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마루타’ 731부대는 지나가버린 과거일까

한겨레 2024. 1. 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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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81)
‘경성크리처’의 인체 실험이 알려주는 것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의 한 장면.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모험 활극 또는 멜로라고 정의해야 할 넷플릭스 ‘경성크리처’는 특히 해외에서의 흥행 성적과 비교하면 여러 아쉬움이 있는 작품이라 그런지 관련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판으론 장르로서 크리처물, 즉 ‘괴물’이 등장하는 작품임에도 괴물의 활동이나 동작에 미흡한 점이 많다는 것, 배경인 1940년대 초 경성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처럼 풍요로운 곳이 절대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소모적으로 활용되는 인물들과 어색한 대사들에 대한 아쉬움이 주로 제기되었던 것 같다.

반면 그동안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일제의 인체 실험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은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소수 연구자들 외에는 괴담처럼 다루어지던 일본 731부대의 만행이 국내에 회자하는 것을 넘어, 외국에도 극을 통해 전해지고 있음은 분명 ‘경성크리처’가 이룬 성과라고 할 것이다. 나치 독일의 인체 실험, 강제 불임 시술, 안락사와 달리 일제의 행위는 그동안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작품이 그리는 방식으로 731부대, 또는 일제 인체 실험을 인식하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경성크리처’는 일본군 실험 책임자 가토 중좌와 흑막의 역할을 맡는 마에다 유키코라는 두 악마를 등장시켜 일제의 악행을 소수의 비뚤어진 탐심으로 표상한다. 다시 말해 작품은 괴물을 탄생시킨 인체 실험을 극악한 두 명의 명백한 의도로 인한 결과물이라고 전제한다.

그런 생각은 일제 인체 실험을 낳은 거악을 박멸하기만 하면 다시는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나치 독일은 히틀러만의 책임이고, 유대인 강제수용소는 아이히만이라는 희대의 악당으로 인해 벌어진 끔찍한 일이므로 이런 이들의 출몰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

물론 그들의 잘못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 없는 역사에 대한 가정을 우리는 얼마든지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보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해석했던 것처럼, 문제는 극악한 한 명이 아니다. 아렌트의 생각을 집약하는 표현 ‘악의 평범성’은 자주 끔찍한 일을 벌인 개인이 그런 일을 저지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나, 이것은 오류다. 악이 평범하다는 것은 평범한 개인도 끔찍한 악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물론 그것도 의미할 수 있지만,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새로운 것인 양 깨달아야 할까).

악의 평범성이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일제 인체 실험 또한 평범한 악이었다. 다시 말해 731부대에 속한 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구덩이에 몰아넣는 악당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실험에 참여한 대부분은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이런 실험은 의학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일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731부대는 일제의 패전 이후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리고 731부대를 우리가 다시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그들의 잔혹함이나 끔찍함도 숙고와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접근은 우리의 아픈 과거를 선정적인 오락으로 덮어버리는 실수로 끝난다.

여기에선 검토를 위해 간략히 드라마 ‘경성크리처’의 개요를 일별하고, 인체 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와의 연관성을 살핀다. 다음, 731부대가 여전히 문제인 이유를 생각해 볼 것이다. 미리 답을 내놓고 시작하자. 731부대를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무턱대고 생각하는 의학의 저변에 731부대의 정신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731부대는 의학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대상화할 때 벌어지는 절망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지금 우리라고 다를까.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포스터.

의학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묵인된 인체 실험

1940년대 경성에서 두 청년이 만난다. 남자는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되고, 돈이 나를 증명한다고 믿는 식민지 출신의 ‘뎐당포’ 주인이다. 여자는 아버지와 함께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다니면서 없어진 사람들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토두꾼’이다. 별로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삶은 남자가 실종된 한 여성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릴 상황에 부닥쳤을 때, 그의 탐색이 여자의 오랜 추적과 겹치며 서로 얽힌다.

한편 장소를 옮겨 가며 인체 실험을 계속해 온 일본군 집단이 있다. 이들의 목적이나 역할, 심지어 존재는 같은 일본군에게도 비밀인 것처럼 보인다. 부대의 대장은 시험관에 담긴 미지의 생명체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있으며, ‘나진’이라고 불리는 이 생명체는 숙주인 인간의 몸을 지배하여 괴물로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그들의 실험은 한 번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전쟁의 승리 또는 다른 목적을 위해 생명체(와 괴물)를 활용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경성의 한 병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각자의 목적으로 이 병원과 얽히는 두 청년. 이들은 병원에 갇혀 실험 대상이 된 이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일본군과, 그리고 그들이 만든 괴물과 마주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성크리처’의 이야기는 전쟁 포로 등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했던 731부대를 핵심 동기로 참조한다.[1]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부대의 설정이나 급하게 실험 자료 및 시체를 소각하고 이동하는 장면, 밭 전(田)자 형태의 지하실험실 등은 731부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려 한 노력의 결과다.

