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이 하청직원 사장이라는 法…단체협약 체결 의무는 뺐지만
“지배력 행사자가 교섭해야”
주6일제 등 CJ대한통운 권한
法, 교섭 의무와 협약 체결 구분
‘실질적 지배력’ 결론 대법으로
서울고법 제6-3행정부(재판장 홍성욱)는 전날 오후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하청인 택배대리점 소속 기사들로 조직된 전국택배노동조합의 교섭 상대라고 봤다. 따라서 택배노조 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결론이다.
1, 2심은 모두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근로조건 등에 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 데 주목했다. 근로계약 당사자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1심도 앞서 “원청 사업주의 우월적 지위를 고려하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의 범위는 원청 사업주의 의사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김하경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2심 선고 직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좌우할 지위에 있다면 사용자의 의무를 다하고 그런 의무를 다하고 싶지 않으면 근로조건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택배노조는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택배기사 1인당 1주차장 보장 등 환경 개선 ▲배송수수료 인상·개선 ▲택배사고 책임 비율(사고부책) 개선 등을 교섭 의제로 제시했다.
2심은 배송상품 인수시간에 대해 “출발·도착시간, 당일배송 의무 여부, 집화물품 인도 장소 등 배송상품 인수시간과 집화상품 인도시간에 관련한 주요 요인들에 관해서는 직영 터미널과 동일하게 여전히 원고가 지배·결정 권한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작업환경 개선과 관련해서는 “직간선·위탁 터미널은 CJ대한통운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운영되는 형태로 직영 터미널과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의 전국적 배송물류시스템에 편입돼 운영된다”며 “서브터미널 유형에 따른 일부 차이는 교섭 진행 과정에서 고려할 수 있는 점을 종합하면 CJ대한통운이 시설 확충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일부 서브터미널 존재를 들어 교섭에 응할 의무 자체가 부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주5일제 시행 여부도 사실상 CJ대한통운이 좌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심은 “(CJ대한통운과 대리점 간) 부속계약서는 주6일제 근무를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집배점주(대리점주)가 택배기사와 체결하는 위수탁계약도 대부분 주6일제 근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며 “CJ대한통운과 집배점주가 근무일에 관해 중첩적인 지배·결정 권한을 갖고 있음을 넘어 주5일제 시행에 관한 CJ대한통운의 지배·결정 권한이 부정된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이 받는 배송수수료도 CJ대한통운이 지배·결정한 것으로 봤다. 부속계약서로 정한 ‘배송급지 기준표’에 따라 배송수수료가 설정됐다는 이유에서다. 사고부책에 관한 판단도 같았다. CJ대한통운이 게시한 손해배상금액이 기준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대로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이 인정되면 불씨는 불법파견 분쟁으로 옮겨붙을 수 있다. 원청이 근로조건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면 원·하청 관계가 아니라 파견관계로 볼 가능성이 생길 수 있어서다.
업무적으로 사실상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고 인사노무 관련 사항을 결정·관리했다면 도급이 아닌 파견관계로 간주될 수 있다. 파견직원을 2년 넘게 사용한 사업주는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노동계가 원·하청 교섭을 발판 삼아 직고용을 얻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2심은 “사용자가 단체교섭 의무를 이행하더라도 반드시 그 내용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까지 발생하지는 않는다”며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와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은 별개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원·하청 교섭 분쟁을 다룬 중앙노동위원회 판정과도 같은 내용이다.
중노위는 한화오션 사건에서 회사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해야 하지만 단체협약의 경우 하청 사업주와 하청노조가 체결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대법원도 앞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목적이 아닌 교섭이 존재할 수 있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CJ대한통운과 택배노조 간 분쟁은 대법원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CJ대한통운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부터 CJ대한통운 사건과 유사한 HD현대중공업 원·하청 교섭 분쟁을 놓고 심층 검토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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