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한국사회] 이주배경청소년의 돌봄 부담
조기현 |작가
“제가 알기론 애 많이 낳으신 분들은 돈이 많은 거로 알고 있어요.”
아이들이 많으니 과태료를 깎아줄 수 없겠냐는 남성의 서툰 한국말에 출입국관리소 조사과 직원이 되받아쳤다. 외국인이 여권을 재발급받으면 15일 안에 변경신고를 해야 했는데, 남성은 이런 규정을 모르고 있었다. 당장에 과태료를 낼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성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곁에서 통역하던 압둘 나히드씨도 입을 다물었다. 한국에 와서 12년 동안 행정의 미로 속을 헤매고 다녔는데, 늘 숙지하지 못한 새로운 정보들에 걸려 넘어지는 것 같았다.
2012년 탈레반의 억압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서 교육받고 장학금을 받아 좋은 대학에 입학해 정치외교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됐다. 올해 21살이 된 여성 나히드씨의 생애를 이런 식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부당한 요약이다. 그가 9살 때부터 낯선 땅에서 수행했던 돌봄의 무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가 성취한 자리와 활동은 한국 이주배경청소년 지원정책의 유의미한 성과처럼 여겨지는데, 성취 아래 그가 감내했던 것들도 함께 곱씹어보면 어떨까?
그는 10살 남짓 때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 출연했다. 화면 속 10살 남짓 아이는 어린 동생들의 학교 준비물 챙기기, 공부시키기, 씻기기, 밥 차려주기 등을 수행했다. 낯선 땅에서 일을 구하고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부모님을 대신해 도맡은 일이었다. 아래로 2살 터울부터 10살 터울까지 남동생만 넷이었다. 위에 언니도 있어 일을 나눴지만, 늘 그의 몫이 많았다.
21살이 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동생들은 여전히 손이 필요하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학교에서 오는 알람이 수시로 뜬다. 동생들 준비물이나 주의사항 등이 적힌 가정통신문이다. 밤이면 그 내용을 살펴보며 동생들의 내일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억이 희미한 시절부터 동생들 양육자 노릇을 했으니 익숙한 일상이다.
아버지가 공과금을 내거나 체류자격을 재신청할 때 따라나서는 것도 나히드씨 일이다. 어릴 적부터 각종 행정절차, 거래나 계약 등 어른들의 세계 한복판에 있었다. 1년에 한번 돌아오는 체류자격 신청이 가장 까다로웠다. 출입국관리소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때마다 달랐고, 한번에 다 알려주지도 않았다. 어느 땐 집 계약기간을 연장해 오라, 어느 때는 형제들 입학증명서나 재학증명서를 모두 떼 오라 했다. 그럼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를 빠져야 했다.
“6일만 더 빠지면 이번 학년을 다시 다녀야 해.”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들은 말이었다. 다행히 더 결석하기 전 체류자격을 얻었지만, 더 결석하지 않은 건 순전히 행운 같았다. 더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체계가 없다고 느껴지는 행정절차였다.
그는 공부에 힘쓸 뿐 아니라, 공부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언니와 동생들에게 차근차근 역할을 분담해줬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부모님에게도 더욱 단호해졌다. 정말 큰 일이 아니면 공부할 시간이 우선이었다.
“억울함보다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이 컸어요. 내가 이렇게 많은 역할을 하는데 내 소중함을 모르는구나 싶은 마음이었어요. 아프간 사람이 국내에 소수니까 통역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말하는 게 조금 양심에 찔리기도 해요.”
그가 짊어졌고, 또다른 이주배경청소년이 짊어질 돌봄 부담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힌 ‘가족돌봄청년’이라는 범주에 이들이 포함될 수 있을까? 한국보다 앞서 영케어러 문제가 가시화한 일본은 이주배경청소년이 수행하는 통번역을 영케어러의 돌봄 활동으로 인정하고,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통역동행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아동권리 관점에서 통번역을 비롯해 이들이 진 부담을 세세히 파악해야 한다. 이들의 부담을 줄이는 건, 이들이 속한 이주민 집단에 성원권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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