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료 10억 시대? 문제 맞죠, 그런데 방송·제작사 책임도 커 (종합)[홍세영의 어쩌다]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실에서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 플랫폼 관계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드라마 산업의 위기 문제와 해결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드라마 업계 전반적으로 제작 실무 책임자들 의견인 만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콘텐츠 제작 관계자나 정책 담당자들이 참고할 만한 의견이 많았다. 특히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주연 배우 출연료 인상으로 인한 총제작비 상승 문제와 그에 따라 발생하는 제작완성도 저하 등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면서 해결책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한 방송사 참석자는 “수없이 많은 일을 하면서 여러 협상의 과정에서 늘 생기는 문제가 연기자 출연료인데, 주연은 이젠 억소리가 아니라 회당 10억 원 소리가 현실이고, 이젠 어떠한 자구책을 찾아야만 할 때가 왔다. 더욱이나 줄어든 편성을 놓고, 제작사들이 그나마 편성이 용이하게 담보되는 연기자들의 요구대로 회당 수억 원을 지불해가며 제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으며, 이는 또다시 제작비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말했다.
다른 제작사 관계자는 “일부 스타 연기자들이 계약 시 방송이 나갈 플랫폼을 미리 한정하고, 현장에서 대본을 바꾸는 것도 비일비재하며, 감독을 교체하는 등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제작사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며 “제작사와 방송사가 드라마 판을 키웠지만 제작사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배우들만 그 과실을 가져가는 게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 있다. 매니지먼트사와의 협상이건 정책 수립이건 시급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 역시 “최근 작품을 준비하면서 배우들의 캐스팅을 진행하였는데 회당 출연료를 4억 원, 6.5억 원, 7억 원을 불렀다. 요즘 출연료 헤게모니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는 언론 보도에서 보는 수치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급한다”며 “중국은 배우 출연료가 총 제작비 40%를 넘길 수 없고 출연료 중 주연급의 출연료는 70%를 넘길 수 없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합리적이고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출연료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고 했다.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제작비 한계로 대규모 전쟁 장면에서 보조 출연이 많이 출연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이런 부분이 제작비가 많이 들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제작사 관계자도 “높은 출연료를 받아도 스타가 있는 작품은 두 배 이상의 구입 제의가 오는 것을 보면서 무작정 출연료가 적은 배우를 쓸 수도 없다는 게 뼈아픈 현실이지만, 방송 플랫폼 관계자분들이 이런 부분들을 감안하여 스타 배우가 없어도 좋은 작품이라면 편성에 힘을 실어주어 업계가 깊은 악순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다른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탑급 배우 못지않게 중간 단계 배우들의 출연료가 크게 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계약을 할 때, 회당보단 8~16부에 얼마를 받았으면 그냥 턴키처럼 한 작품의 촬영 기간 단위로 계약하자고 주장한다”며 “출연료도 작품당 통 금액에서 상승분을 따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회당 단위로 출연료를 올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회당 출연료를 회차로 지급할 게 아니라 총 촬영 일수, 촬영 시간 등으로 출연료를 지급하자는 방안도 나왔다.
