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확대 정책’ 일단 속도조절… 대학 “학과쏠림 보완책 마련해야”

인지현 기자 2024. 1. 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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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대학 반발에 ‘혁신지원사업’ 단계적 추진
정부, ‘무전공 확대’ 추진하되
‘20~25% 뽑아야 지원’은 철회
기준 미달해도 재정 지원키로
“잘 준비하는 대학에는 가산점”
대학 “기초학문 붕괴 등 우려
학과정원 조정 등 대책 먼저”
서울대, 자유전공 확대안 검토
한양대, 내년 무전공학부 신설
정부 발맞춰 자체 대안 마련도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에 ‘무전공 선발 확대’를 재촉하던 교육부가 대학가의 거센 반발과 우려 속에서 결국 속도 조절을 택했다. 교육부는 지난 24일 발표한 ‘2024년 주요 정책 추진계획’에서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는 대학에 재정사업과 연계해 과감히 지원할 계획”이라면서도 “올해는 대학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준비도와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당초 교육부는 대학들에 공개한 ‘2024학년도 대학혁신지원사업 개편안 시안’에서 수도권대에 국고 인센티브를 지급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2025년 20%, 2026년 25%라는 무전공 선발 비율을 명시했지만 “특정 비율을 내걸지 않고 지난해와 같이 정성평가를 통해 대학을 지원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것이다. 다만 “(무전공 선발 확대를) 잘 준비하고 있는 대학에 가산점 부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25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대학가에선 일찌감치 교육부의 속도전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왔다. 학과·전공 간 벽 허물기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당장 2025년부터 재정지원과 연계하다 보니 장기적 안목과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는 교육과정 개편까지 서두를 수밖에 없어서다. 그간 광역 단위 선발로 학생을 뽑은 후 특정 계열·단과대 내에서 전공 선택권을 준 사례는 여럿이지만, 이러한 빗장마저 없는 완전 무전공 선발에는 대학들이 선뜻 나서지 못했다. 기존 학과 정원 조정을 전제해야 해 교수진과의 내부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뿐만 아니라 향후 무전공 신입생들의 이공계열 선호와 인기학과 쏠림에 불을 붙일 것으로 예상돼 여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공계 소수학과 쏠림으로 입지가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 인문계 반발이 거셌다. 전국국공립대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 인문대학장협의회는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교육부의 강한 드라이브에 기존 자율전공학부를 운영해온 서울대, 고려대뿐만 아니라 계열별 통합 선발을 지속해 온 성균관대 등에서도 계열·단과대 구분마저 없는 무전공을 허용할지 검토에 나서긴 했지만, 대부분은 조만간 교육부의 대학혁신지원사업 세부안이 나온 후 확정한다는 입장이다.

성균관대 교무처장인 배상훈 교육학과 교수는 “이미 신입생 절반을 계열별로 뽑아 일정 정도의 전공 선택 자율권을 주고 있고, 특정 전공 필수 수강 과목 조건을 완화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런 자체적인 혁신 노력의 방향을 정부 무전공 확대 방침에 따라 틀어야 할지를 놓고 내부에 여러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이어 “무전공 입학생 확대는 단순히 학과 벽만 허물면 안 되고 진로지도 및 교육과정 개편, 교육과정 개방화 등 대학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방대한 작업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라며 속도전으로 흘러가는 것에는 우려를 표했다.

사립대 중 가장 먼저 무전공 모집 방안을 구체화한 한양대의 류호경 교육혁신처장은 “특정 학과 쏠림을 막기 위해 학생들의 전공 선택을 돕는 다전공 탐색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선수강 교과목을 설정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적순으로 학생들의 학과 선택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면서 “자기 전공 이외에 타전공을 필수 이수하도록 하고 마이크로 전공 혹은 부전공 혹은 다중전공을 취득하게 하는 실행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한양대는 문·이과 구분 없는 자유전공학부인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하고 2025학년도 대입에서 330명을 선발하기로 일찌감치 결정한 상태다. 이곳 학생은 추후 현존 학과나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 인지과학, 디자인 등을 중심 테마로 신설되는 융합 전공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 한양대는 신설학과의 테마가 ‘공학 중심의 융합교육’인 만큼 기존 공대 정원을 대폭 감축했다.

이화여대는 ‘호크마교양대학’을 통해 지난 2018년부터 정시 통합 선발한 학생들에게 문·이과 구분 없이 7개 단과대 40개 전공의 선택권을 제공해왔다. 매해 350명 안팎이 입학하지만, 이곳 역시 교육부의 무전공 선발 확대 방침에 따라 정원을 늘리는 안을 검토 중이다. 성적을 기준으로 해 학생들의 전공 선택을 제한하지 않고 있는데 컴퓨터공학과나 경영학과가 가장 선호학과로 꼽힌다. 백지연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장은 “대개 5∼7개 학과 중심으로 학생이 몰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학과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정원을 가지고 있던 것을 사회적 수요가 몰리는 학과에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2018년에는 5위였던 컴퓨터공학과가 지난해 1위로 부상하는 등 당시의 사회적 수요에 맞게 학과 선택 인원이 탄력적으로 조정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비인기학과의 고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전공 학생 규모를 늘리면서 특정 학과 정원만 감축한 게 아니라 40개 학과가 20∼30%씩 정원을 줄였고, 기존 학과별 신입생을 정시뿐 아니라 수시로도 안정적으로 선발하고 있기 때문에 큰 우려는 없다”는 입장이다.

인지현·이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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