731부대는 주로 세균전 연구 등을 위하여 만주 하얼빈에서 일제가 운영한 특수부대로, 군인 외에 의사, 간호사들을 포함하여 구성되어 있었으며 실험 대상인 인간 피해자를 ‘마루타’라는 은어로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그 운영이나 세부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부대는 1980년대부터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선 1990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등장하여 그 끔찍한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졌으며 1998년 731부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이들은 세균전을 위한 콜레라균, 페스트균, 이를 옮기기 위한 벼룩과 가스 연구를 주로 수행하였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인체 연구를 진행했다. 장기 이식이나 각종 약품, 약제의 효과를 연구하는가 하면 여러 무기의 효과를 직접 관찰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루타라는 표현 자체가 이들의 행위를 잘 집약하고 있다. 마루타는 가지 등을 쳐낸 통나무를 뜻한다. 인간을 통나무라고 불렀던 이들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무엇을 했을지 나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부대는 극에서 그려진 것처럼 그렇게까지 비밀부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같은 일본군도 그 존재를 모른다는 설정은 한편으론 당황스럽다). 이런 실험을 731부대만 한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실험은 일본의 의과대학 실험실, 그리고 여러 의학자와 과학자를 통해 지원되었다.[2]

하지만, 전후 이들은 빠른 속도로 잊혔다. 비슷한 일을 했던 나치 의사들은 전범 재판에 부쳐지고, 그들의 악행에 대한 판단은 뉘른베르크 강령으로 남아 현대 연구윤리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일부가 소련에서 군사 재판을 받아 형을 산 것을 제외하면 731부대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그들의 행위가 이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이들의 연구 결과 및 연구력이 의학 발전 및 냉전 상황에서 전술적 이익이 될 것이라는 미국과 일본 정부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3]

그들의 행동은 의학 발전의 이름으로 묵인되었으며, 그 승인은 특정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와 사회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졌다. 그렇기에 인체 실험이라는 악은 평범하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어서 평범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또 그것이 보편을 위한 이름으로 이루어졌기에 평범하다. 간단히 말해, 일제의 인체 실험은 일본군이나 731부대만의 비행이 아니라, 모두가 책임을 나누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비록 전쟁이라는 특수한 맥락이 그 구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몇몇 이름이 그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서, 인체 실험을 추동한 근거가 모두의 이득과 발전이라는 점은 지워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의 한 장면.

731부대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731부대가 어찌 되었든, 당시 한국은 철저히 피해자의 편에만 있었으므로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선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얼마든지 제국을 비판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이를 부정하진 않겠다. ‘경성크리처’가 다분히 731부대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자민족 중심주의적 방식으로만 소비할 위험이 있다고 해도,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이 가해를 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또한 그 이후 여러 사안에서 모두의 이득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소수를 실험 대상으로, ‘통나무’로 다루어 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센병 환자부터 시작하여 최근 에이즈 환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전체의 유익을 위해 이들 감염병 환자를 가두고 부정해 왔다. 우리 의료 체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한 치료를 제공한다며 그 결과를 자랑해 왔지만, 그것은 큰 비용이 들고 일부에게만 나타나는 희소 질환이나 유전질환, 장애 등을 대상에서 누락시키며 ‘모두’를 우선하는 선택을 내렸기에 가능했다.

멀리는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이나 기생충 관리 사업으로부터 가깝게는 황우석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줄기세포를 통한 만병통치라는 환상까지, 우리의 역사 또한 민족 발전을 위하여 인체를 실험 대상으로 여긴 많은 정책과 실험으로 얼룩져 왔다. 지금 우리가 다른 민족, 문화권의 구성원이나 심지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또 그로부터 얼마나 다른가.

따라서 731부대를 기억하되 그것이 이미 사라진 남의 끔찍한 악행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말자. 우리 또한 얼마든지, 악한 의도가 아니라 ‘선한’ 이유로 우리도 그런 실험을 해왔고 또 할 수 있다는 것이 731부대가 경고하는 진실이다. 그러므로 731부대는 여전히 여기에 있으며, 그것이 731부대를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미주 및 참고 문헌

독립운동가가 인체 실험 대상이 되었다는 주장은 이미 확립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자료 근거는 빈약하다. 관련하여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하세가와 사오리, 최규진. 731부대에 대한 민족주의적 ‘소비’를 넘어서—731부대 관련 사진 오용 사례와 조선 관계 자료 검토. 역사비평. 2020;132:8-46.
해당 기술 및 731부대와 관련한 여러 내용은 다음 책의 글들을 참고하였다. 15년전쟁과 일본의 의학의료연구회. 하세가와 사오리, 최규진 역.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20.
유하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동지역 전시범죄 재판 개관. 동북아연구. 2019;34(1):67-98.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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