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법카 돌려쓰기 실태① ‘수사 활동 지원’에 썼다더니… 검사들의 술·밥값 지출
지청장 등 고위 검사들이 먹은 회식비를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 두 개의 카드로 쪼개 결제하는 수법으로, 조사와 수사 업무 등에 써야 할 특정업무경비가 검사들의 술과 밥값으로 부정 사용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참석자 명단을 남기지 않으려고 검찰 회식비를 기관장 업무추진비로 두 번 나눠 결제하는 ‘카드 쪼개기’ 행태는 여럿 나왔지만, 검사들의 회식비를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로 나눠 부정 지출한 사례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사들의 술·밥값, 수사 업무에 써야 하는 특정업무경비에서 지출 첫 확인
뉴스타파를 포함한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공동취재단)이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업무추진비·특정업무경비 영수증을 교차 검증한 결과, 지난해 2월 고양지청장은 전입 검사들과 간담회 명목으로 회식을 한 뒤, 각각 지청장 업무추진비 카드와 고양지청 특정업무경비 카드, 두 개로 나눠 결제하는 방식으로 80만 원이 넘는 밥·술값을 세금으로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와 조사 업무에 쓰라는 특정업무경비가 검사들의 회식비로 돌려 쓰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검찰 특정업무경비는 특수활동비와 마찬가지로 ‘수사와 조사 등 특정 업무 수행에 들어가는 실 경비’에만 쓰도록 사용처가 엄격히 제한돼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 지침에는 “특정업무경비는 업무추진비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고양지청장은 “(지청장이 쓸 수 있는) 업무추진비 한도가 부족”했고, “후배 검사들과 밥과 술을 먹으며 격려하는 것도 ‘수사 활동 지원’으로 봐야 한다”고 항변했다.
공동취재단, 2023년 2월 7일 고양지청장의 장어집 회식 영수증 원본 입수
문제의 회식은 지난해 2월 7일 진행됐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은 이날 ‘전입 검사들과 간담회’를 하고 지청장 업무추진비로 45만 2천 원을 썼다. 업무추진비를 쓴 곳은 경기도 파주의 한 장어요리집이었다. 이곳은 장어 대자 한판 가격이 10만 원이고, 쏘가리 매운탕도 10만 원을 받는 곳이다. 예상보다 검사들의 회식 비용이 적게 나온 것이 조금 수상했다.
그런데, 고양지청장 남긴 이날 업무추진비 카드 영수증에는 카드 번호와 결제 시각은 모두 가려져 있고, 뭘 먹었는지 상세 주문 내역도 없었다. 그런데 영수증을 자세히 보니, ‘재발행’된 것이었다. 고양지청은 왜 ‘재발행된 영수증’을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자료로 붙여 놨을까.
공동취재단은 문제의 장어집 회식 영수증은 원본을 확보했다. 이날 총회식비는 업무추진비로 신고 45만 2천 원이 아니라, 두 배에 가까운 85만 2천 원이었다. 장어 특대 10만 원짜리 4개(40만 원), 쏘가리 매운탕 10만 원짜리 3개(30만 원), 여기에 ‘장어 특 한 마리’(5만 원)를 추가하고, 소주와 맥주를 합해 13병을 섞어 마셨다.
영수증 원본에는 먼저 40만 원을 선결제한 뒤, 저녁 9시 30분 14초에 나머지 45만 2천 원을 추가 결제한 것으로 나온다. 여기까지 보면, 업무추진비 50만 원 이상 사용시 참석자 명단과 소속을 남기지 않으려는 ‘카드 쪼개기’ 꼼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고양지청장은 쪼개기 한 금액 중 45만 2천 원은 자신의 업무추진비로 지출했다. 나머지 ‘40만 원’ 영수증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고양지청장 업무추진비 내역에서는 40만 원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고양지청이나 다른 검사가 개인 사비로 처리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고양지청 업무추진비 기록에 없는 40만 원 행방, 특정업무경비 지출기록에서 찾아
공동취재단의 취재 결과, 고양지청은 이 40만 원도 국민의 세금으로 썼다. 그것도 수사와 조사 업무에만 쓰도록 돼 있는 ‘특정업무경비’에서 지출했다.
