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명의 선수도…” 야신은 포기하지 않는다
은퇴 스타 외 무명선수도 있는 팀
“프로 못간 2명 걱정에 잠도 못자…
희망 안꺾고 뭘 해줄지 고민한다”
몸살 앓아도 명절에도 나와 지도
한국 프로선수들 잇단 MLB행에
“위치에 맞는 노력하는지 돌아보라”
‘프로 감독’에서 ‘코치 고문’으로, 그리고 이제는 ‘최강야구 감독’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김성근 감독은 그래도 여전하다. “야구는 늘 어렵고, 공부할 것이 많다”며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다.
지난 19일 경기도 성남 대원중학교 운동장. 김 감독은 이날 ‘최강야구’(JTBC)에 나오는 아마추어 선수 두 명을 가르치고 있었다. 김 감독은 “훈련을 한다고 해도 2~3명 밖에 안 나올 때가 많다.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는데 나중에 보니 밥벌이하느라 그들이 다른 활동도 많더라. 지난 1년간 참는 법을 많이 배웠다”며 웃었다.
‘최강야구’에는 이대호를 비롯해 박용택, 정근우, 이대은 등 은퇴한 프로 출신들도 있지만 독립리그나 대학 야구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꽤 있다. ‘최강야구’를 거쳐 간 아마추어 선수 중 정현수(롯데 자이언츠), 황영묵(한화 이글스), 고영우(키움 히어로즈) 등이 지난해 실시된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원성준은 이후 육성 선수로 키움과 계약했다. 김 감독은 “6명이 프로에 지원했는데 그 중 4명이 가고, 2명이 못 갔다”면서 “남은 2명의 미래가 어떻게 되나 싶어서 이틀 동안 잠을 거의 못 잤다. 이들이 10년, 20년 후에 이 순간을 어떻게 돌아볼까도 싶었다. 내 탓인가 싶어서 추석날인데도 오라고 해서 운동장 빈 곳을 찾아서 훈련했다”고 밝혔다.
프로야구 감독 시절 암 수술을 3차례 받고도 묵묵히 야구장을 지켰던 김 감독은 ‘최강야구’에서도 똑같이 날씨가 더워도, 추워도 운동장을 찾는다. 몸살로 사흘간 입원했어도 야구장에 나와 선수들을 가르쳤다. 그가 아팠다는 사실은 역시나 누구도 모른다. “아프다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자기 자신은 아파도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어른이다. 이 겨울, 단 한 명이라도 훈련하기 위해 나왔는데 그 마지막 희망을 꺾을 수는 없지 않느냐. 한 명밖에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그 한 명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어른의 위치”라고 했다.
그가 지휘했던 에스케이(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등 프로 팀과 예능 프로그램으로 공동 운명체가 된 최강야구 팀은 결이 다른 터. 그 차이에 대해 김 감독은 “프로 팀은 한 경기가 끝나면 다음 경기가 있다. 하지만 최강야구 팀은 승률 7할 이상이 되지 않으면 해체된다는 조건이 있다”면서 “숫자가 있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집에 가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많다”고 했다. 방송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기 위해 300여명 안팎의 선수단, 제작진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승률 7할은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김 감독은 “그래도 희망도 생기고, 최근에는 관심도 꽤 높아진 것도 같다. 야구를 안 좋아하는데 ‘최강야구’ 보면서 야구팬이 된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책임감도 더 커졌다.
최근 한국프로야구는 여러 명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해냈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아시아 내야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받았고, 이정후는 아시아 야수 포스팅 최고액(6년 1억1300만달러)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엘지(LG) 트윈스 마무리였던 고우석 또한 올해는 샌디에이고 마운드에 선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이제 야구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예전에는 베네수엘라로 경기하러 갔다가 거기에서 야구를 배워오고는 했는데 지금은 한국 야구가 이만큼이나 평가를 받는구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야구가 아니라 돈에 가까워졌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야구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데 이를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감독은 “세계 1위 골퍼도 연습하면서 하루에 2000~3000개의 공을 친다. 야구 선수들은 어떤가”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프로 감독 시절 선수 탓을 하지 않았다. 모두 지도자의 잘못이라고 했다. 현실적 좌절감에 한탕주의에 빠진 일부 MZ세대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비슷하다. 모두 “어른의 잘못”이라고 했다. “선수가 헤매고 있을 때 몇몇 지도자는 쉽게 ‘걔 못 쓴다’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아이가 안됐을 때 필요한 것은 ‘내가 잘못 가르쳤구나’ 하는 어른의 각성이다. 실수를 했을 때 낙담하지 말고 실수를 줄여가는 훈련을 시키면 그 과정 속에서 실수에 대한 생각이 점점 달라진다. 어른은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그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만 한다. 어른은, 리더는 마지막까지도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김성근 감독은 최근 출간한 에세이 ‘인생은 순간이다’(다산북스)에서 “야구를 생각하고 야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선수를 가르치다 보면 성장하는 순간이 보였고, 그럴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 감독에게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82살 베테랑 감독의 답은 이랬다. “물론 다시 할 것이다. 야구는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생긴다. 야구뿐만 아니라 세상에 베스트라는 것은 절대 없다. 모든 게 변화 속에 있어서 공부를 안 하면 절대 못 따라간다.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무궁무진한 물음표를 가진 야구의 세상에서 그는, 베스트에 가까운 답을 얻기 위해 오늘 또 야구장으로 향하는지 모르겠다. “야구도 인생도 공 하나에 다음은 없으니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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