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아빠와 아들

2024. 1.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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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전 중에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아빠와 아들이 서 있는데 멀리서 볼 때는 부자인지 형제인지 언뜻 구분이 안 되었다.

이 때문일까? 상사의 잔소리에도 아빠들은 꿋꿋이 견뎌낼 수 있는 거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 손을 잡고 연신 웃음 짓던 아빠의 행복 가득한 얼굴이 다시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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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전 중에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아빠와 아들이 서 있는데 멀리서 볼 때는 부자인지 형제인지 언뜻 구분이 안 되었다. 손을 꼭 잡고 너무나 다정하게 웃으면서 즐거운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키가 작은 아빠와 일곱 살 정도 된 아들이었다. 차도 밀리고 마침 신호등에도 걸려서 그들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게 되었다. 아빠는 왜 그리 큰 짐을 들고 있는 건지, 저렇게 큰 짐을 들고 버스를 타면 많이 불편하지는 않으려나 슬며시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은 뭔가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이야기하면서 활짝 웃고 있었는데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나까지 행복한 기분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힘들어 결혼도 출산도 거부하는 젊은이가 점차 늘고 있다. 출생률 감소, 인구 절벽, 초고령화 등 요사이 기사들을 접하면 내일이라도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 같은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물론 요즘과 같이 널뛰기하는 집값,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를 생각하면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비용은 분명 어마어마하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기준이 날로 상향되는 요즘이다. 이러한 외적 부담 외에도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여자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분명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다. 혼자 즐길 수 있었던 여유시간이 없어지고 자신만의 워라밸이 무너지면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렇게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워가면서 아빠 또한 함께 성장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남성은 더욱 안정적이고, 다른 여성을 기웃거리며 방황하는 경향이 훨씬 더 줄어들었다. 여기에는 나이 자체가 아니라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하더라도 결혼 여부, 특히 자녀 유무가 결정적 요소였다. 중년이 되든 노년이 되든 미혼인 남성이 훨씬 더 심리적 방황을 하는 것이다. 바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때문이다. 여성이 아이를 가지고 출산하는 것과 관련된 이 호르몬은 결혼한 남성에게도 분비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여러 심리학 실험에서 아빠의 뇌가 발달되어 간다는 것도 밝혀져왔다. 새끼 쥐가 태어난 직후 새끼와 분리된 경우보다 새끼와 함께 지낸 아빠 쥐의 뇌 신경세포가 훨씬 많아졌다. 새끼를 위해 끈기 있게 문제를 해결하고 탐색하는 행동을 보이는 등 문제 해결력과 관련된 뇌 부위가 특히 활성화되었다. 또 자식이 없는 수컷 쥐보다 아빠 쥐가 음식을 더 잘 찾았고,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덜 보였다. 이렇게 기억능력과 스트레스 저항능력 또한 생긴다. 이 때문일까? 상사의 잔소리에도 아빠들은 꿋꿋이 견뎌낼 수 있는 거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시간을 빼앗기면서 무작정 희생만 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뇌가 발달되고 여러 능력이 향상되며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더 강한 남성으로 변해간다.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 손을 잡고 연신 웃음 짓던 아빠의 행복 가득한 얼굴이 다시금 떠오른다.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아빠가 된다는 것, 그다지 손해 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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