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코트에서 죽어라”는 어머니. “네 팔을 먼저 부러뜨리겠다”는 아들. 장애인 태권도 주정훈의 무서운 다짐
어머니는 “죽어도 코트 위에서 죽어라”고 말했다. 아들은 “네 팔이 부러지나, 내 발등이 깨지나 붙어보자”고 다짐했다.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주정훈(30· SK에코플랜트) 은 오는 8월 개막하는 파리 패럴림픽을 앞둔 모자 각오를 이렇게 전했다.
주정훈은 26일 경기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도쿄 패럴림픽 때는 훈련도 부족했고 긴장감, 집중력도 떨어져 동메달에 그쳤다”며 “이번 파리 패럴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내 최고 선수로 인정받겠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첫판에 패한 탓에 패자 부활전으로 밀렸다. 주정훈은 “사람들이 즐기라고 해서 즐겼는데 즐기는 대회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며 “금메달 따는 걸 구경하라고 큰소리친 게 실수였다”고 회고했다. 주정훈은 태권도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고 역시 태권도가 처음으로 채택된 지난해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도 우승했다. 주정훈의 선수로서 꿈은 “최초와 함께 최고가 되는 것”이다. 주정훈은 “내가 어머니만큼 강한 정신력과 의지가 있었다면 도쿄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두 번째에 찾아온 기회에서는 반드시 최고 선수가 돼 더욱 자랑스러운 아들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훈련을 자처하고 있다. 장애인 태권도는 얼굴을 가격하는 금지돼 있다. 발차기만으로 상대 복부를 때려 점수를 얻어야한다. 주정훈은 “맷집을 강화하고 실전에 대비하기 위해 배, 옆구리로 오는 발공격을 팔로 막지 않고 일부러 그냥 맞을 때도 있다”며 “뼈는 맞을수록, 부러질수록 강해진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현재 세계랭킹 2위다. 특기는 연속 발차기다. 주정훈은 “비장애인 태권도는 발펜싱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장애인 태권도는 그렇지 않다”며 “발차기를 쉼없이 반복 또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훈의 쉼없는 발차기를 보면 마치 만화 태권도를 떠올린다. 주정훈은 “경기가 끝난 뒤 걸어나오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내가 거의 매번 기어나오는 것은 그만큼 모든 힘을 다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정훈의 발차기 기술이 상대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비공개된 기술을 발굴하는 것이다. 주정훈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과 함께 내가 평소 잘 쓰지 않는 발기술을 개발하고 훈련하고 있다”며 “열심히 연습해 시합 때 자연스럽게 다양한 발차기가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정훈은 두 살 때 오른 손목이 절단됐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 권유로 시작했다. 어릴 때는 다친 손목을 보여주기 싫어서 소극적으로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애를 드러내는 걸 꺼리지 않고 대담하게 뛰었다. 손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자책한 할머니는 도쿄 패럴림픽 직후 세상을 떠났다. 주정훈은 “생전에 동메달을 보여드렸다. 돌아가시기 전에 내 이름을 부르셨단다”라며 “패럴림픽 금메달을 따서 하늘에 계신 할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천 |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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