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석유에 대비해야 하는 이 나라…"데이터가 넥스트 오일"
2023년은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해 중동 산유국들에 생존의 위기감을 느끼게 만든 한 해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중동 국가들의 오랜 먹거리인 석유에 대해 ‘2030년 수요 정점론’을 처음 언급해 사실상 원유 시대 종말의 시한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난 9~11일 UAE의 토후국 아부다비에서 만난 정부·기업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넥스트 오일(차세대 먹거리)'을 언급했다. 첨단기술 연구·개발 및 상용화를 총괄하는 ARTC(아부다비첨단기술연위원회)의 파이살 알 반나이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국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가장 마지막 배럴의 석유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프라·관광업 키웠으니…다음은 딥테크"
아부다비의 현재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기준 3000억달러 내외로 추산된다. 아부다비 정부는 이를 2040년까지 1조달러로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중 80%를 비(非)석유 부문에서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를 위해 아부다비가 최근 집중하는 분야는 '딥테크(Deep Tech)'다. 석유 판매로 거둔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과학·공학 기반의 첨단기술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파이살 총장은 아부다비가 차세대 먹거리로 제조업이나 관광업이 아닌 딥테크를 택한 배경에 관한 질문에 "UAE는 건국된 지 약 50년이 된 젊은 국가로서 초기에 기본 인프라를 건설한 뒤 다음 단계 투자로 이어진 관광업, 서비스업까지 완성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오늘날 세 번째 단계의 투자 분야는 지식경제 및 첨단기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ATRC가 만든 생성형 AI 거대언어모델(LLM) '팰컨 시리즈'는 성능과 이용률 측면에서 최근 메타(옛 페이스북)의 라마 시리즈를 제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최근 해외 언론에서 LLM의 유망 국가로 미국, 중국 그리고 UAE를 꼽는다"며 "팰컨 시리즈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었고 이는 AI 관련 분야에 대한 공격적인 추가 투자를 유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ARTC가 생성형 AI 외에도 헬스, 식품 및 농업, 안전 및 보안, 지속가능성, 항공우주, 운송 등 7개 분야에서 현재 10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진행하고 있어 인재 유입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파이살 총장은 "우리는 석유에서 얻은 자본을 기술 경제를 가속화하는 데 사용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고 한국처럼 기술 수출국이 되는 게 목표"라며 "그중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단연 인재 유치"라고 말했다. 이어 "ATRC는 올해 안에 자율 주행, 보안시스템, 재료소재 등 다른 분야에서도 4~5개의 회사를 추가로 출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가 믿고 유전자 정보 제공…수월한 데이터 수집
생성형 AI 확장의 핵심 요건은 데이터 확보다. 아부다비는 정부와 국민 간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수월하게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이는 헬스케어 기업 M42가 단기간에 이룬 성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M42의 자회사 G42헬스케어는 인간 유전자와 폐수 등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전염병 확산 및 개인의 질병 발현 가능성 등을 조기에 차단하는 예방 서비스와 개인별 약을 제조하는 정밀 제약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알바라 엘카니 M42 운영 부문 선임이사는 "아부다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아부다비 국민(거주자 제외)의 약 60%에 달하는 57만명의 유전자 정보를 3년여만에 수집했다"며 "국민들이 정부의 리더십을 믿고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해. 영국 국적의 그는 "내가 만약 영국에서 영국 정부로부터 유전자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절대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한 뒤 "그 어떤 나라도 쉽게 이루지 못한 성과를 아부다비가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G42는 미국과 영국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최신 설비들을 들여와 유전자 분석 업체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의 시설(약 4500㎡)을 갖추고 단기간에 가장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다룬 기업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렇게 수집된 막대한 양의 정보는 아부다비의 '넥스트 오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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