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60∼90년대 하늘의 왕좌 ‘불멸의 도깨비’ F-4 팬텀 올해 완전 퇴역한다[정충신의 밀리터리 카페]
수원기지 마지막 남은 F-4 19대 올해 퇴역식
10·26 전날 미 세인트루이스 보잉공장 마지막 생산 F-4 기체 한국 인수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약 30년 간 한반도 하늘을 지배해왔던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기 F-4 팬텀이 올해 완전 퇴역한다.
군 소식통은 25일 “ 올해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이 양산체제에 들어감에 따라 2018년부터 충북 청주기지에서 수원 제10전투비행단으로 새 둥지를 튼 F-4 팬텀이 노후화에 따라 올해 중 완전 퇴역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공군의 F-4 팬텀은 19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팬텀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1958년 첫 비행에 나선 후 2016년 뉴멕시코주 홀먼 공군기지에서 F-4 팬텀기 은퇴 비행식을 마지막으로 팬텀기 사용을 종료했다.
앞서 2016년 군 당국은 한국형전투기(KF-X)사업 지연에 따라 공군전력의 공백을 막기위해 F-4팬텀과 F-5타이거 전투기의 퇴역 시기를 5년 연장하기로 하는 공군의 중기 전투기 도태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F-4팬텀의 완전 퇴역은 2019년에서 2024년으로, F-5 타이거는 2025년에서 2030년으로 각각 연장됐다. 이는 KF-21 양산시기가 2017년에서 2024∼2025년으로 지연되는 등 공군 전력 공백이 불가피해진 데 따른 조치였다. KF-21 시제기 6대의 시험비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올해 양산시기를 공식화함에 따라 F-4 팬텀의 올해 퇴역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방위사업청은 최근 “올해 중 최초양산 계약을 체결하고 KF-21 공군 1호기 생산에 착수해 적기 전력화를 위한 최초양산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F-4 팬텀 전투기는 우리 공군이 1968년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으로부터 무상임대로 6대를 최초 도입한 후 점진적으로 추가 도입해 남북한 공군 전력을 처음으로 역전시키는 데 기여한 항공기다. F-4 팬텀 전투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우리 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다. 1990년대 후반 F-15K 도입과 최근 F-35A 도입으로 순차적으로 퇴역 중이다.
공군의 청주 제17전투비행단은 ‘F-4E 팬텀의 고향’이다. 1977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F-4E 팬텀 95대가 2018년 1월까지 청주 비행단에 둥지를 틀게 됐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사건 이후 당시 전두환 군부는 북한에 응징보복하겠다며 청주 기지에 F-4E 전투기로 구성된 ‘살수 대기’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원조 ‘참수 부대’ 역할을 한 셈이다. 이는 그만큼 군 수뇌부가 F-4E 팬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방증이다.
F-4 팬텀은 ‘1960년대 말~1970년대’에는 세계 최강 전투기였다. 동시대 전투기 중 비행성능 및 공대공, 공대지 등 모든 능력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지금으로 치면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불리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22나 F-35에 해당하는 막강한 위상이었다. 공군이 1969년 F-4 팬텀을 도입하면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팬텀을 운용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옛 소련제 미그기로 공군 전력이 우리보다 한 수 위였던 북한의 공군 전력을 단번에 역전시킨 것이 F-4 팬텀이었다. 공군이 팬텀을 들여오기 전만 해도 북한 공군력은 한국 공군에 비해 수적으로 2배 이상인 데다, 성능 면에서도 우수한 미그 계열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깊게 분산 배치된 작전기지들의 주요 장비 및 시설물들은 엄체화 또는 지하화돼 있었다. 당시 북한 공군은 5분 내지 15분 이내에 항공기 150여대를 전 기지에서 비상 출격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군은 북한의 이 같은 기습공격 능력과 주변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966년 ‘공군력 증강 5개년 계획서’를 통해 1968년부터 F-4D 팬텀을 도입할 것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 무렵은 1968년 1월21일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사건’과 1월23일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사건 등이 발생한 때였다.
삼척, 울진 무장공비 사건 등도 연이어 일어나면서 한국 정부는 당시 베트남에 파병한 국군의 철군을 고려했다. 미국은 자국 다음 규모의 대병력을 파병한 국군이 철군하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뻔해 한국을 달래려 팬텀 공급을 약속했다.
당시 국군이 보유 중인 F-5A를 베트남에 보내는 대신 F-4D 18대를 임차해 준 것이다. 임차 조건은 가격 무료, 기간 무기한이었다. 베트남전이 끝나자 미군은 무상임대했던 F-4D 18대의 반납을 요구했다. 이에 공군 전력의 감소를 우려한 정부는 국민성금 163억원을 모아 1975년 이 중 5대를 구매했다. 이 5대가 ‘방위성금헌납기’로, 공군은 헌납 전투기 편대를 ‘필승편대’로 명명했다.
이후 공군은 F-4D를 추가 도입했고, 대구 제2전투비행단에서 F-4D 74대를 운용하면서 팬텀은 공군 주력기로 자리매김했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979년 10월26일 하루 전인 10월25일 미국 세인트루이스 보잉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한 팬텀 전투기 기체를 인수받았다. 무기와 정치, 역사의 아이러니다.
‘1980~1990년대’에도 팬텀은 7.25t에 달하는 강력한 무장 능력과 고성능 레이더 및 항법장치 등을 갖춘 다목적·전천후 항공기로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다. 공군이 1994년 KF-16을 전력화하기 이전까지는 대한민국 공군을 대표하는 전투기로 공대공 및 공대지 임무를 수행했다. KF-16 도입 이후에도 F-4 팬텀은 (F-16 계열 항공기와 함께) 한국 공군의 핵심전력이었다.
국내에서 F-4 팬텀의 별명은 ‘불멸의 도깨비’다. 수평꼬리날개 사이로 두 개의 엔진이 내뿜는 붉은 화염은 도깨비 얼굴을 연상시킨다. 팬텀의 전투력이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막강해서 붙었다는 설도 있다.
팬텀은 1958년 첫 비행을 한 후 1961년부터 실전 배치됐다. 팬텀은 공중전 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폭격 및 지상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CAS)도 가능하다. 미군이 운용했던 팬텀은 핵폭탄까지 투하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F-4D를 운용한 151 비행대대는 단일 기종 41년 운용, 24년 7개월 무사고라는 기록을 세우고 2010년 6월 해체됐다. 더 이상 날지 않게 된 F-4D는 대전 현충원과 가평군청 등 지상 전시대 7곳에 전시되고 있다.
공군은 F-4를 개조한 RF-4C 정찰기 18대를 1989~1990년에 도입했다.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사는 RF-4C 생산을 1966년 11월 시작한 이후 1973년 종료했다. 한국 공군은 미 공군이 운용하던 RF-4C 정찰기를 1990년 9월 15억4000만원을 주고 처음 구매한 이후 군사분계선(MDL) 남쪽 상공에 띄워 북한군에 관한 정보 수집에 적극 활용해 왔다. RF-4C는 2014년 6월 한국 공군에서도 사라졌다.
현재 F-4 팬텀을 아직도 운용 중인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튀르키예, 그리스, 이란 등 4개국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들 국가도 팬텀의 퇴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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