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당했다" 속으로만 '끙끙'…기술유출 신고 안 한다

이강준 기자, 오진영 기자, 김도현 기자, 박소연 기자 2024. 1. 25. 09: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T리포트]구속피의자 0명, 처벌이 우스운 기술도둑(下)
[편집자주] 산업에 미치는 피해는 막대하지만 처벌은 미약하다. 기술유출 사범 얘기다. 지난해 경찰이 검찰에 넘긴 기술유출 사건 중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례는 0건이었다. 기소돼도 대부분 집행유예 판결이 떨어지거나 실형인 경우에도 많아야 징역3년이었다. 기술유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솜방망이' 처벌은 없어야 한다.
기술유출범 잡는 경찰…승진은 하늘의 별따기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기술유출 사범을 수사하는 '산기(산업기술)' 경찰은 외롭다. 승진으로 축하받을일 보다 옆 동료의 승진으로 축하해줄 일이 더 많다. 승진 평가에 필요한 정량적 기준인 검찰 송치건수, 구속 건수 등 실적을 마련하는 데 극히 불리한 게 산기 경찰이다. 빠르게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도 해외 기술유출 사건의 경우 최소 2년은 조사해야 검찰에 넘길 수 있고 매번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만 번번이 법원에서 막아세운다. 승진이 쉽지 않으니 후배 양성도 쉽지 않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내에서 승진이 어렵기로 손꼽히는 곳이 기술유출 사건을 전담하는 안보수사국이다.

책임감있는 수사경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은 승진이다. 계급정년 제도가 있는 경찰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승진하지 못하면 사실상 퇴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경찰이 수사에 성과를 내려고 뛰어든다.

그러나 기술유출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청 안보수사국, 시도청 안보수사대 경찰에게는 먼 얘기다. 사건을 종결하고 검찰에 넘겨야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관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데 기술유출 사건은 적어도 2년 이상 수사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찰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이 60일 내외인 걸 고려하면 12배 이상 긴 시간이 들어가는 셈이다.

◇기업은 신고 꺼리고, 법원은 구속 막고…'성과' 내기 어려운 기술유출 수사 경찰

/사진=김현정디자이너

기술유출 사건은 피해 사실 발견(사건인지), 혐의 입증, 증거 수집 등 수사 전 단계에 걸쳐 일반 형사사건과 다르게 매우 복잡하다.

우선 기술유출 피해를 본 기업부터 피해 신고를 꺼린다. 기술유출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업계에서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고 이는 주가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정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에서 유출 피해가 발생하면 알게모르게 정부의 따가운 눈초리도 받아야 한다. 기업의 중요 정보인만큼 경찰은 피해 기업이 직접 신고하지 않으면 수사를 착수하기도 어렵다.

또 특정 기술이 담긴 파일, 문서 등을 유출하는 게 아니라 '인력'을 빼가는 것이기에 단순 이직으로 볼지 이직을 빙자한 기술유출로 볼지도 까다롭다. 혐의를 입증하는데 타 사건보다 경찰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이 국내 기업의 기술을 유출한 경우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승진 심사에 '구속 여부'도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기술유출 사범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내세운 검찰과 경찰은 매번 구속영장을 신청·청구하지만 법원은 기각이 일반적이다.

수사 난이도도 높고 전문성도 필요한데 승진이 어렵다보니 지원자도 많지 않다. 신임 수사관들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잘 받고 승진 기회가 많은 시도청 금융범죄수사대, 반부패·공공범죄수사 등을 희망한다. 기술유출 수법이 첨단을 달리는만큼 수사당국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후배 경찰을 꾸준히 수혈해야 하는데 이들을 데려올만한 동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은 올해부터 기술유출 전문 수사계인 '방첩경제안보수사계'가 출범한만큼 수사의 전문성도 높이고 이들 수사관에 대한 처우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에 당했대" 주가 와르르…기술유출 '쉬쉬' 하는 이유
/사진 = 조수아 디자인기자

"중국으로 기술이 넘어갔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가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아세요?"

비밀이 새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국내 첨단 산업을 휩쓸고 있는 중국향(向) 기술유출에도 신고를 꺼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6년간 수십조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알려진 유출사례는 여전히 적다. 기업들은 주가 하락과 추가 유출 피해, 신고 후 불이익을 우려해 섣불리 공개하기를 꺼린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영업 비밀을 지키겠다는 기업도 나온다.

