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포로 65명 탑승한 러 군용기 추락 미스터리…러시아-우크라 ‘진실공방’

정원식 기자 2024. 1. 2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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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고로드서 추락해 탑승자 74명 전원 사망
러 “우크라 소행”…우크라 “러 측 정보전”
러 “비행 데이터, 음성기록 담긴 블랙박스 2개 회수”

우크라이나 포로 65명이 탑승한 러시아군 수송기 추락 원인을 둘러싸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 측 주장대로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격추된 것이라면 우크라이나가 사전에 자국 포로 탑승 사실을 알았는지, 미국이 제공한 패트리엇 미사일을 사용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정보전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추락한 수송기에서 회수했다고 밝힌 두 개의 블랙박스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지 주목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회의를 열어 이 사건을 논의하기로 했다.

리아노보스티통신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 구조당국이 전날 추락한 수송기의 비행 데이터와 음성 기록이 저장된 블랙박스 2개를 발견해 조사관에게 인계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 증거가 제시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전날 오전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러시아 벨고로드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일류신(IL)-76 수송기가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 65명과 러시아인 승무원 6명, 호송요원 3명 등 74명을 태우고 비행하던 중 우크라이나군에 격추당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수송기가 이날 예정돼 있던 우크라이나와의 포로 교환을 위해 벨고로드로 향하던 중이었다면서 “우크라이나 지도부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자국 포로를 이송하는 항공기임을 알고도 공격했다는 주장이다.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하원 국방위원장은 수송기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립치 지역에서 발사된 대공미사일 시스템에 의해 격추됐으며, 서방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한 패트리엇 또는 IRIS-T 대공 미사일에 공격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러시아 주장대로 수송기가 패트리엇에 격추된 것이라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때 당부한 ‘러시아 본토 타격 시 사용 금지’ 방침을 어긴 것이 된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뒤흔들기 위한 러시아 측의 정보전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우크라이나군에 의한 러시아군 수송기 격추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드미트로 루비네트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위원은 “정보전은 전장에서의 전투 못지 않게 중요하다.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사용하는 끔찍한 수단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군 정보국(GUR) 관계자는 이날 포로 교환이 예정돼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 포로들의 안전은 러시아 측이 지켰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특정 시간대에 벨고로드시 상공의 안전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러시아 측으로부터 사전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보국 관계자의 이 같은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자국 포로의 탑승 사실을 모른 채 우발적인 실수로 수송기를 격추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NYT는 “만약 우크라이나가 의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자국 군인이 탑승한 비행기를 격추했다면 탄약과 병력 부족, 서방의 지원 축소 우려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우크라이나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는 추락 사고 발생 직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방공 시스템에 사용되는 S-300 미사일을 싣고 비행하던 러시아군 수송기를 격추했다고 보도했다가 “(이에 대한)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이 없었다”고 정정한 바 있다.

러시아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포로였던 막심 콜레스니코우는 이날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과거 자신이 러시아 브랸스크에서 벨고로드로 이송됐을 당시 수송기에는 우크라이나 포로 50명에 러시아 군사경찰 20명이 탑승했다고 말했다. 추락한 수송기에 호송인원이 3명 밖에 없었단 것은 이상하다는 주장이다.

CNN은 2022년 7월 우크라이나 전쟁포로가 수감돼 있던 도네츠크주 올레니우카 교도소가 피격됐을 당시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조사 결과 확실치 않은 것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를 통해 “이번 비행기 추락 사고는 우리 통제 범위를 벗어난 러시아 영토에서 발생했다”며 “이런 것들을 포함해 모든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포로들의 인명, 포로 가족들과 우리 사회의 감정을 갖고 장난을 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제 ‘팩트’가 핵심”이라면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제적인 조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유엔 안보리는 25일 회의를 열어 이번 수송기 추락 사건을 논의하기로 했다. AFP통신은 안보리 의장국인 프랑스가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요청한 안보리 회의가 25일 22시(그리니치표준시 기준)에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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