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2시간 치열한 '설전'…'불법촬영 범죄' 국민참여재판의 끝은
수원지법, 남편 징역 1년·아내 무죄 선고
(수원=뉴스1) 배수아 기자 = 24일 오전 10시쯤 경기 수원지법 301호 법정.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후보로 선정됐다는 법원 등기물을 받은 30여명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7명이 법정 배심원석에 앉아있었다.
1시간이 넘는 심사끝에 최종 선정된 배심원 7명의 선서를 시작으로 재판은 시작됐다. 판사는 "심리 도중 법정을 떠나거나 이 사건에 대한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이 사건 정보를 수집하면 안 된다"고 안내했다.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재판에 일반 국민이 배심원 자격으로 판사처럼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형사합의부 관할에 속하는 사건 중 피고인측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면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거부할 경우엔 진행할 수 없다. 배심원은 해당 법원 관내에 거주하는 2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중 무작위로 정해진다. 재판순서는 △모두절차(검사, 변호인 해당 사건 설명) △증거조사절차(증거서류 등 증거조사, 증인신문) △피고인신문 △종결절차(검사·변호인·피고인 최종의견 진술, 재판장 설명) △평의/평결(유무죄 평결, 양형토의) △판결선고로 이뤄진다.
검찰측에는 수사검사와 공판검사 두 명이 나왔다. 검사는 배심원들을 향해 선 후 공소사실을 낭독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2명, 부부 사이다. 남편 A씨(36)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반포 등), 아내 B씨(41)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협박) 혐의를 다투는 재판이었다.
A씨는 중국 국적, B씨는 귀화한 한국인으로, 이들에게 통역사가 재판의 모든 과정을 통역해줬다.
A씨는 2022년 1월25일 오전 8시46분쯤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한 모텔 객실에서 피해자 C씨(43)와 성관계를 하는 것을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내 B씨는 같은해 2월26일 해당 영상을 발견하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이를 재촬영한 후 같은해 7월20일 위챗앱을 통해 C씨에게 "너희집에 찾아갈게. 네 남편과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겠다" 등의 취지로 메시지를 전송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이른바 '몰카 범죄'가 아니라는 취지로, "C씨의 동의를 얻어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메시지 내용이 협박의 고의를 갖고 보낸 것이 아닌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범위'라는 주장을 펼쳤다.
검찰의 증거 계획을 들은 후 오전 재판은 종료됐다. 검찰은 A씨와 C씨, B씨와 C씨간 위챗 메시지, C씨 진술, A씨가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후 1시50분, 오후 재판이 재게됐다. 검사는 증거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짚어가며 배심원들에게 설명했다. 변호인은 A씨 부부의 입장에서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양측의 치열한 공방에 국민참여재판 법정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이어 해당 사건의 핵심인 A씨가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에 대한 검증 절차가 진행됐다. 동영상 검증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동영상 검증 후 재판장은 "배심원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것 같다"면서 "잠시 휴정한 후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자"고 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를 향해갔다. 검찰과 변호인의 피고인 신문이 이어졌고 배심원들은 검찰측과 변호인측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검사는 A씨에게 "영상에 대한 동의를 언제 얻었냐"고 물었고 A씨는 "샤워하기 전에 동의를 얻었다"고 했다. 검사의 영상 촬영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해 보고싶을 때 보기 위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A씨에 대한 피고인신문에서 A씨의 '학력'을 강조하며, C씨의 거짓말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변호인은 "A씨는 초등학교 졸업을 못했다고 하는데, 학력이 없냐"고 했고 A씨가 "그렇다"고 답하자, 재차 "중국어 글씨 쓰는 게 어렵냐"고 물었고 A씨는 "전혀 쓸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A씨는 경찰 진술에서 C씨와 주고받은 채팅방 대화내역의 내용이 이상하다, 내가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라고 진술한게 맞냐"고 거듭 물었다.
검찰측과 변호인측의 피고인 신문을 들은 후 직접 질문을 한 배심원도 있었다. 쪽지를 통해 전달된 배심원의 질문은 "피해자 C씨의 경제적 능력은 어떤가"였다. 이에 대해 A씨는 "돈이 많다고 알고 있다"고 답했다.
검찰의 구형은 이날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진행됐다. 검찰측은 A씨에 대해 "아내의 친한 지인과 아내 임신 중 성관계하고 이를 몰래 촬영한 점, 촬영을 들키자 이를 빌미로 사람을 협박한 점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또 아내 B씨에 대해서는 "사실 막장 불륜극의 피해자"라면서 "그때 아기를 낳아서 지금 혼자 키우는 점을 고려해 법정형이 정한 최하형인 징역 1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A씨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A씨가 영상을 끄는 장면이 우리가 보기엔 너무 여유롭다"면서 "몰래 영상을 찍어서 끄는거면 숨겨야 하니까 들키지 않기위한 행동을 했을텐데 바로 옆에 C씨가 있는데도 너무 자연스럽게 영상을 끄고 있다. 과연 이게 몰래 촬영한 것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변호했다.
그러면서 "C씨는 A씨에게 (불륜 사실이 발각되지 않기 위해) 매일 메시지를 지우라고 해놓고 정작 자신은 갖고 있었다"면서 "수사기관은 일방적으로 C씨가 제출한 메시지를 갖고 판단하고 있는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달라"고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다.
B씨에 대한 최후변론에서도 "B씨는 단순 협박이 아닌, 성폭력처벌법상 협박"이라면서 "이 법의 입법취지는 N번방 사건이다. N번방 피해자들이 이런 걸로 협박을 받아 피해를 입었던 것인데, 그 피해자들과 이 사건이 같나. 어떻게 같은 조항으로 처벌을 할 수 있는지 이게 변호인으로서 가장 억울하다"고 했다. 이어 "단순히 문자 메시지만 국한해 협박을 판단하지 말아달라"면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강조했다.
A씨는 최후진술에서 "와이프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짧게 말했고, B씨는 "아이가 아직 20개월밖에 안돼 부디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모인 배심원단의 시계는 오후 8시를 가리켰다. 재판을 마친후 배심원들은 평의실에 모여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배심원단 7명은 남편 A씨에 대해서는 유죄를, 아내 B씨에 대해서는 무죄를 만장일치로 평결했다. A씨에 대한 양형 의견으로는 징역 10개월(1명), 징역 1년(5명), 징역 2년(1명)이었다.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정재)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고려해 A씨에게는 징역 1년을, B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sualuv@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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