지난해 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이 작성한 ‘검찰 수사 활동 지원 경비 지출기록부’에 38번째 기록을 보면, 2023년 2월 7일, 40만 원의 지출이 확인된다. 집행 용도는 검찰 송치 후에 붙이는 사건 번호인 ‘20XX형제XXXX호’와 ‘수사 활동 지원’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부를 뒤져보면, 40만 원 특정업무경비의 지출증빙 영수증이 붙어 있다. 물론 내역은 모두 가렸다.
이 특정업무경비 영수증과 공동취재단이 확보한 2월 7일, 장어집에서 결제된 40만 원짜리 영수증과 대조했다. 식당 주소가 같고, 식당 테이블 번호도 ‘A8’로 일치한다. 또한 승인번호 ‘4651 3754’, 여덟 자리도 똑같다.
결국, 고양지청장은 파주 장어집에서 전입 검사들과 모두 85만 2천 원어치 술과 고기를 먹은 뒤, 45만 2천 원은 자신의 업무추진비 법카로 처리하고, 나머지 40만 원은 고양지청의 특정업무경비 카드로 결제한 사실이 확인했다. 장어집에서 먹고 마신 검사들의 회식비를 마치 ‘형제 번호’ 사건의 ‘수사 활동지원’에 쓰인 것처럼, 특정업무경비 지출 기록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2023년 당시, 예산 지침 “특경비를 업추비 용도로 사용 안 돼”
특정업무경비는 검찰을 포함해 경찰, 국정원 등 수사와 조사 업무를 하는 정부 기관에서 주로 쓰는 예산이다. 특수활동비와 마찬가지로 ‘수사와 조사 등 특정업무수행에 들어가는 실 경비’에만 쓰도록 돼 있다. 때문에 특정업무경비를 수사 용도 외에 ‘00간담회’ 등 다른 예산으로 쓰지 못하도록 엄격히 사용이 제한된다.
또한 기획재정부가 2023년 발표한 ‘예산 및 기금운용 계획 집행 지침’을 보면, 특정업무경비는 “편성된 경비 목적에 맞도록 투명하게 사용하여야 하며, 업무추진비나, 축의금, 조의금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고양지청 고위 검사들이 먹고 마신 술과 밥값을 ‘수사지원활동’에 쓰인 경비인 것처럼, 증빙 자료를 허위로 꾸민, 예산 불법 전용 의혹이 제기된다.
수사 활동에 실제로 사용하는 경비로 돼 있고 업무추진비로 써서는 안 된다라고 돼 있는데 그걸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썼으니까 그러면 그거는 일종의 용도 예산의 용도를 벗어난 것이고 일종의 위임된 공무원들에게 위임된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국가에 손해를 끼친 거니까 써서는 안 되는 곳에서 쓴 거기 때문에 그거는 업무상 배임이 성립되고, 그거를 마치 제(기관장) 업무추진비 용도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만약에 그렇게 공시를 했다면, 그것도 굉장히 큰 문제가 되는 것이죠.
- 하승수 변호사/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장동철 당시 고양지청장, “전입 검사들과 밥과 술을 먹은 것도 ‘수사 활동 지원’이다”
특정업무경비를 검사들의 회식비로 부정 유용한 고양지청장은 장동철 현 서울고검 형사부장이다. 그는 지난 2020년 뉴스타파가 연속 보도한 ‘죄수와 검사’에서 죄수들의 편의를 봐주며, 수사실적을 쌓았다는 의혹을 샀던 인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에는 ‘대검 감찰 1과장’으로 감찰 업무를 맡았다.
공동취재단은 장동철 서울고검 형사부장에게 연락했다. 장동철 형사부장은 전입 검사들과 함께 밥과 술을 먹은 것도 ‘수사 활동 지원’으로 볼 수 있다고 항변했다.
■ 장동철 전 고양지청장: 그때 구체적인 건 기억이 안 나는데요. 일반적으로 봤을 때 전출 검사도, 그동안 수사할 때 많이 고생을 했으면 그 수사 지원이나 격려용으로 쓸 수 있는 거고 전입 검사 왔을 때는 당연히 또 쓸 수 있는 거고
□ 취재진: (검사들과 회식 자리가) 수사 지원 활동이 맞냐라는 거예요?
■ 장동철 전 고양지청장: 수사 지원 활동을 뉴스타파 쪽에서는 꼭 현장에 나가는 걸 수사 이런 걸로 생각하시는데, 수사하는 검사나 수사관들을 격려하고 하는 것도 다 수사 지원이라는 거죠.
