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깔끔해지고 손님은 늘어났어요”
[서울&] [자치소식]
확장 영업, 비 들이침 등 문제 풀어
거리가게 박스 개선 디자인 개발해
주황·미색, 3면 투명 소재로 개방감
내부는 운영자 편의성 고려해 구성
반응 좋아, 2026년 70호 설치 목표
“가게 부스가 예뻐지고 깨끗해지니 손님이 두 배 정도 늘었어요.”
지난 5일 지하철 4호선 노원역 출입구 상계로 구간에서 거리가게(노점) ‘노랑붕어빵 & 땅콩과자’ 운영자인 정인숙(54)씨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해 10월 노원구가 설치해준 새 부스 ‘드림박스’는 안내소처럼 눈에 확 띈다. 주황색과 미색에 3면이 투명 소재라 개방감을 준다. 비·바람막이 고정식 커튼도 있고 내부엔 일체형 에어컨, 수납장, 냉장고 등을 갖췄다.
거리가게 운영 10년 차인 정씨는 지난해 노원구의 드림박스 사업을 주변 운영자들에게서 듣고 직접 구청을 찾아 신청했다. 냉장고, 기기 등 비품은 개인이 부담했고, 부스 기본 시설 이용료로 월 12만원가량의 대부료 1년 치를 한 번에 냈다. 그는 “기존 포장마차는 접고 펴면서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갔는데 새 부스는 그렇지 않아 참 좋다”며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부스를 바꿀 수 있어 고마운 마음에 붕어빵값도 2개 1천원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1호점 ‘사진인화 & HD메탈액자’ 운영자 이태환(56)씨는 “요즘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했다. 그동안 정오부터 저녁 8시까지 공간이 좁아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의자도 무척 불편했다. 드림박스로 바꾼 뒤 편한 의자에 몸을 움직일 수 있어 피곤도 덜 느낀다. 수납공간이 있어 밖에 물품을 내놓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해졌다. “단속 걱정하지 않아 좋고, 부스가 깔끔해지니 손님들이 물건값을 깎지 않아 장사하기가 이전보다 수월해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드림박스는 노원구가 2021년부터 20개월 걸려 개발한 표준 디자인 적용 거리가게 부스다. 규격은 가로 2.5m, 세로 1.7m, 높이 2.4m다. 유형은 물품 판매형, 실내 영업형, 실외 영업형 등 3가지로 나뉜다. 새달까지 6곳이 선보인다. 사진, 붕어빵, 뻥튀기, 토스트 등 판매점 4곳과 사주 타로점 2곳이다.
거리가게 개선은 노원구가 2008년부터 15년 넘게 계속해온 사업이다. 당시 자치구 가운데 거리가게가 4번째로 많았고, 민원의 10%는 노점상에 관한 것일 정도로 주민들의 불편이 컸다. 구는 주민의 보행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노점의 생존권을 인정하면서 단속보다는 관리에 힘을 쏟아왔다. 2011년부터 노점 정책협의회를 운영하고, 2년 뒤엔 노점관리운영 규정도 마련했다. 2015년엔 노점상 자립을 위한 기금 설치와 운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실태조사를 이어오면서 관리 기준을 보완해왔다.
노원구는 일정 조건을 갖춘 생계형 노점에 정식으로 도로점용 허가를 내줬다. 기금을 활용한 거리가게 부스 개선사업도 진행해왔다. 2019년부터는 큰길과 지하철역, 공원 인근에 있는 거리가게의 노후 천막, 좌판 등을 규격 부스로 바꾸고 낡은 규격 부스는 신형으로 교체해줬다. 석계역 등에선 주변 환경 개선도 함께 진행했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신형 부스 교체로도 물건을 밖에 내놓는 확장 영업이 기대만큼 줄지 않았다. 구가 표준 디자인을 개발해 드림박스 사업에 나선 이유다. 담당자였던 도시경관과의 정수영 주무관은 “부스 내부에 수납공간을 만들고 일체형 에어컨으로 실외기를 밖에 내놓지 않게 디자인에 반영했다”며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서 일하는 운영자들의 의견도 들어 편의성을 높이려 했다”고 말했다.
드림박스 디자인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밝고 화사한 이미지를 주는 색 선택이었다. 기존 갈색 부스의 칙칙하고 어두운 이미지 대신 주황색과 미색을 주색으로 썼다. 정 주무관은 “해외여행 길에서 본 예쁜 부스처럼 노원의 명물이 될 수 있게 밤낮으로 환해 보일 수 있는 색을 골랐다”고 했다.
내부는 운영자와 3개월 정도 협의해 맞춤형으로 디자인한다. 제작엔 한 달 정도 걸린다. 부스 제작비는 1500만원 정도이고, 법에 따라 연 7% 이자율을 적용해 대부료를 책정했다. 운영자는 대부료 납부, 확장 영업과 시설물 훼손 금지 등 규정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드림박스를 설치하면서 주변 정비도 이뤄진다. 화단, 담장 등의 전지와 도색 작업도 곁들인다.
드림박스 사업에 대해 거리가게 운영자들은 계약 기간이 1년씩이다보니 자칫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1, 2호점 드림박스를 눈으로 직접 본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 연말까지 상계로 거리가게 20여 곳 가운데 약 10곳 정도가 신청 의사를 밝혔다. 주미경 도시경관과 팀장은 “외관이 예쁘고 내부 공간 설계는 운영자의 의견을 반영해 진행하니 만족도가 높았다”며 “설치 중엔 주변 상인들이 구경하러 오고 지나다니는 주민들도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주민들의 긍정적 반응도 볼 수 있었다. 동네 주민인 70대 어르신은 “(드림박스로 바뀌면서) 보행로가 덜 복잡하고 환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붕어빵 봉투를 손에 든 그는 “깔끔해 보여 처음으로 (거리가게를) 이용해본다”고 했다. 여중생 4명은 멀리서 부스 색깔이 눈에 띄어 와봤다고 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부스가) 예쁘고 가격도 착해 참 좋다”고 말했다.
노원구는 올해 드림박스에 대한 거리가게 운영자들의 수요를 조사해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주미경 팀장은 “2026년까지 70개를 목표로 세웠는데, 운영자의 수요가 많으면 상황을 고려해 계획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보행환경을 개선해 주민의 안전을 지키고 영업환경을 최적화해 운영자에게 희망의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며 “상생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며 거리가게 개선을 지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