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중립성’이 먼저다[시평]

2024. 1. 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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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자문위 분과위長 맡은 김경율
사퇴해도 시스템 결함은 남아
전문성으로 중립성 보완 못해
기금운용委 정부위원 줄이고
민간위원 선임할 기구도 필요
중립·전문성 강화할 입법 시급

최근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국민연금 지배구조개선 자문위원회 ‘주주권행사분과’ 자문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을 계기로 새삼 중립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외부 자문위원은 직위가 아니라, 단순 고문 또는 자문 역할에 불과하므로 겸직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 없던 정치적 독립성이 왜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대다수는 김 비대위원이 국민연금 자문위원직을 사임하면 이 논란이 수습될 것으로 보는 듯하다. 김 비대위원도 구두로 사임 의사를 표시했다니 이를 문제 삼는 게 오히려 더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논란은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외면한 국민연금법의 제도적 결함이 가져온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란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특히 이번 사태가 큰 논란을 불러온 것은, 시너지효과를 조작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김 비대위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법원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 김 비대위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주주권행사분과에서 반드시 손배소송 제기를 결정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즉, 구체적인 범죄구성요건을 충족하는 증거가 없더라도 시너지효과를 조작했다는 포괄적인 이유를 들어 기업주를 형사처벌 하고 그 민사책임을 묻는 연금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물론, 김 비대위원이 ‘시너지효과 조작설’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정작 주주권 행사 시에는 객관적이면서 공정하게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김 비대위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적 문제라는 점에서 좀 더 제도적 해결 방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훼손한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윤석열 정부가 해결하기 위해 지배구조개선자문위원회를 설치한 만큼 제도적 개선이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법 개정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윤 정부는 중립성이 부족한 문제를 전문성을 강화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과거에는, 주주권 행사 여부는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고 12%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경우로 내부적 판단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만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찬반 결정을 내리는 구조였다. 이것을 윤 정부는 지배구조개선분과와 주주권행사분과, 스튜어드십행사분과를 총괄하는 ‘지배구조개선자문위원회’를 설치해 기금운용본부의 전문성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오히려 이것이 국민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비대위원이 속한 주주권행사분과는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있는 180여 개 국내 우량 상장사를 상대로 경영 참여와 감독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조직이다. 이 분과위윈회의 위원장이 바로 김 비대위원인 만큼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 분과위가 악의나 중과실로 인해 대표소송 등 주주권을 행사해 회사나 국민연금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위원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규정을 신설하면 해결된다. 국민연금법에 위원들이 상법상 업무집행지시자 등에 해당한다는 근거 규정만 두더라도 어느 정도는 국민연금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패소한 경우 국민연금과 회사에 대해 위원들이 연대해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만큼 주주권 행사 때 신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확실한 해법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중 정부위원의 수를 4분의 1 이하로 줄이고, 민간 위원들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닌 ‘국민연금인사위원회’(가칭)가 결정토록 법을 개정하는 일이다.

윤 정부는 차제에 국민연금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전문성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신기원을 세우기를 기대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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