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드라마 속 자식만 70명…모든 엄마들의 마음은 똑같죠"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그의 푸근한 눈빛과 미소는 괜히 애틋하게 느껴지고, 입에서 한숨 섞인 잔소리가 나올 때면 반갑기까지 하다.
숱한 드라마 속 '마치 우리 엄마 같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수없이 웃고 울린 배우 김미경 뒤에는 이제 김혜자, 고두심, 김해숙, 김수미에 이어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사무실에서 마주 앉은 김미경은 "이제 제가 화면에 나오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 반응을 봤는데, 다행이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진심이 전해졌구나. 그 마음을 받아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 엄마 같다'는 말이 듣기 좋다"고 웃어 보였다.
김미경이 엄마로 출연한 작품은 수십 편에 달한다. 지난 한 해 동안만 해도 이보영('대행사'), 전도연('일타스캔들'), 엄정화('닥터 차정숙'), 신현빈('사랑한다고 말해줘'), 신혜선('웰컴투 삼달리'), 서인국('이재, 곧 죽습니다')의 엄마 역을 맡았다.
김미경은 "직접 세어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 속 자식들이 7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자식들은 먼저 보낸 자식들이다.
그는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아들을 잃었는데, 영안실에 가서 신원 확인을 하는 장면을 찍고 나서 쉽게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를 못 했었다"고 되짚었다.
이어 "연기할 때 어쩔 수 없이 상황에 이입해야 몰입이 되니까, 그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을 쏟아붓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모든 엄마의 마음은 똑같다고 믿어요. 다양한 엄마 역을 맡아봤지만, 기본적으로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나'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김미경이 처음 엄마 역을 맡은 건 2004년 드라마 '햇빛 쏟아지다'에서였다. 40대 초반에 20대였던 배우 류승범의 엄마로 출연했다.
김미경은 처음 엄마 역할 제안이 들어왔던 때를 돌아보며 "'이 나이에 벌써 엄마를?'이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더 컸다.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주변에서는 억울하지 않으냐는 소리도 자주 들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어요. 어차피 저는 연기자니까요."
김미경은 비율로 따지자면 평범한 서민이거나 가난한 집안의 엄마 역할을 많이 맡았다. 아픈 허리를 두드리면서도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터에 나가고, 듣기 싫은 잔소리를 쏘아붙이다가도 자고 있으면 들어와서 이불을 덮어주는 따뜻하고 인자한 엄마들이었다.
김미경은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연기자를 보고 '착한 엄마' 혹은 '나쁜 엄마'를 연상하게 되는데, 그러지 않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엄마들은 우리처럼 수없는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않으냐"며 "드라마 속에서는 너무 단적인 모습만 표현되다 보니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 같다"고 짚었다.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로 데뷔한 김미경은 1999년 드라마 '키이스트'를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에도 본격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굿바이 솔로', '태왕사신기', '시크릿 가든', '주군의 태양', '또 오해영', '고백부부', '하이바이, 마마!' 등에서 열연을 펼쳤다.
드라마 속 보여줬던 헌신적인 모습과 달리 김미경은 실제로는 '친구 같은 엄마'라고 소개했다.
그는 "제가 어릴 때 못 해본 게 너무 많아서, 제 딸한테는 나쁜 짓이나 거짓말만 아니면 다 해보라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중독이라서 "미친 듯이 일하다가 몸이 신호를 보내면 그제야 휴식기를 갖는다"는 김미경은 취미 부자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하고, 오토바이 자격증이 있으며, 최근에는 다이빙도 배웠다.
'국민 엄마'로서 요즘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에 김미경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제가 감히요? 요즘 친구들이 얼마나 늠름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내고 있는데요. (웃음) 그래도 해주고 싶은 말을 찾아보자면, 단단해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쉽게 무너지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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