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저출산이든 저출생이든 국가가 소멸하는 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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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저출산 대신 저출생, 출산율 대신 출생률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계를 중심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제기되어 왔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다출산'이라고 하고, 그런 사례를 '다둥이', '다자녀 가족' 등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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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한 경쟁을 줄이고 태어난 지역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족들과 잘 살고 직장도 구하고 지역에 있는 좋은 학교에 가고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는 것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이 발언은 그 내용 외에도 ‘저출생(低出生)’이라는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다. 인구 감소와 관련해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용어는 저출산(低出産)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 명칭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일 정도다. 같은 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모두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는데, 두 당 모두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썼다.
저출산 대신 저출생, 출산율 대신 출생률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계를 중심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제기되어 왔다. 출산은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여서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처럼 오인될 수 있으니, ‘태어나다’는 의미인 출생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출산율·출생률은 뜻이 다른 학술 용어다. 일반적으로 출산율이라고 부르는 합계출산율(合計出産率, total fertility rate)은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다. 조출생률(粗出生率, crude birth rate)은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말한다. 특정 1년간의 총 출생아 수를 그 해의 7월 1일의 인구수(연앙인구)로 나눈 수치를 1000분비로 나타낸 수치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지만, 조출생률은 4.9명이었다. 이 조출생률을 줄여서 출생률이라고 한다.
복지부는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저출생이라고 바꾸자’는 내용의 국회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 “가임 여성 수가 아닌 전체 인구 대비 출생아 수를 측정하는 출생률은 고령화, 남녀 성비 등 현재의 인구 구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실제 출산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했다.
사실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 인구가 늘어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차원이 아니라, 애초에 잘못된 조어(造語)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저(低)는 ‘낮다’는 뜻이다. 출산이든 출생이든 아이가 적을 수는 있어도 낮을 수는 없다. 비율(比率, rate)은 높고 낮은 게 있어 저출산율·저출생률은 가능하지만, 저출산·저출생은 부적절하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다출산’이라고 하고, 그런 사례를 ‘다둥이’, ‘다자녀 가족’ 등으로 표현한다. 많다는 뜻인 다(多)의 반대는 적다는 뜻인 소(少)다. 그래서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은 한국의 ‘저출산’에 해당하는 용어로 ‘소자화(少子化)’를 쓴다. 아이(子)가 적다(少)는 뜻이다.
어차피 잘못된 조어를 놓고 저출산이냐 저출생이냐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갈수록 적어지는 것은 젊은 층이 결혼을 하지 않아서고, 그 원인은 연애를 하지 않아서다. 남녀가 만나지 않는 건 젠더 갈등이 커지며 서로를 싫어하기 때문인데, ‘저출산이다, 아니다 저출생이 옳다’라며 정부·정치권이 오히려 젠더 갈등을 더 부추기는 셈이다.
인구 감소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소멸한다. 남녀 싸움만 부추기지 말고 알기 쉽게 ‘국가 소멸’ ‘인구 재앙’ 같은 용어를 사용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를 국민들이 직관적으로 느끼도록 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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