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솔루션, 눈 떠보니 헝가리
박권일│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2017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을 두고 “집단자살사회”(collective suicide society)라고 했다. 과장도 비유도 아닌, 사실의 적시였다. 2023년 3분기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4분기 통계는 0.6명대임이 확실하다.
이런 와중인 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동시에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다. 양당 모두 헝가리를 크게 참고했다고 한다. 사회학자 신경아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양당 모두를 호되게 질타했다. “(헝가리) 정부는 성평등 부서를 인구 부서로 바꾸고 출산을 강요했다. 서구 학자들은 여성의 몸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비판해 왔다. 국민의힘은 여가부를 폐지하고 인구부를 만들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헝가리 현금살포 정책과 똑같은 정책을 발표한다.”
헝가리 현황을 더 찾아봤다. 경악스러웠다. 친러 극우정권 치하인 헝가리는 성차별, 언론탄압, 정치부패로 인해 약 8조원 상당의 유럽연합(EU) 코로나19 회복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2022년 7월 헝가리 법이 성소수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출산자에게 돈을 더 많이 주면 출생률이 올라갈 거라는 ‘헝가리 솔루션’은 국가가 국민을 그저 자극에 반응하는 가축으로 본다는 증거다. 사실 그동안 저출생의 진짜 원인을 지적한 전문가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원인과 괴리된 정책만 양산되었다. 똑똑한 관료, 정치인들이 그걸 몰랐을까? 그럴 리 없다. 알면서도 외면한 것이다. 공동체 성원을 시민으로 대하기는 어렵지만 가축으로 대하기는 쉽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극단적 저출생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중 하나는 이른바 ‘정상가족’만 승인하는 낡은 제도와 문화다. 혼외 출산을 백안시할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차별하는 한국과 달리, 혼외 출산을 차별하지 않는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1.7 전후로 한국의 2.5배에 이른다. 법적 혼인 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출생률을 높이는 효과는 물론,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증진하여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수준까지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2023년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가족구성권 3법’, 즉 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은 이런 문제의식이 비교적 잘 담긴 법안이다.
또 하나 주요 원인은,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다. 노동 양극화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일반화는 다수 시민이 미래 설계를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비정규직 일자리는 오늘날 사실상의 신분제로 기능하면서 경제적 착취만이 아니라 혐오와 차별 문화를 고착시켰다. 이런 환경에서는 필연적으로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청년이 ‘내가 겪은 모멸과 절망을 아이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다’ 결심하게 된다. “입시지옥”이란 말로 상징되는 학력경쟁과 입시비리,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도 다 같이 엮여 있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고쳐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그 지옥의 근본 원인이 비정규직 차별의 원인과 같기 때문이다. 바로 지대추구와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한국의 능력주의’다. 이 악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서 저출생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고 떠들어대던 이들은 정권이 바뀌자 “별안간 후진국”이 됐다며 ‘시일야방성대곡’ 중이다. 미안하지만 한국은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도긴개긴이었다. 대한민국과 기업은 능력주의를 내세우며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시민들 스스로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불평등에 적극 동조했다. 출생률 높인다며 출산 당사자 보상에만 급급하고 여성·소수자 혐오 문화 개선은 뒷전이었다. 그러니 15년간 280조원을 쏟아붓고도 나아지기는커녕 최악으로 치달은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저출생·인구소멸의 가장 확실한 해법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출산, 인구 따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가 개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각자의 행복을 응원하고 있다고 느낄 때, 시민은 아무 보상 없이도 아이를 낳고 훌륭한 시민으로 길러낸다. 이런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은 시민도 다른 시민의 아이를 존중하고 보살핀다. 그때는 이미 저출생 같은 건 우리의 고민조차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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