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돈 좀 벌자" 주식·코인 중독…노동 상실의 시대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④]
하루종일 주식 생각에 '사회적 고립'까지
돈 쉽게 벌 궁리만하다 '노동' 무시하기도
전문가 "한탕주의 만연하면, 병든 사회"
#1.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김 씨는 대출 목적에 대해 "투자 손실금 복구"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 손실이 크게 났다"라면서 "이번에 하는 투자는 무리하지 않고, 할 생각이다. 비록 대출해서 투자하지만,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2. 20대 대학생 박모씨는 휴학을 결정했다. 그는 "100만원으로 1,000만원 수익을 봤다가, 원금을 모두 잃었다"면서 "'초심자의 행운'일 수 있지만 코인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서 휴학을 말리기도 했지만, '코인 투자'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일단 휴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최근 비트코인이 낙폭을 확대하며 23일 기준 540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지난 10일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이후 7주 만에 최저치로 뚝 떨어진 셈이다. 5400만원대는 지난달 3일 이후 51일 만이다. 최악의 경우 4000만원대까지 밀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만일 ETF 승인 기대감으로 투자했다면 큰 손실을 초래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코스피도 상황은 비슷하다. IBK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코스피는 22일 종가 기준(2464.35) 지난해 연말 종가 대비 -7.19%의 하락률을 기록해 미국과 유럽, 아시아 주요 증시 중 홍콩 항셍(-12.24%),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7.35%)에 이어 세 번째로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문제는 주가 하락으로 투자 손실도 손실이지만, 출렁이는 차트에 울고 웃는 사실상 도박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주식·코인 투자는 불법 도박이 아니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빛을 내 투자하거나 하루 종일 투자에 매달리는 자기 모습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합법적인 투자라는 점만 강조하며 뒤늦게 도박 증세를 호소하는 것이다.
중견 기업에 재직하고 있다고 밝힌 40대 회사원 김모씨는 주식 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가 다가오면 투자 종목을 살피거나 분석을 하는 등 에너지를 쏟는다고 밝혔다. 김씨는 "업무에 써야 할 집중력을 주식 투자에 쏟고 있다"면서 "주변에서는 투자 중독이라고 말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오전 시간에 몰래 단타를 하고 있는데, 수익이 높으면 그날 하루 기분이 좋고, 손실이 나면 우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가상화폐·주식 단타 거래 등이 도박 수단으로 취급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상담을 진행 중이다. 주식을 이용한 도박중독 상담자 수는 2018년 421명에 불과했지만, 2022년 1,823명으로 크게 상승했다.
의료계에서는 본인은 투기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과정이 투기에 가깝다면 도박 중독일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정신의학회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의 9가지 항목 중 4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도박중독이라 진단한다. ▲도박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집착 ▲베팅 액수가 점점 커지는 내성 ▲안 하면 짜증나고 불안해지는 금단증상 ▲그만두려고 해도 안 되는 조절실패 ▲일상에서의 기능 이상 ▲채무 ▲죄책감, 불안감을 지우기 위한 회피성 도박 ▲손실은 만회하려는 추격 도박 ▲거짓말 등이 있다.
전문가는 도박 증세가 보이거나, 도박이라고 의심되면 반드시 관련 상담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보영 한국도박문제예방 치유원 중앙센터장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소식지 28호)'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주식과 가상자산 관련한 상담이 많이 증가했다"며 "처음에는 지인 소개나 호기심·재미로 소액 베팅이나 투자를 시작하지만, 도박으로 돈을 따는 경험과 투자로 몇 번의 수익을 경험하고 나면 거기서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잘만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빨리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도박 베팅과 투자 금액이 점점 늘어난다”면서 “투자로 시작했다가 원금 회복을 위해 도박에 손대면서 도박중독에 빠지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센터장은 “중독에 이른 경우 가족 및 사회적 관계, 직장, 재정문제, 신뢰 등이 대부분 망가져 있는 상태다. 따라서 중독이다, 아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들이 얼마나 손상되어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하고 이로 인한 상실감을 공감해 주는 차원에서 문제를 다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적인 목표는 투자 행위를 멈추는 것이지만, 센터에서 한두 번 상담받았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지만 일각에서는 무리한 투자를 해서라도,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하는 게 재산 증식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월급쟁이로 살다 보면, 뻔하지 않나"라면서 "죽어라 일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노동을 무시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주식이나 코인 투자해야 상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대 대학생 이모씨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대부분 소액이라도 투자를 한다"면서 "그게 '투자 스터디'든 , 개인 투자건 결국 청년들은 다 투자를 했거나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씨의 주장은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 청년들의 절망이 투자의 이유라는 얘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 등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과도한 투자'의 합리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일본 등에 비해 빠르게 압축성장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번 사례를 목격했고, 그렇기에 투자에 강한 심리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청년들이 현재 월급만 모아서 집을 살 수는 없지 않나, 결국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 등 조급한 심리가 '한탕주의'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런 심리가 무리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 가치' 무시 현상에 대해서는 "결국 '한탕주의'가 심해지면, 월급 등 노동으로 번 돈은 푼돈으로 인식해, 그야말로 투자 중독이 될 수 있다"면서 "중독 상황에서는 회의감, 무기력이 커질 수 있고 '병든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경우 투자가 아닌 투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복권을 구매하면 당첨 기대를 하며 행복감을 찾을 수도 있는데, 코인 투자는 성격이 다르다. (손실과 수익금 등) 평정심을 제대로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도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코인 투자하는 사람들 일부는 일생을 걸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라면서 "평정심을 찾을 수 없고, 결국 못 견디고 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주식투자 #투자중독 #대한민국보고서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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