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뛰쳐나온 교수님 "화학 알면 눈이 떠지는데, 왜 모르려고 하나요?"
화학으로 세상사 설명...20년 전 글쓰기 눈떠
호기심 죽이는 교육...화학과 '케미' 확산 기대
"한글 자음·모음만 알면 누구나 화학을 이해할 수 있어요.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면 화학이 외계어가 아닌 모국어처럼 느껴지는 건 시간문제라니까요."
네이버 지식백과 연재 코너 '화학산책' 연재로 이름난 여인형(67) 동국대 명예교수는 화학을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애써온 과학자다.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꾸준히 해온 그의 궁극적 목표는 화학이 보통사람의 '교양'으로 자리 잡는 것. 암호 같은 '주기율표'부터 떠오르는 탓에 화학은 '범접할 수 없는 어려운 것'으로 치부된다. 그럴 때마다 은퇴한 노교수의 마음은 분주해졌다. 최근 그가 30년 화학 공부 비법을 녹여 '여인형의 화학공부'라는 제목의 책을 써낸 이유다.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여 교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화학물질"이라며 "화학을 안다는 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아탑 교수에서 '모두의 화학 선생'으로
여 교수는 종일 연구실에 틀어 박혀 지낸 '찐' 연구자였다. 국제학술지에 논문 70여 편을 발표하며 크고 작은 연구 성취를 이어가던 이력에 변화가 시작된 건 20년 전.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많은 학생들이 취업 시장에 눈을 돌리다 보니 연구생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거예요. 한창 연구 열정을 불태울 시기에 학생이 없어 손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방황하던 여 교수를 구한 건 글쓰기였다. 그의 토막글을 본 친구의 소개로 일간지에 일주일에 한 편씩 온라인 칼럼을 쓰게 됐다. "논문 외에는 글을 써 본 적이 없으니 쉽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더군요. 파마를 할 때 왜 두 단계 과정(연화와 중화)을 거치는지, 속이 쓰릴 때 제산제를 먹는 이유가 뭔지 등 화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했거든요."
칼럼을 디딤돌 삼아 2009년에 시작한 네이버 지식백과의 '화학 산책' 연재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일상 속 화학이야기는 수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며 누적 조회수 1,000만을 돌파했다. 좁은 강의실을 벗어난 과학 교육자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대학에 문과생만을 위한 화학 교양 수업과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인 KMOOC(케이무크)에 화학 수업을 개설했다. '공기로 빵을 만든다고요', '퀴리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 등 단행본을 엮어내고, 전국 초·중·고교와 대학교를 돌며 재능 기부 형식으로 화학 강의를 시작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화학교과서를 쓰다
여 교수는 '여인형의 화학 공부'를 쓰면서 화학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한 철학과 비결을 총동원했다. "국어로 읽는 화학"이라는 그의 표현대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화학 반응과 원리를 쉽게 풀어냈다. 10장으로 구성된 책은 왜 화학을 배워야 하는지에서 출발해 원소 118개로 구성된 주기율표, 기본 용어와 주요 개념, 미래 화학자 앞에 놓인 도전 무대까지 화학의 전 분야를 망라한다. 독특한 점은 다양한 일상 사례가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선회를 먹을 때 레몬 조각이 왜 같이 나오는지, 미용실에서 파마 약품을 바르면 머리카락이 왜 곱슬곱슬해지는지를 알려주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물질과 현상에 화학이 깃들어 있음을 깨우쳐 준다. "화학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구나, 세상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구나를 알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도 바뀝니다. 알면 궁금해지는 이치죠. 그때부터는 공부가 저절로 됩니다."
평생 교육에 몸담았던 학자로서, 여전히 예비 과학도를 만나는 교육자로서, 여 교수는 "지금의 줄 세우기식 대학입시 제도로 인해 기초 과학이 고사 직전"이라는 일침도 덧붙였다. "입시가 유일한 목표이니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얼마나 학문을 갈고닦았는지 평가할 기준도,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됐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후학을 위해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어야죠. 왕성한 호기심을 발산하는 (화학 연구) 초심자들의 눈빛에서 분명한 희망을 봅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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