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감리제도 개선 유감

2024. 1. 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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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에 정부가 발표한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 중 감리제도 개선안은 아쉬움이 크다.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 그룹사들이 건축주로서 대규모 다중이용시설을 건설할 때는 수의계약이나 지명 경쟁입찰을 통해 우수한 감리업체를 선정하고, 시공 이전 단계부터 종합적인 사업 관리를 수행해온 사례가 대단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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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에 정부가 발표한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 중 감리제도 개선안은 아쉬움이 크다. 전관 카르텔 혁파나 부실공사 방지는 국민 모두가 바라는 바다.

하지만 이를 위해 '국가인증 감리제도'나 '감리 전문법인'을 도입하겠다는 방안은 무슨 내용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건지 오리무중이다.

특히 "감리가 건축주나 건설사에 예속되지 않도록 건축주 대신 허가권자(지자체)가 감리를 선정하는 건축물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은 왜 하겠다는 건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는 주택 감리만 허가권자가 감리를 선정하게 돼 있는 것을 앞으로 다중이용 건축물(5000㎡ 이상 문화·집회·판매시설 또는 16층 이상 건축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래야 감리가 건축주나 건설사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적 위치에서 제대로 감독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나 최근의 아파트 부실공사는 모두 허가권자가 감리를 선정했는데도 발생한 사고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감리가 반드시 건축주와 독립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타당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감리는 건축주와 협력해 공사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 그룹사들이 건축주로서 대규모 다중이용시설을 건설할 때는 수의계약이나 지명 경쟁입찰을 통해 우수한 감리업체를 선정하고, 시공 이전 단계부터 종합적인 사업 관리를 수행해온 사례가 대단히 많다. 건축주와 감리가 한 팀을 이루어서 안전과 품질을 챙기고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정부안대로라면 앞으로는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 그룹사도 허가권자인 구청이나 시청에서 선정해주는 누군지도 모르는 감리와 함께 공사 감독 업무를 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앞으로 허가권자가 실적, 경험 등을 평가하여 감리를 선정하는 적격심사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보완 방안이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적격심사제도가 변별력 부재로 사실상 '운에 의한 낙찰'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운찰제'로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건설업계 모두가 알고 있다.

민간 감리 시장의 현실적인 계약 구조나 산업 정책적 관점에서도 정부안은 문제가 많다. 현재 민간의 대규모 다중이용 건축물은 상당수가 법적으로 의무화된 감리 업무에 더하여 설계관리 등 시공 이전 단계의 건설사업관리(PM) 업무까지 포함해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통합적인 건설사업 관리를 해야 안전과 품질을 확보하고 대규모 건설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민간 발주자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안대로 법적 감리만 따로 떼서 적격심사를 거쳐 운 좋은 감리자를 선정한다면 법적 감리비용에 비해 금액이 미미한 시공 이전 단계의 PM 시장은 존립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국내에서 고부가가치의 PM 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PM 기업을 육성하여 해외 건설시장을 확장해 나가자는 정부의 오랜 산업 정책 목표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안을 만들고자 한다면 탁상공론이 아니라 시장 및 현장과의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새해에는 민간 감리시장의 현실적인 생태계에 기반하여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감리제도 개선안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이상호 법무법인 율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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