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불 터지다 웃다 눈물 터지는 '시민덕희', 라미란이라 가능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평범한 아주머니가 범죄 조직의 두목을 붙잡으려 동분서주하는 영화 같은 이야기. 사실상 수사관 못지 않았던 김씨의 활약으로 보이스 피싱 총책은 닷새만에 붙잡혔습니다. 하지만 그 후 벌어진 일들은 영화 속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2016년 7월 24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이 보도한 '범죄조직 잡은 주부, 입 닦은 경찰'편은 이 사건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 '영화 같은 이야기'가 진짜 영화가 됐다. <시민덕희>다.
세탁소 화재로 아이들과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덕희(라미란)는 대출을 알아보던 중 화성은행의 손대리(공명)가 제안한 '좋은 조건'에 속아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게 된다. 대출에 필요하다며 이런저런 수수료를 요구해 보낸 돈이 무려 3200만원이나 됐던 것. 그것이 모두 보이스피싱이었다는 걸 알게 된 덕희는 경찰에 사건 수사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사건 담당 박형사(박병은)는 '못잡는다'는 말만 내놓을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망에 빠져 있는 덕희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자신을 보이스피싱했던 바로 그 손대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고액 알바를 미끼로 중국 칭다오에 구금된 채 갖은 폭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보이스피싱을 해오던 그가 덕희에게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려도, "또 속았냐?"는 식의 시선으로 무시하고 보이스피싱의 본거지가 있는 주소를 알아야 제보도 되고 수사도 된다는 박형사 앞에서 덕희는 직장 동료들인 봉림(염혜란), 숙자(장윤주)와 함께 직접 칭다오로 날아간다.
갖고 있는 단서는 손대리가 감금된 곳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춘화루'라는 곳과 미싱 공장의 흔적이 있다는 이야기 뿐이다. 조선족 출신인 봉림과 마침 그 동생인 애림(안은진)이 칭다오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어 봉림은 통역을 맡고 애림은 이 추적극의 발이 되어준다. 여행에 들떠 따라온 것처럼 보였던 숙자 역시 카메라로 증거 사진들을 찍어내며 이들은 점점 보이스피싱의 근거지에 접근한다. 이들은 주소는 물론이고 갖가지 증거들을 찾아내 경찰이 국제공조수사를 하게 만들어내고 우여곡절 끝에 총책(이무생)을 검거하는데 성공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시민덕희>는 실제 사건과는 조금 다른 허구들을 집어넣었다. 실제 사건은 <시사매거진 2580>에서 보도한 것처럼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어 만일 그대로 영화에 담았다면 관객들에게 답답한 고구마만을 안겨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덕희의 실제 인물이었던 김성자씨는 총책의 조직원이었던 제보자를 설득해 수십 통의 전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모은 증거들을 경찰에 제보했고 그래서 결국 총책을 잡았는데 경찰은 그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 사건 보도자료에도 김씨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최대 1억의 신고 포상금도 또 수고했다는 격려인사도 받지 못했으며, 진정 끝에 다섯 달 후 포상금 백만원을 받아가라는 말에 안받겠다 거절했다고 한다. <시사매거진 2580>에 나온 김성자씨는 보이스피싱 당한 것만큼 경찰에게 사기 당한 듯한 기분이 더 안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허구를 더해 절절한 피해자의 심정을 담아내고, 살벌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실상을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나서는 시민으로서의 덕희, 봉림, 숙자, 애림의 추적극을 장르물로서도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담아낸다. 그 안에는 덕희의 절절한 마음과 이를 남일처럼 생각하지 않고 안타까워하는 동료들의 마음이 깔려 있지만, 이들이 공조하는 수사 과정들은 너무 무겁지만은 않은 방식들로 담겨져 관객들로 하여금 때론 통쾌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사실 사회적 부조리를 담은 사실과 이를 상업영화로서의 장르물적 성격으로 담아내 균형을 맞추는 부분은 <시민덕희>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더더욱 피해자의 절절한 마음이 진정성으로 제시되어야 하면서도, 관객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의 허구적 여지를 그려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민덕희>라는 작품에는 배우 라미란의 연기가 가진 지분이 만만찮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라미란은 덕희라는 인물이 가진 막막함과 절절함, 답답함을 담아내면서도 결코 무너지거나 물러나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는 모습을 진정성 있게 그려냄으로써 이 눈물 나는 실화에 웃음과 통쾌함까지 가능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사투 끝에 총책을 검거하는 데 성공하고 피멍이 든 채 퉁퉁 부운 얼굴로 나온 덕희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자, 덕희가 웃으며 당당한 얼굴을 드러내려 애쓰는 표정은 실로 이 작품의 메시지 그 자체라고 해도 될 법한 라미란의 깊이있는 연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표정을 통해 라미란은 단호하고도 당당하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 대해 세상이 갖는 편견처럼, 피해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고.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시민덕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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