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크리처' 최영준의 시그니처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순백의 도화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시그니처가 없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그 캐릭터 자체가 될 수 있는, 배우 최영준은 그런 사람이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감독 정동윤)은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로, 최영준은 극 중 경성의 괴물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의학부 출신의 군인 가토 중좌를 연기했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거기에다가 그 당시 일본군의 잔혹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라니. 배우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최영준은 가토였기 때문에 ‘경성크리처’를 선택했다고 있다. 오히려 시대적 배경은 부담되지 않았다고. 최영준은 “가토는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려는 것과는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가토의 비주얼에 대해 꽤나 많은 고민을 했다고. 정동윤 감독의 디렉팅을 참고해 8일 동안 굶어 15kg을 감량하기도 했다. 최영준은 “첫인상을 어떻게 줄지 고민했다”면서 “첫 촬영할 때에는 살이 좀 쪄있는 상태였다. 첫 촬영이 끝나고 제 분량 촬영까지 한참 쉬었는데, 감독님이 ‘편집본을 봤는데 살을 빼주셔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 가토가 군더더기 없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가토를 연기하려면 가장 중요했던 일본어 연습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최영준은 “생각보다 어렵더라. ‘이게 말이야?’ 하는 발음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그런 발음들이 많아서 힘들었다. 흔히들 일본어는 받침이 없다고 하는데 없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받침을 장음, 단음으로 구분하는 개념 잡는 데까지 오래 걸린 것 같다”라고 전했다.
가토는 신인류인 크리처를 만들기에 몰두하는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만큼 사람이 희생되는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과 탐욕만을 쫓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행위들은 너무나도 악하지만, 최영준은 되려 스스로 악해 보이려고 연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가토가 감정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처럼 비치길 바라지 않았다고. 최영준은 “처음에 제작진과 이야기할 때 가토는 우아해야 한다고 했다. 하는 행위가 어떻든 간에 사람 자체가 우아해 보여야 한다더라”면서 “감정표현을 하는 것에 있어서 조심했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뿐이다.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다른 개념의 인간으로 보이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또한 최영준은 “제가 생각한 가토는 본인이 고결한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거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면서 “가토의 목표가 무엇이었을지 저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간은 나약해서 언젠가 죽기 때문에 강한 유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가토는 신인류를 자신이 선물하고 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VFX 연기는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경성크리처’를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최영준은 “허공에다가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이드도 없었다. 나중에는 괴물 머리 모형이 있긴 했지만, 잘못하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다. 시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딘가를 보는 거 정도만 해도 괜찮은 건지 여러 걱정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우리들의 블루스’ 등 기존에 푸근하고 수더분한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던 최영준이다. 어떻게 보면 ‘경성크리처’는 최영준에게 새로운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부터, VFX, 일본어 등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최영준은 뻔한 악역에서 탈피한, 가토라는 인물을 훌륭히 소화해 냈고 캐릭터의 호불호를 떠나 연기적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에 최영준은 “안 해봤던 걸 해야 하니까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좋다”라고 했다.
매 작품마다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줬던 최영준이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없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최영준은 “음악을 예로 들면 어떤 곡을 들었을 때 어떤 가수의 곡이라고 알 때가 있지 않나. 저에게 그런 시그니처가 없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캐릭터 자체로 봐주는 것은 배우로서 너무나도 좋은 일이지만, 앵글을 벗어나 실제로 만났을 때 ‘배우 최영준’을 알아보는 일이 드물다 보니 조금 섭섭한단다. 이에 최영준은 “나를 감춰야 할지, 아니면 더 드러내야 할지 고민이다. 나로 연기할 건지, 나를 배제하고 연기할지 고민이다”라면서 현재진행형인 고민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최영준은 시그니처가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그니처가 없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도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최영준의 시그니처가 아닐까.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에이스팩토리,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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