□ 취재진: 45만 2천 원은 업무추진비로 쓰고 40만 원은 특정 업무 경비로 그게 분할이 되나요? 그 자리에서?
■ 장동철 전 고양지청장: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총무과나 예산하는 담당 쪽에서 얘기를 주거든요. 이번에 예산상 얼마 정도는 이 예산을 쓰고, 얼마 정도는 이 예산을 쓰면 예산 항목 분배가 맞다. 그럼 총무과 예산 담당하는 분한테 그 얘기를 듣고 기관장은 사실은 그 말을 믿고, 결제를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 장동철 서울고검 형사부장(전 고양지청장)
심지어 업무추진비 법카 한도가 있어서 회식비가 모자라면, 특정업무경비 법카로 돌려쓸 수 있다는 궤변도 펼쳤다.
■ 장동철 전 고양지청장: 그러면 직원들 간담회 할 때 무슨 돈을 써야 돼요? 내 개인 돈을 써요?
□ 취재진: 업무추진비로 쓰면 되죠.
■ 장동철 전 고양지청장:업무추진비가 한도가 있어서 모자란다니까요.
□ 취재진: (예산 편성 취지에) 맞춰서 써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예요. 장동철 전 고양지청장:수사 지원비도 수사하는 수사관들한테 격려비로 쓸 수 있다는 거예요.
- 장동철 서울고검 형사부장(전 고양지청장)
‘전출 검사 간담회’가 열린 같은 날, 같은 식당에서 업추비-특경비 동시 결제
이 밖에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 불법 돌려쓰기’가 의심되는 사례는 여럿 확인된다. 지난해 2월 2일, 이번에는 ‘전출 검사 간담회’였다. 이날 고양지청장은 고양시 또 다른 장어집에서 전출 검사들과 함께 회식했다.
그런데, 공동취재단이 고양지청의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 지출 기록을 교차 검증한 결과, 2023년 2월 2일, 이날 이 장어집에서 고양지청은 법카를 두 번이나 결제했다. 결제 금액은 각각 40만 원과 38만 9천 원이다. 이 중 40만 원짜리 영수증은 고양지청장의 업무추진비로 지출됐고, 또 다른 38만 9천 원짜리 영수증은 고양지청의 특정업무경비 지출 기록에서 나왔다.
또 지난해 3월 3일, 고양지청장은 일산의 한 중식당에서 고양지청 민원실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업무추진비 22만 3천 원을 썼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중식당에서 ‘수사 정보 활동 교류’라는 명목으로 특정업무경비 12만 3천 원이 동시에 지출됐다.
지난 2022년 10월 17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양갈비집에서 고양지청장은 형사부 검사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고양지청장 업무추진비 카드로 41만 9천 원을 썼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식당에서 특정업무경비로도 30만 원이 지출됐다. 특정업무경비 집행 명목은 ‘OO사건 정보 교류와 수사 활동 지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을 거예요.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을 특정업무경비로 쓰라고 하는 거예요. 업무추진비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가 확인한 걸로 따지면 그냥 쓸 수 있는 돈들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그냥 쓴다'라고 보이거든요.
- 채연하 사무처장 / 함께하는시민행동
고양지청, 3건의 ‘예산 불법 전용 의혹’ 묵묵부답
이 3건 모두 앞선 파주 장어집 사례처럼, 업무추진비 비용 일부를 특정업무경비로 처리한 것 아니냐는 ‘예산 불법 전용 의혹’이 제기된다. 그러나 고양지청이 3건의 카드 영수증에 있는 결제 시각, 테이블 번호 등을 모두 먹칠로 지운 탓에, ‘한 개의 회식 자리’였는지 여부까지는 최종 확인할 수 없었다.
뉴스타파는 고양지청에 질의서를 보내, 지난해 2월, 파주 장어집에서 확인된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 카드 돌려쓰기가 예산 부정 사용에 해당하는지, 또 의심 사례로 드러난 세 건의 영수증에 대해서도 결제 시각 등을 확인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고양지청은 현재까지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검찰 예산 검증 프로젝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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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법카 돌려쓰기 실태② 검찰 ‘음악 동호회 회식’도 특경비로 부정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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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강민수 cominso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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