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거부권 행사 취지 무력화한 판결에… 승소하고도 못 웃는 중노위
민노총 “尹 거부권이 법률에 反함을 보여줬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 근로자가 원청사를 상대로 임금 인상,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파업할 수 있도록 만든 ‘노란봉투법’에 대해, 최근 거부권을 행사했다.
24일 법원이 이러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취지는 물론 기존 대법원 판례까지 뒤집는 판결을 했는데, 이 판결로 승소한 소송 당사자는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정부 산하기관’이 대통령 국정 방향에 역행하는 승소 판결을 받아낸 셈이 됐다.
서울고등법원 행정6-3부(부장 홍성욱)는 이날 오후 CJ대한통운이 중노위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CJ대한통운은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과 직접 단체교섭을 해야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 사건은 2020년 3월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주 5일제와 휴일·휴가 실시’ ‘수수료 인상’ 등 6가지 사안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CJ대한통운은 “우리는 택배기사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아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거부했다. 택배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서울지노위는 CJ대한통운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상급기관인 중노위가 재심에서 “CJ대한통운이 실질적으로 택배기사의 업무에 지배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서울지노위의 판단을 뒤집었다.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참고해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2006년 대법원은 단체교섭의 당사자인 사용자를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고, 이후 관련 법이 바뀐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중노위에 힘을 실어줬다. 1심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은 대리점 택배기사들에 대한 관계에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단체교섭 거부는 노동조합법 제81조 제1항 제3호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므로 중노위의 재심판정은 적법하다”고 원고 패소판결했다. 이번 2심도 1심의 판결을 유지한 것이다.
1·2심 재판부의 논리는 ‘사용종속관계나 근로계약여부를 넘어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갖고 있다면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사용자 범위 확대론’에 기반했다. ‘사용자 범위 확대’는 지난해 국회에서 개정이 추진됐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결 정족수 3분의 2 이상 찬성기준을 넘지 못하면서 최종 부결됐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노랑봉투법이 통과된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택배노조 등은 판결을 앞세워 윤석열 대통령의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비판 공세에 나섰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선고 후 “‘진짜 사장 나오라’며 7년여를 외쳤던 택배 노동자들을 비롯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절규와 외침이 옳았다는 것을, 노조법 2·3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이 법률에 반하는 행위였음을 법적으로 확인받은 역사적 판결”이라고 했다.
민노총도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판결은 개정 노조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부당함을 명백히 밝혔다”라며 “간접고용 노동자와 특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원청교섭 요구 투쟁을 전개하고 노조법 개정을 쟁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노위는 사용자성 확대 인정을 취소해달라는 재판에서 승소하게 되면서, 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에 정부기관인 고용부 소속 위원회가 찬성한 모양새가 됐다. 김태기 중노위원장은 “이 소송은 전임자 때 시작된 것이다. 내 개인 입장이야 위원장 되기 전에 칼럼을 많이 써서 모두가 알 것”이라며 “현재 위원장으로서 이 사안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직전 중노위원장은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다.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한 무리한 법리 해석과 택배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우며, 판결문이 송부되는 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중노위가 노, 사, 공익 3자로 구성된 준사법적 성격을 지난 ‘합의제’ 행정기관이라는 조직 특성을 참작하더라도, 이처럼 입장차를 나타내는 것은 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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