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산안청' 뜬금포에 불발···이미 한계인 법위반 수사 폭증 불보듯
文정부서 '본부' 설립 절충한 사안
野, 총선 겨냥 표퓰리즘 행보 지적
적용대상 12배 늘어 90만곳 달해
인력난에 사건 중 20%만 검찰로
안착도 못한 채 현장 혼란 불보듯
“2020년 사회적 합의를 한 뒤 공청회 한 번이 전부였습니다. 몇 년 동안 아무런 논의도 없다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뜬금없이 산업안전보건청 연내 설립을 꺼내면 어떡합니까.”(경제단체 관계자)
더불어민주당의 갑작스러운 산안청 제안 논의로 여야의 중대재해법 유예 합의가 결국 무산됐다. 직원이 5인 이상 50인 미만인 소상공인 등 중소기업들은 이제 중대재해법 처벌 사정권에 정면으로 놓이게 됐다. 중대재해법 유예 논의 과정은 국회가 산업재해 감축을 위한 현실적 대안 마련보다 법안 처리를 흥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더구나 적용 대상이 지금보다 무려 12배나 늘어나 90만 곳에 달하면서 중대재해법 위반 관련 수사 급증에 따른 인력 문제는 물론 정부의 예방 정책 수행 등도 상당한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국회와 경영계 등에 따르면 여야는 그간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 처리를 위해 물밑 협상을 진행해왔으나 최종적으로 산안청 설치 문제를 놓고 대립하다가 결국 협상이 결렬되면서 국회 본회의에 법안조차 올리지 못했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혹은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법안이다. 27일부터는 법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대폭 확대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년간 법 시행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공식 사과, 향후 2년간 구체적인 재해 예방 준비 계획과 예산 지원 방안 발표, 2년 유예 후 법을 반드시 시행한다는 정부와 경제단체의 공개 약속을 3대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정부·여당은 당정 협의를 통해 민주당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 협상에 진척이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민주당이 갑자기 제안한 산안청 설치 문제를 두고 양측이 마지막까지 의견 조율에 실패하면서 끝내 유예안이 불발됐다.
산안청 설립은 2020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된 후 관련 법안까지 발의됐지만 추진 논의가 사실상 멈췄던 사안이다. 민주당이 여당이던 2021년 7월 고용노동부 내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산업안전본부로 승격해 산안청의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산안청 논의 중단 배경 중 하나는 정책 혼란을 고려한 숙의가 필요해서다. 관련 법안의 국회 검토보고서는 당시 문재인 정부 시절 행정안전부도 “산업안전감독 기능이 고용부의 근로 조건 보호, 노동정책과 연계돼 중장기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기술했다. 산안청이 할 산업안전보건 분야 행정이 고용 구조 정책, 노동 조건 감독과 이원화되는 데 따른 우려도 제기됐다.
수면 아래 있던 산안청 제안은 돌발적이었다. 정부·여당이 민주당이 제안했던 3가지 유예 법안 논의 조건(대책 마련, 정부 사과, 마지막 유예)를 충족하자 민주당은 다시 산안청 제안과 대책 재원 확대를 내걸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등 노동자 표심을 고려해 유예안 부결을 위한 노림수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민주당 입법 주도로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현장에서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당장 27일부터 새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은 약 83만 곳이 늘어 90만여 곳에 이르게 됐다. 기존 7만 1000여 곳에서 약 12배 늘어난 것이다.
기존 중대재해법을 적용 받던 50인 이상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중대재해는 극적으로 줄지 않았다.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난해 10월 말까지 중대재해법 적용 사건은 456건에 이른다.
문제는 중대재해법 안착의 제1조건인 수사부터 사건 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당시 456건 사고 중 검찰 수사는 86건(약 19%)만 이뤄졌다. 검찰 수사는 고용부가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해야 이뤄진다. 고용부 수사가 늦어진 이유 중 하나는 수사를 담당하는 감독관의 업무 과부하다.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해 감독관 입장에서 어느 사건보다 신중하다. 게다가 이 수사는 안전관리체계 의무를 확인해야 하는 탓에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법 사건 수사를 위해 피의자 또는 참고인 조사는 1건당 평균 18회나 기록했다.
늦어지는 수사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형사처벌 공포를 낮추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시행 직후에는 모호한 규정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이 우려는 판례가 쌓여야 낮아질 수 있다. 민간에서 판례를 보고 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능력을 갖추는 선순환이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재판은 1심 11건을 포함해 12건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중대재해법 위반 건수는 급증하면서 가뜩이나 인력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수사는 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매년 전체 사망 산재 사고 중 약 70%는 새로 법 적용을 받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체 사망 산재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사고 위험이 높은 건설업은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말 고용부는 시공 능력 순위가 높은 대형 건설사 10곳 중 5곳의 현장 전체를 감독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5건 이상 사망 사고를 낸 데 따른 특단의 대책이다. 이미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대기업도 확실한 안전관리체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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