질·도덕성을 두루 갖춘 인재들을 선발투수로 내세워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양대 정당이 각각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을 영입한 것은 눈길을 끈다. 여야는 총선 때마다 일부 최고경영자(CEO)들을 공천해 들러리로 세웠지만 큰 정치인으로 발돋움한 경제인은 별로 없었다. 끝없는 정쟁으로 말싸움에 익숙하지 못한 기업인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려면 능력과 품격을 갖춘 전문가들을 국민의 대표로 뽑아야 한다. 그래야 여의도에 ‘권력 싸움꾼’이 아닌 ‘나라 살림꾼’이 넘쳐나 대한민국호도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덕 논설실장·부사장 k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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