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치가 무슨 말입니까?”…상자 가져갔다 경찰서까지 간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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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녁 6시 휑한 서울 성북경찰서 로비에 발을 들인 강아무개(81)씨가 형사에게 물었다.
성북구 삼선동에 사는 강씨가 반려견 사료를 사러 나갔다가 한 주택 대문 앞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상자를 가져온 게 화근이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강씨가 가져간 플라스틱 상자는 폐품이 아니라 '택배함'으로 쓰이는 '남의 물건'이었다.
강씨는 "담뱃값이라도 하려고 그랬던 건데, 운 나쁘게 절도범으로 몰려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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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가 무슨 말입니까?”
지난 4일 저녁 6시 휑한 서울 성북경찰서 로비에 발을 들인 강아무개(81)씨가 형사에게 물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수사결과 통지서’에는 송치가 결정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의 죄명은 절도. 소싯적 파출소 자율방범대원으로 일하며 통금위반범들을 잡던 그가 어쩌다 말년에 절도범이 돼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을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성북구 삼선동에 사는 강씨가 반려견 사료를 사러 나갔다가 한 주택 대문 앞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상자를 가져온 게 화근이 됐다. 평소 버려진 프라이팬이나 양은냄비 따위를 고물상에 팔아 용돈 벌이를 하던 강씨에게, 버려진 듯 보이는 상자 하나 가져가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강씨는 삼선동에서만 68년을 산 토박이로, 지난 1998년까지 인근 학교에서 소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한 뒤 100만원 남짓 연금을 받으며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공적연금 수혜자는 공공근로 대상에서 제외되는 탓에 무직인 강씨는 고물 수집을 소일거리 삼아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강씨가 가져간 플라스틱 상자는 폐품이 아니라 ‘택배함’으로 쓰이는 ‘남의 물건’이었다. 상자의 주인은 상자가 사라졌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인근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분석해 지난달 13일 강씨를 검거했다. 강씨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듣고 택배함을 주인집에 바로 돌려줬다. 사과하기 위해 2시간 동안 집 앞에서 기다렸지만 주인을 만나진 못했다고 한다. 강씨는 “담뱃값이라도 하려고 그랬던 건데, 운 나쁘게 절도범으로 몰려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강씨는 “상자를 훔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택배함이 버려진 물건이라고 보기엔 상태가 깨끗했다는 점에 비춰 고의가 있다고 보고 강씨의 절도죄를 인정해 검찰로 넘겼다. 상자 주인이 ‘상자를 다시 갖다 놓으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담벼락에 붙여 놓았음에도 반환이 이뤄지지 않았고, 애당초 담벼락에 ‘택배함을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는 점도 참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황상 몰랐다고 하는 강씨의 말에 설득력이 떨어져 고의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달 27일 강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했고 이러한 사실은 지난 8일 강씨에게 통보됐다. 강씨는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씨와 같은 소액 절도 사건은 최근 증가 추세다. 한겨레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10만원 이하 소액절도사건 건수’(경찰청) 자료를 보면 2018년 3만9070건에서 2022년 8만666건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1만원 이하 절도사건의 경우 7956건에서 2만3787건으로 4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강북구의 한 지구대 관계자는 “지난해 택배 기사가 물건을 배달하러 다녀온 사이 택배차 뒤에 세워둔 짐수레가 사라져 신고가 들어왔는데, 알아보니 폐지를 수거하며 생계를 꾸리는 할머니가 가져간 것이었다. 당시 택배 수레가 트럭 바로 뒤에 있었고, 상태도 깨끗하고 멀쩡했기 때문에 (절도 혐의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즉결심판 처분을 받았다”며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계층이 모여 사는 곳이면 이런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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