한 관계자는 “출연료 협의를 하다 보면 방송과 OTT 출연료 차이가 크게 난다. 방송에선 400만 원 받는 배우가 OTT에선 1500만 원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출연료 구조를 볼 때 5000만 원 이하의 배우가 10% 인상을 한다 해도 500만 원으로 심히 부담되지는 않겠지만, OTT로 넘어가면서 배로 뛰고, 다시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본부장은 “회당 제작비가 12~15억 원씩 되고 있는데 솔직히 출연료를 3000~4000만 원씩 올려 주는 건 힘들다. 문제는 지난해와 재작년에는 이 정도 금액에도 성사되었던 배우들이 지금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편성 개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내년에도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예전엔 배우 한 명당 소화하는 작품 수가 많았는데 이젠 편수도 적고 나와 있는 대본만 많고 그 외에도 제작되고 있는 게 많아서 일단 몇 개를 걸어놓고 재고 있다. 같은 배우, 같은 감독으로 2~3개 작품씩 걸어놓고 편성되는 작품만 하겠다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의 시장이 암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캐스팅할 때, 우리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의 작품 제작비가 크게 차이가 나는데도, 그러한 기준을 우리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 같아 곤혹스럽다. 이 출연료 적정선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당 수억 원에 이르는 스타 배우들의 인기에만 편승하지 말고, 철저한 오디션을 통하여 검증된 연기자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연출과 촬영, 미술 등에 제작비를 더 많이 할애하여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하며 이러한 작품에 방송사나 채널에서도 과감하게 편성을 해주는 건강한 환경이 시급하게 조성돼야 한다는 뼈아픈 호소다.
이밖에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스태프 비용 역시 많이 늘어났으며, 미술비와 CG 용역비 또한 많이 늘어난 점이 거론됐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정부의 IP 보유 권장 정책하에 선제작하는 작품의 편수가 과거 2년 동안 크게 늘었으나 방송사의 상황 악화로 인해 제작을 다 마치고도 표류하고 있는 작품이 20편 가까이 되며, 이에 약 3,000억 원 정도가 잠겨 있다고 하는데 이는 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시급하게 정부 유관기관이 나서서 해소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드라마 업계 관계자들 하소연은 비슷하다. 제작 환경에 있어 높은 제작비 그중에서도 살인적인 주연 배우 출연료에 대한 고충을 전했다. 문제는 이 환경을 조정한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문제다. 애초 드라마 작품당 계약이 아닌 회당 출연료 책정을 시작한 것은 지상파 3사 채널이다. 편성 회차에 따른 출연료 지급은 ‘편성 갑질’에 용이한 방송사 입맛대로였다.
특히 재방송 등 배우들 퍼블리시권(초상권)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하기 위해 방송사들의 편법, 꼼수 금액 책정이 회당 출연료다. 이런 문제를 애초 정리하지 않고 배우들 출연료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OTT로 인한 출연료 인상은 배우들 퍼블리시권에서 출발한다. 작품 노출 기한이 없고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작품으로 인한 퍼블리시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출연료가 과하게 책정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애초 업계에서 충분한 논의, 협의가 있어야 했다.
고액의 출연료를 부르는 배우들도 문제지만, 톱스타 기용에 목을 매는 제작 환경도 문제다. 애초 ‘한류’, ‘글로벌’ 꼬리표가 없는 배우들 출연료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해외 판매만을 위한 제작 환경을 이미 조성해 놓고 치솟는 출연료를 감당하려니 제작 환경이 어려울 수밖에. 내수용 제작 환경에서 ‘개천용’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창출하는 것이 제작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이미 제작자들은 안다. 중국 시장만 의지했던 과거 한한령으로 한차례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를. 코로나19 팬더믹 사태로 ‘언택트 꿀맛’을 봤다면, ‘엔더믹’ 이후 시장이 달라질 것도 예측했어야 했다. 시장 편승 의존은 결국 자멸이라는 것을. OTT로 커진 시장 파이가 OTT 시장도 위태로운 지금 드라마 제작 환경은 쇄신밖에 답은 없다.
끝으로 수억 원을 회당 출연료로 부르는 배우들이 자각해야 한다. 써줄 곳이 없는 시장에서 배우들이 살아남는 길은 없다. 광고로 연명하는 것도 일부 톱스타 이야기다. 톱스타라는 자리는 사실 한정적이다. 그 자리를 지킬 힘 없다면 출연료에 집착하지 말고 꾸준함에 집착하길 바란다. 매년 라이징 스타는 등장하고 포화 상태인 드라마 시장에서 배우로서 살아남는 길이다.
홍세영 동아닷컴 기자 project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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