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첫 투표 기대돼 새벽부터 왔어요”… 농협중앙회장 선거 열기, 한파도 녹였다
17년 만에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
1111명 조합장, 전체 표수 1252표
“직선제로 선거 투명성 높아져”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처음이라 굉장히 기대된다. 투표하기 위해 경북 성주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 우리 농촌 경제가 굉장히 어렵다. 이런 농촌 현실을 잘 이해하고 조합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다.”
25일 오후 서울 충정로1가 농협중앙회 본점에서 만난 노시영 경북성주농협 조합장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농협중앙회 로비는 각 지역에서 온 1000명이 넘는 조합장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장에 구두를 신고 멋을 낸 이들의 목에는 본인이 속한 각 조합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곧 있으면 대강당에서 시작되는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조합장들은 오랜만에 만난 타지 조합장과 안부를 묻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 전국 206만명의 농협 조합원을 대표하는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실시됐다. 이번 선거는 지난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직선제로 치러진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1990년 민선이 도입되면서 직선제로 치러지다가 대의원 간선제로 바뀌었다. 지난 2021년 농협법 개정으로 다시 전체 조합장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돌아가게 됐다. 투표에 참여하는 조합장은 1111명이지만 전체 표수는 1252표다. 부가의결권 제도가 도입돼 조합원 수가 3000명 미만인 조합은 한 표를 갖고 3000명이 넘어가면 두 표를 행사할 수 있다.
투표장인 대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후보들이 일렬로 서서 조합장들과 악수했다. 후보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잘 부탁드립니다”를 연신 반복했다. 투표는 오후 1시 30분 개회 선언을 거쳐 후보들이 소견을 발표한 뒤 오후 3시쯤 1차 투표가 시작됐다. 중앙회장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 2위 후보자를 대상으로 오후 5시쯤 결선 투표가 진행된다. 당선인은 대략 이날 오후 7시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새 회장의 임기는 3월 정기 총회일 이후 시작된다.
첫 직선제 투표를 앞두고 조합장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김용두 논산계룡농협 조합장은 “간선제 체제일 때는 일부 조합장만 선거를 하다 보니 의견 단합으로 한 후보로 표가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후보의 됨됨이나 농업 현안에 대한 공약은 뒷전으로 밀린 채 지역 구도에 따른 판세가 더 중요했었다”고 말했다. 김 조합장은 “직선제로 바뀌면 유권자가 많아져 어느 후보로 표가 쏠리기보다 후보자의 공약이 선거의 주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협중앙회 직원들은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조합장들을 안내하고 등록절차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곳에서 조합장 등록 업무를 맡은 이모(35)씨는 “오후 1시까지 도착해도 된다고 안내했음에도 대다수 조합장은 오전 11시에 도착했고 지방에 계신 일부 조합장은 전날에 온 경우도 있다”며 “처음 투표한다는 기대감에 다들 이른 시간부터 투표장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장 선거에는 7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강호동 율곡농협 조합장(60), 송영조 부산금정농협 조합장(67), 조덕현 동천안농협 조합장(66) 등이 3파전을 펼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A조합장은 “세 명의 후보가 유력하지 않은가 싶은데, 어제와 오늘 두 명으로 후보가 압축됐다”며 “그중에서도 강호동 율곡농협 조합장이 당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B조합장은 “같은 지역인 송영조 조합장이 당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유력 후보자들이 공통으로 내건 ‘1중앙회 1지주’ 체제에 대해서 조합장들은 농협의 특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나상정 경남합천농협 조합장은 “1중앙회 2지주 체제에서 중앙회에서 내려오는 자금이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분산되는 면이 있었는데, 1중앙회 1지주 체제로 개편되면 농정활동 효율성이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농협의 특성을 더 살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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