23일 머니투데이가 국내 주요 기업 8곳에 기술 유출 시 사후대처를 질의한 결과 이 중 6곳이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수사 과정의 2차 유출'과 '주가 하락', '대외 이미지 훼손' 등을 꼽았다. 특히 2차 유출은 기업의 최대 걱정사항 중 하나다. 수사 인력이 비밀이 가득한 팹(생산 설비) 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수도권의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신고하려면 유출된 기술·인력을 상세히 보고해야 하는데, 이것도 다른 형태의 기술 유출"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중국향 초전도체 기술 유출 의혹을 받는 A기업이나,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에 연관된 것으로 결론지어진 B기업은 소식이 알려진 이후 주가가 5~10%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에게 내부 단속을 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줘서다. 기술 유출 피해보다 주가 하락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경우 내부에 '함구령'이 내려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신고를 하더라도 '기술 유출이 발생한 기업'으로 낙인이 찍힌다. 유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 뒤늦게 이를 인지한 행정 기관이 기업에 질책을 가하는 사례도 많아 기업의 불만이 크다. 한 기업 관계자는 "피해를 본 기업을 위해 유관부서가 나서 다퉈 주지 않고,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프로젝트에 교묘하게 배제하는 방식으로 벌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러는 사이 기술유출은 계속 느는 추세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발생한 해외 기술유출 범죄는 96건이다. 피해 규모는 25조원에 이른다. 수사당국은 적발 건수보다 피해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내다본다. 경찰 관계자는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첩보를 수집해 수사하다가 기술 유출이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업계는 유출 방지책을 다시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술을 빼가는 방식이 점차 진화하면서 2차, 3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재발 방지가 필수적이지만, 기업과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미국은 기술 유출을 간첩죄로 규정하고 1급 기밀로 다루며, 민사사건도 연방 법원에 제소할 수 있게 '투트랙 처벌' 제도를 채택했다. 일본은 유출 조사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술 유출 수사에서는 기업의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해 줘야 한다"며 "기업들은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전문 수사팀을 꾸리든지, 기업과 긴밀히 공조하는 등 2차 피해를 막는 데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가 급한데…'산업기술 유출시 최대 5배 배상' 법안, 폐기 위기
김도읍 국회 법사위 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1.8/사진=뉴스1

21대 국회가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할 경우 처벌을 현행보다 대폭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23일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20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대해 법원이 1심 판결을 내린 114건 중 유기형을 선고한 사건은 12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집행유예(40건) 또는 벌금형(11건)에 집중됐다. 실형 선고 비중이 10% 수준에 그친 셈이다.

법적 처벌수위가 느슨한 반면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다 적발된 건수가 한 해에 3~6건 수준이었으나 2023년엔 13건으로 집계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8년간 적발한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 165건 중 39건이 반도체 업종에 집중됐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외로 기술을 유출한 자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 국가 핵심 기술을 빼낼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양형 기준은 최고형보다 현저히 낮은 징역 1∼6년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집행유예로 결론 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지난해엔 국내 삼성전자 임직원이 반도체 핵심기술을 중국 등 해외로 빼돌리다 잇따라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이에 국회에서도 지난해부터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와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둔 법안 발의가 잇따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구자근·홍석준·박병석 등 의원들이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대표발의한 13개 법안을 병합심사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산업기술보호법)'을 위원회 대안으로 마련해 지난해 11월 통과시켰다.

문제는 현재 이 개정안의 21대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단 점이다. 지난 8일 법사위에 상정됐으나, 야당이 반대하며 계류됐다.

당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수사 중인 사안도 행정기관에 신고한다는 게 피의사실 공표 등 현행법하고 충돌할 수 있다"며 "그 신고행위 자체가 비밀에 해당하고 기밀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걸 행정기관한테 의무적으로 신고를 하게 하는 게 아무리 면책을 준다는 명분이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밀이 새고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했다.

김 의원은 또 "국가핵심기술 여부에 대한 판단을 직권으로 정부가 기업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 아닌가"라며 "행정기관이 그걸 남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따졌다.

이어 "벤처일 경우는 특히 이게 상용화되기까지는 상당히 여러 가지 스케일업 해야 되는 상황도 있는데 아무리 그 영역이 국가핵심기술 영역에 속한다 하더라도 그 기술 자체가 그 기업에게는 생명일 수 있는데 산업부가, 행정기관이 한 손에 틀어쥐고 이걸 다 조종할 수 있다는 게 지금 우리나라 현재 구조하고 맞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한 전화통화에서 "제 의견이 당론은 아니다"라며 "필요하면 향후 당과도 논의할 생각이고 입장을 조율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밝혔다.

법사위는 오는 24일과 31일 개의가 예정돼 있다. 24일 안건엔 해당 법안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31일에도 포함될지 미지수다. 법사위 관계자는 "이견이 해소돼야 안건으로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2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되지 않으면 법안이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