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세계인의 궁금증에 화답할 때

2024. 1. 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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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피비린내 나는 국제 정치와 달리 국제 문화계에서는 따듯하고 반가운 뉴스가 있었다.

각종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으며 할리우드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이 작품은 두 아시아계 미국인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로드레이지(road rage), 즉 난폭 운전으로 발생한 감정 싸움이 두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무섭게, 그렇지만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나간다.

이 감독의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한국 교회나 미국 내 한국인 생활이 많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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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국인' 관심 커졌는데
아시아선 여전히 中·日 중심
韓, 정치·경제 이외 분야에선
전문가나 연구·서적 태부족
장기적 호감으로 연결하려면
전략적으로 연구 확대시켜야

새해 들어 피비린내 나는 국제 정치와 달리 국제 문화계에서는 따듯하고 반가운 뉴스가 있었다. 재미교포 이성진 감독의 코미디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이 미국 드라마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에서 총 15개 부문을 휩쓸었다. 각종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으며 할리우드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이 작품은 두 아시아계 미국인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로드레이지(road rage), 즉 난폭 운전으로 발생한 감정 싸움이 두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무섭게, 그렇지만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나간다. 두 주인공이 아시아계라 주연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가 한국 또는 타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이 감독의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한국 교회나 미국 내 한국인 생활이 많이 등장한다.

이 작품이 미국에서 이 정도 인기와 찬사를 받은 데는 분명히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성난 사람들'의 창작부터 연출까지 이끌어낸 이 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5년 전만 해도 이런 작품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그의 성공이 현 미국 문화가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해주어 가능하게 됐다는 의미지만,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기생충' 같은 한국 문화 작품의 성공일 것이다.

유사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처에서 한국 문화가 많이 노출될수록 한국과 한국인을 향한 관심과 호기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문화계는 물론이고 타 영역에서도 한국이 이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에 한국에 대한 단기적 호기심을 장기적 호감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 일환으로 필자도 지난해 말 외교부 문화협력대사 자격으로 미국 각지에서 한국 문화의 성공 배경과 정체성에 대해 순회 강연을 했다.

역시 가는 곳곳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 문화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젊은이, 이제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인기가 치솟으니 외교가나 연구기관, 대학에서는 한국과 한국인을 알고자 하는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나 연구는 아직 중국과 일본에 몰려 있다. 중국과 일본 역사, 언어, 문화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서적과 보고서는 세계 각 대학 도서관에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어느 나라 서점을 가보아도 쉽게 관련 서적을 구입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 관한 토론과 세미나를 보면 이 나라 국적뿐 아니라 외국 국적 전문가도 넘쳐난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연구나 전문가의 폭과 깊이는 좁기 그지없다.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 역사 연구와 서적, 최근 북한의 핵 위협으로 인한 지정학적 측면을 연구한 한반도 전문가가 대부분이다. 한국 경제 성장과 산업을 분석하는 연구도 다소 있지만 이 역시 극히 제한적이다. 해외에서 한국 문화나 역사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이제는 한국인, 한국 역사, 한국 문화에 관한 전문가나 연구 프로젝트가 더욱 늘어나야 할 시점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같은 기관에서 이러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지만 지금은 이 방향에 더 많이 지원해야 하며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난 사람들'에서 보듯이 한국인의 시각과 가치나 정체성을 세계인에게 어필하고 이들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하는 마당에 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한국 문화를 향한 세계인의 관심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손지애 이화여대 초빙교수·외교부 문화협력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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