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대로만 했어도 승승장구? '재벌집' 이어 '고려 거란 전쟁'도 '뱀 꼬리' 위기[M-scope]
길승수 작가-이정우 작가, 원작 두고 갈등
(MHN스포츠 정승민 기자) '용의 머리'를 보여주며 '대작'으로 평가받았던 '고려 거란 전쟁'이 '꿈'이었다는 '뱀의 꼬리'로 원성을 받은 '재벌집 막내아들'의 뒤를 잇게 될까.
최근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을 두고 원작자와 대본 작가의 갈등 양상이 고조되고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은 KBS 대하사극의 얼굴이었던 최수종이 10년 만에 복귀하는 사극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고, 지난해 마지막 날 열린 '2023 KBS 연기대상'에서는 최수종이 대상을 수상했다.
K-콘텐츠 온라인 화제성을 분석하는 펀덱스에 따르면 '고려 거란 전쟁'은 TV-OTT 조합 화제성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고, 시청률 또한 10%를 돌파하고 있어 '대작'으로서의 기대감이 모였던 상황이다. 하지만 17~18회 이후 이 분위기는 '무리수 전개'라는 시청자들의 지적에 한풀 꺾이고 있다.
원작 '고려 거란 전쟁: 고려의 영웅들', '고려 거란 전쟁: 구주대첩' 등을 집필하고 KBS와 원작 계약을 맺었다는 길승수 작가 또한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고려 거란 전쟁'에 쓴소리를 전했다.
앞서 길승수 작가는 '고려 거란 전쟁' 첫 방송이 시작한 지난해 11월 11일부터 방송 피드백에 나선 바 있다. 그는 "원작자로서 드라마 방영 중 스토리나 캐릭터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짚는 건 필요할 것"이라며 '천추태후를 전하가 아닌 폐하라 칭하는 것', '소손녕의 1차 침공 때 고려인 수만이 거란에 포로로 잡혀갔다는 대사'를 짚으며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원작 언급이 없었다며 불만을 제기한 길승수 작가는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과 작품이 나오긴 하지만 KBS 언론 배포 보도자료나 홈페이지에 원작 언급은 전혀 없다. 원작과 훌륭한 자문 위원의 존재를 지우고 싶은가 보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길승수 작가는 '고려 거란 전쟁' 17~18화 방송 이후 비판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해당 회차에는 우군과 함께 지방 개혁을 강행하는 현종(김동준)과, 이에 반대하며 파직까지 당하는 강감찬(최수종)의 모습이 그려졌다. 심지어 현종은 강감찬을 찾아가 목을 조르더니, 말을 타고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낙마하는 엔딩이 그려졌다.
이를 두고 길 작가는 "현종의 지방제도 정비가 나오지만, 드라마처럼 심한 갈등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현종의 낙마는 원작에 없는 내용"이라며 "쓸데없는 장면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충분히 받은 뒤 대본을 썼어야 하는데 숙지가 충분히 안 됐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길 작가는 "결국 대본 작가가 본인 마음대로 쓰다 이 사단이 났다. 양규를 자기가 쓴 캐릭터가 아니라고 해서 비중을 확 줄였고, 현종이 양규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장면도 삭제됐다"며 "정말 한심하다. 다음 주부터는 대본 작가가 정신 차리길 기원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전우성 감독은 SNS를 통해 "메인 연출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길승수 작가와의 원작, 자문 계약은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해 보고자 맺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전우성 감독은 이정우 작가의 입장문도 함께 개재했는데, 이에 따르면 "고려 거란 전쟁은 KBS 자체 기획으로 탄생했다.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 작가가 된 후 원작 소설을 검토했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려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작가는 "처음부터 별개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원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원작 소설가가 저에 대한 자질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은 행동이다. 제가 굳이 이런 입장을 밝힌 이유는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영광도 오욕도 모두 제가 책임질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제작진에 더해 극 중 야율융서 역으로 분하는 배우 김혁도 SNS를 통해 "100% 역사 고증 프로가 아니라 고증을 토대로 재창조해 드라마로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고려 거란 전쟁을 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최근 퓨전사극이 많이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하사극이 오랜만에 시청자들과 마주했다. 보통 대하사극이라면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어 '철저한 역사 고증'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마련인데, 퓨전사극이라고 고증에 손을 뗐던 건 아니다.
MBC에서 공개돼 큰 사랑을 받으며 대상 수상자를 배출한 퓨전사극 '연인'은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상황 속에서 고증에 힘을 쏟았고, '허구의 인물'을 '당시 있을 법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연인' 황진영 작가는 "길채가 심양으로 끌려가는 개연성이 중요해서 실록과 자료를 참조했고, 실제 인조가 유시문을 반포했던 상황으로 길채를 휘말려 들어가게 했다"며 "할 수 있는 한 모든 논문과 실록, 서적을 검토했다"고 집필 과정을 밝힌 바 있다.
퓨전사극마저도 철저한 고증에 신경 쓰고 있는 상황에서 정통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또한 방영 전부터 제작발표회와 홍보자료 등을 통해 '철저한 고증'을 강조해 온 바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고려 거란 전쟁' 제작발표회에서 전우성 감독은 "보통 거란을 털가죽 입고 도끼를 휘두르는 야만적인 국가라고 생각하시는데, 조사해 보니 거란군은 송나라의 규격화된 갑옷을 착용했다"며 "내부적으로는 거란군이 고려군과 차별화가 안 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 고증에 맞춰 군복을 입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를 비롯한 '고려 거란 전쟁'의 고증은 호평으로 이어졌다. '고려 거란 전쟁' 전투 장면에서는 갑옷이 칼에 쉽게 베이지 않았고, 합을 거듭하며 갑옷이 점점 해체되는 현실적인 묘사 장면으로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전투 장면과 함께 '철저한 고증'은 헐겁게 변한 것일까. 고증을 지적한 길승수 작가는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고려 거란 전쟁'이 원작을 두고 내부 충돌 중이지만, 원작을 통해 철저한 고증을 받았다는 전투 장면은 호평을 받았고 대본 작가가 다시 설계했다는 이후의 장면은 '무리수'라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KBS 대하사극 '장영실'도 허구의 인물을 도입하며 극의 특성을 보여주긴 했다. 또한 '대왕 세종' '광개토태왕' 등 KBS 대하사극에서는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인물의 수난기를 그리다 마침내 성군으로 거듭난 세종과 담덕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이들이 지금 그려지는 현종처럼 '금쪽이'는 아니었다.
원작을 두고 대립하는 '고려 거란 전쟁'을 보면 비슷한 결로 시청자들의 불만을 안은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 생각난다. 윤현우(송중기)가 진도준(송중기)의 삶을 살며 순양그룹을 무너뜨릴까 했더니 '꿈'으로 끝나 시청자들의 원성을 산 '재벌집 막내아들'.
결국 두 작품 모두 원성의 이유는 원작에서 벗어난 흐름이었다. 원작대로만 갔어도 '대작'으로 남았을 두 드라마이기에, 결국 모든 비판은 성장을 위해 작가들이 짊어져야 할 부분이 아닐까.
사진=KBS 2TV '고려 거란 전쟁', MBC '연인', JTBC '재벌집 막내아들', 전우성 감독 ⓒ MHN스포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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