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름다운 청년…"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229명 울린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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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여러분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피해자만 200여 명에 달하는 부산 지역 최대 규모의 전세사기 사건의 1심 선고 직후 담당 박주영 판사는 피해자들에게 "잠깐 할 말이 있으니 그대로 계셔 달라"고 말했다.
박 판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보내온 탄원서 약 40매를 법정에서 하나씩 읽기도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기원한다"는 박 판사의 위로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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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 15년 선고
법정서 피해자 탄원서 40개 읽기도
절대로 여러분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지극히 평범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입니다.
24일 박주영 판사가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남긴 '당부의 말씀'
24일 오전 부산지법 동부지원 법정. 피해자만 200여 명에 달하는 부산 지역 최대 규모의 전세사기 사건의 1심 선고 직후 담당 박주영 판사는 피해자들에게 "잠깐 할 말이 있으니 그대로 계셔 달라"고 말했다. 박 판사가 미리 적어온 '당부의 말씀'을 읽자 법정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박 판사는 "한 개인의 욕망과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이 여러분과 같은 선량한 피해자들을 만든 것"이라며 "결코 여러분이 부족해서 이런 피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 1단독 박주영 판사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A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0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3년간 부산 일대 건물 9채(296세대)를 매입해 임대사업을 하면서 임차인 229명에게 전세 보증금 180억 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자기 자본을 거의 투자하지 않고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무를 부담하거나 담보대출을 승계하는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판사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13년보다 2년 더 많은 형량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이 편취한 전세보증금 중에는 누구보다 근면하고 착한 젊은이들이 생애 처음 받아본 거액의 은행 대출금과 주택청약, 보험과 적금, 월급 일부, 커피값·외식값같이 자잘한 욕망을 꾹꾹 참으며 한 푼 두 푼 모은 비상금과 그들의 부모가 없는 살림에도 자식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며 흔쾌히 보태준 쌈짓돈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고 적은 판결문을 읽었다.
A씨를 향해 전세사기가 서민 생활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중대범죄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은 피해 복구를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엄벌을 거듭 탄원하고 있어 중형이 불가피하다"며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보내온 탄원서 약 40매를 법정에서 하나씩 읽기도 했다. 탄원서 내용에 따르면, 40대 중반에 어렵게 모은 돈으로 독립했지만 사기를 당한 피해자 A씨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한 것 같다"고 자책했다. 피해자 B씨는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 전날 파혼을 당했고, 피해자 C씨는 자취하는 딸을 위해 부모님이 보내준 1,600만 원을 사기로 잃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기원한다"는 박 판사의 위로에 눈물을 흘렸다.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검찰의 구형보다 많은 형을 선고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동종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형이 계속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박 판사는 지난해 12월 20일 특수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노숙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뒤 중국 작가 위화의 책 '인생'과 현금 10만 원을 건네 화제가 됐다. 그는 노숙인에게 "나가서 상황을 잘 수습하고 어머니 산소에 꼭 가보라"고 당부했다. 박 판사는 '어떤 양형 이유'(2019), '법정의 얼굴들'(2021)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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