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대책 없인 국가 없다… 미래세대 위한 ‘저출생 특별회계’ 필요[Deep Read]

2024. 1. 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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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실의 Deep Read - 저출생 대책
17년간 332조 투입에도 ‘초저출산’ 그대로… 합계출산율 0.25명 감소땐 GDP 0.9%P 하락
획기적이며 지속 가능한 방안 실행 중요… 여야, 득표용 정책 대신 적정인구 합의부터 이끌어야

4월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 국민의힘은 일·가족 양립에 초점을 맞춘 ‘일·가족 모두 행복’ 공약을 내세웠고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여야의 총선용 공약들은 득표용 혹은 매표용으로 대책을 남발하고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하는 게 다반사였다. 이제 저출생 대책은 어떤 비용이 따르더라도 실행돼야 한다.

◇적정인구에의 합의

2006년 이후 4차례나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시행하며 17년간 332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한국의 초저출산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이미 5년 전에 “한국은 집단적 자살사회 같다”고 일갈했는데도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젊은 세대들이 결혼·출산을 꺼리는 이유를 들자면 미래 일자리나 소득에 대한 불안감, 출산·육아에 대한 걱정, 기후변화, 환경오염, 사회범죄까지 차고 넘친다. 득표용 단편적 정책 남발로는 저출생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여야가 모두 내세운 국가소멸론은 산술적 추론의 결과로 500∼600년 후의 일이니, 당면한 생계문제보다는 위기감이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불과 16년 후인 2040년, 한국의 총인구는 9.8%나 준다. 소위 일하는 인구인 생산연령인구는 26.8%나 줄어든다. 2060년엔 총인구가 35.3% 줄고 생산연령인구는 56.2%나 줄게 된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동해도 이어질 내수시장 붕괴, 세대갈등으로 인한 사회 붕괴, 부동산시장 충격과 지방 소멸 등 미래 세대가 겪을 심각한 지각변동이 눈에 보인다.

우선은 이미 2021년을 기점으로 감소가 시작되는 한국의 인구와 관련한 총체적 지향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목표치를 설정해야 한정된 자원 내에서 실현 가능한, 제대로 된 대책이 선다. 총선은 전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공적 책무를 하는 선량을 뽑는 선거이니 적정인구와 관련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갈 중요한 기회다.

◇정책적 우선순위

저출생 대책이 당장 내일부터 성공을 한다 해도 그 효과는 적어도 20년 후에나 나타난다. 그때까지 온 국민이 겪어야 할 경제적 파탄을 막기 위해선 실행해 갈 정책의 우선순위가 있다.

첫째, OECD 국가 중에서도 바닥권인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 여성인력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2015년 이후 급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20·30대 여성의 고용률 증가와 이에 따른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상관성이 크다. 요즘 20·30대 여성은 파트너가 양육·가사 분담을 함께 할 때만 자녀를 갖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외신들이 지적한 것처럼 남녀 임금 격차 등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양성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시급하다.

둘째, 노인층도 가급적 생산가능인구로 끌어들여야 한다. 한국인은 실질적인 1차 은퇴 시기는 51세 정도이지만, 경직적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 때문에 2차 노동시장에서 낮은 임금으로 71세까지 일을 한다.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OECD 국가는 정년제가 없다. 한국도 국민연금 관계, 청년 일자리와의 대체문제 등을 감안하면서 정교한 정년연장 내지는 폐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외국 인력 취업 및 비자 규제를 완화하는 정도의 차원을 넘어서 기업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직업능력이 검증된 외국 인력을 신속히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의 체계적 이민정책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

◇구체적 제안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좀 더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위해 2300명을 대상으로 청년의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강구했다.

첫째, 비혼·비출산이 늘고 있지만 출산·결혼 의향이 있는 청년의 비율이 여전히 절반이 넘는다. 비혼·비출산 의향을 가진 청년 중에서도 현실적 여건이 해결된다면 결혼과 출산을 하겠다는 청년이 30%나 된다. 효율적 정책효과를 얻기 위해선 저출산 대응정책의 목표집단을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청년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남성과 여성이 결혼·출산에 부여하는 가치 차이가 작지 않은 만큼 성별에 따른 맞춤형 정책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의 현금수당과 지자체의 출산장려금 등 현금성 지원은 대표적인 출산 장려수단 중 하나로 대두하고 있다. 적당한 수준이 아니라, 청년들의 의사결정을 이끌 정도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으면 조건 없이 임대주택과 함께 18세까지 매달 100만 원씩 주는 수준의 지원책은 제시돼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넷째, 저출산 대응책은 다양한 가족의 개념에 적용돼야 한다. 이미 동거 가구가 2022년 기준 50만 가구를 넘었다. 가족이지만 각자 따로 사는 1인 가구가 34.5%나 된다. 저출산 대응정책이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용하고 지원해 나가야 할 이유다. 다섯째, 미디어가 결혼·양육의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결혼·출산과 직장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근로감독 확대 같은 ‘징벌적 접근’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가족 친화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마중물 접근’이 필요하다.

◇해결의 방향

서구 선진국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바라본 한국의 초저출산 현실에 대한 해결 방향은 명확하다. 획기적이고 과감하게, 구조적이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며 신뢰성 있고 일관되게 해결방안을 실행해가야 한다.

‘보수 대 진보’의 관점 차이나 재정 조달 문제 등으로 국가 내부적으로 논쟁이 일었던 시기에는 서구에서도 영락없이 출산율의 하락을 경험했다. 한국 역시 과감한 투자와 함께 정교한 정책을 실행해 나가겠구나 하는 일관된 사인을 젊은 세대에 주지 않는다면 실망감과 더불어 신뢰만 더 잃게 될 것이다. 또 파격적인 정책을 장기적이고 일관되며 지속가능하게 운영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한국은행 분석에 의하면, 육아휴직 실제 이용률이 OECD 평균수준만 돼도 출산율이 0.1명 상승할 수 있다. 실효성이 적은 사업에 투입된 예산을 재조정하면 현재 GDP 대비 1.56%인 가족예산지출을 OECD 평균인 2.29%로 높이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 결과(2021년)에 의하면 합계출산율이 0.25명 감소할 때 GDP가 0.9%포인트 떨어진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 출산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미래세대를 위한 ‘저출생특별회계’를 도입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전 서강대 교수·한국경제학회장

■ 용어 설명

‘ECB’는 EU 12개국의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우리의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을 함. 단일통화인 유로화의 구매력 유지·물가안정을 주요 목적으로 함.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인구구조변화가 가져올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연구하는 기관. 기업과 학계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하는 협력적 플랫폼을 지향. 이사장 정운찬, 원장 이인실.

■ 세줄 요약

적정인구에의 합의 : 2006년 이후 17년간 332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한국의 초저출산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아.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득표용 정책만 남발하는 대신 ‘적정인구’에 대한 국민적 합의부터 이끌어야.

정책적 우선순위 : 여성·노인·외국인 인력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정책적 우선순위. 출산·결혼 의향이 있는 청년을 목표대상으로 설정해, 이들의 의사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게 정·관·민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함.

해결의 방향 : 초저출산을 이겨내려면 획기적이고 과감하며, 구조적이고 장기적이며, 지속가능하고 일관된 정책이 절실. 출산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저출생특별회계’를 도입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 요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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