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미약은 무슨! 사형 땅, 땅, 땅” 36명 살해범에 내려진 정의의 심판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1. 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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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日서 ‘쿄애니 사건’ 1심 판결
법원 “심신쇠약 아냐...형사책임능력 있어”
유족 “단 하루도 슬픔 잊은적 없어, 절대 용서못해”
일본 네티즌들 “당연하고 타당한 판결”
1998년 이후 실질적 사형폐지국 한국
미집행 사형수 59명에 희생된 인원 207명 달해
25일 판결을 듣고 있는 아오바 피고 모습 스케치 [사진출처 =NHK ]
36명의 사망자와 32명의 부상자를 낸 일본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쿄애니 사건)’ 범인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생한 방화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25일 교토지방재판소(지방법원) 재판부는 살인과 방화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아오바 신지(45)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아오바가 기소된 범죄 내용을 인정하고 있어 사실 관계에 대한 다툼이 아닌, 그에게 형사 책임능력이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아오바의 변호인 측은 “사건 당시 피고에게 망상으로 인한 심신 장애가 있어 선악을 구별하거나 행동을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달 형사 책임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사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도 구형대로 이날 사형을 선고했다.

NHK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 사건을 심리한 마스다 게이스케 재판장은 그에게 선악을 판단할 형사 책임 능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장은 피고가 중증 망상성 장애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범행 당시 피고는 심신 상실도, 심신쇠약의 상태도 아니었다”며 “망상이 방화 살인이라는 수단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가 방화 살인을 택한 것은 기존 경험과 지식, ‘당하면 갚아준다’ 는 성격에 의한 것이고 경위나 동기 등을 고려해도 36명을 살해하고 32명을 생명의 위험에 노출시킨 죄는 매우 무겁다”고 덧붙였다.

재판장은 피해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글과 말로 다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 업계를 좋게 만들자는 희망을 갖고 일하던 무고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헤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범행 양상에 대해서도 “강고한 살의가 느껴진다. 잔학무도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눈을 감은 채 끝까지 판결 선고를 듣고 있던 아오바는 재판장의 사형 판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휠체어를 타고 고개를 숙인 상태로 퇴장했다.

그는 2019년 7월 18일 쿄애니에 응모한 소설이 낙선된 데 원한을 품고 교토시 후시미구 소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건물에 난입해 1층 현관에 불을 질렀다.

화재 당시 연기에 뒤덮인 ‘교토 애니메이션’ [교도 연합뉴스]
이날 법정에 모인 희생자 유족들은 판결에 앞서 자신들의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22살의 나이에 쿄애니 입사 3개월 만에 목숨을 잃은 가사마 유카의 어머니는 유족들을 대표해 준비해온 서면을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읽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 교토로 향하는 차 안에서 딸이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을 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증오가 치솟습니다. 이런 생활이 평생 계속될 겁니다. 피고인은 자기가 지나쳤다고 했지만 반성은 없습니다. 소설 같은 데서 제 딸이 살해당한건가요. 우리 가족은 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평생 고통에 시달릴 겁니다. 피고를 보면 3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 것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색은 없습니다. 실망과 함께 분노를 느낍니다. 나는 절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유카는 우리 가족에게 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즐거웠던 그 날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유카의 꿈은 나의 꿈이었는데 너무 억울합니다. 사리에 어긋난 원한으로 계획적이고 무참한 사건을 일으킨 데 대해 올바른 판단이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사형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

방청석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오바는 방화 범행 당시 자신도 전신 93%에 화상을 입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었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그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해 치료하면서 범행 10개월후에야 체포됐다. 이후 계속된 치료로 범행 4년여 만에 공판에 참석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담당 의사는 현지 언론에 “(아오바가) 예측 사망률 97.45%로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걸로 보였으나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죽음으로 도망치게 놔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해당 사건에 대해 무려 22번의 재판이 열렸다. 아오바가 유족들에게 사죄의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21번째 재판때 부터다. 유족들의 의견 진술 후 검찰로부터의 요청에 “역시 죄송한 짓을 저질렀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라고 처음 사죄의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아오바에 대한 사형 판결후 쿄애니 야타 히데아키 사장은 “법률에 따라 적절한 대응과 판단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장기간에 걸쳐 무거운 책임과 부담을 맡아 주신분들, 세심하게배려해주신 수사 관계자분들 등 모든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일본 네티즌들도 해당 소식에 “사형제가 존재하고 있는 이상 이 정도의 사건에 책임 능력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말이 안된다. 당연한 판결이다.” “법원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등 대부분 옹호하는 반응 이었다.

아오바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지면서 그는 결국 법의 심판에 따라 죽음을 맞을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함께 사형제 존치국으로 분류되는 일본은 지난 18일 범행 당시 만 19세 미성년 흉악 범죄자를 대상으로 사형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일본에서 가장 최근 사형이 집행된 때는 지난 2022년이다. 2008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인사건의 범인 카토 토모히로에 대한 교수형이 7월 26일 집행됐다.

미국과 함께 대표적인 사형제 존치 국가인 일본은 지난 2017년 20년 만에 범행 당시 19세였던 사형 기결수에 대해 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이는 현행범 또는 확정범이어도 언제부턴가 범죄자 인권이나 미성년자임을 들어 엄벌 대신 사회적 교화를 중시하는 한국 상황과 대비된다.

한국은 사형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지난 1998년 이후 26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현재 국내 미집행 사형수는 59명에 달하는데, 이들의 범죄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 수는 207명에 달한다. 사형수 1명이 평균 3명 이상을 살해한 것이다. 이 중에는 20명을 살해한 유영철과 10명을 죽인 강호순, 강도살해를 반복해온 정두영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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