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가성비 품평회’ 성매매 후기…범죄 자백인데 처벌 못 하나

채윤태 기자 2024. 1. 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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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주의 문자로 본 ‘성착취 산업 생태계’
성매매 포털에 불법촬영 의심 사진 올라오기도
경찰 “후기는 심증일 뿐 범죄행위 입증 어려워”

“민간인 느낌 나는 여동생 스타일” “오피(오피스텔 성매매)에서 보기 힘든 고급지고 단아하고 우아하게 생긴 언니”.

포주의 휴대전화 번호로 들어온 문자메시지에 언급된 성매매 알선 사이트(포털) ‘오○○○○’ 내 커뮤니티에 올라온 ‘성매매 후기’다. 성매매 처벌법을 위반했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는 이런 글들이 성매매 포털에는 하루에도 수백건 넘게 올라온다. 상세한 내용을 담은 성매매 후기에는 “굿굿” “저도 방문해봐야겠네요” 등 더 많은 댓글들이 따라붙곤 한다.

성매매 업소와 성매수 남성을 이어주는 성매매 포털 대다수는 성매매 후기를 올리는 커뮤니티를 두고 있다. 서울시립 다시함께상담센터의 2022년 4월 조사에선 185개 성매매 포털 가운데 87곳이 커뮤니티 기능을 두고 있었다. 단속 등으로 성매매 포털 일부가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길 반복하면서, 현재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다시함께상담센터 쪽은 전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후기들은 거의 대부분 성매매 여성의 얼굴이나 몸매에 대한 품평이나 성관계 만족도 등을 담고 있다. 종종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나체 상태인 성매매 상대 여성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간혹 ‘여성의 동의를 받고 찍었다’고 쓰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불법 촬영한 듯한 사진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후기에서 여성들은 상품처럼 ‘가성비’로 평가되기 일쑤였다. 한 예로, 오○○○○에 후기를 올린 한 성매수자는 “30분에 11장+2장(13만원)이다. 솔직히 지금도 나쁘지는 않은 가격이지만 10분 정도만 더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다”고 적기도 했다.

성매매 후기가 잇따르는 건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 포털은 ‘포인트’나 ‘쿠폰’을 지급하며 성매수 남성들의 후기 작성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성매수자들의 후기가 성매매 업소를 고르는 주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후기를 올린 사람들은 지급받은 포인트로 다른 이들이 올린 후기를 보는 데 사용하거나, ‘무료권’ ‘원가권’ 같은 성매매 할인 쿠폰을 이용해 좀 더 싼 값에 추가 성매매에 나서기도 한다.

‘잘’ 쓴 성매매 후기에 대한 다른 유저들의 ‘인정’도 후기 작성의 동인이 되곤 한다. 성매매 커뮤니티 안에선 후기가 구체적일수록 더 많은 추천과 함께 “감사하다” “대단하다” 등의 칭찬 댓글이 더 많이 달린다. 민가영 서울여대 교수(교양대학)는 “커뮤니티 안에서 ‘네임드’(유명 회원)가 되었을 때 다른 유저들에게 인정받는 문화에서 느끼는 권력 효능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성매매 후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온라인으로 거점을 옮긴 성매매 시장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춰, 추가 유입을 부른다는 점이다. 권경란 다시함께상담센터 감시사업팀장은 “성매매가 엄연히 범죄인데도, 성매수 남성들이 커뮤니티에서 서로 후기를 공유하며 성매매를 일반적 상품 거래처럼 ‘정상화’하는 것이 가장 큰 해악”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매매 처벌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자백이나 다름없는 이런 성매매 후기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속 현장 경찰들은 성매매 후기만으로는 범죄 행위 처벌이 쉽지 않다고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성매매 업소 단속 경험이 많은 서울의 한 경찰관은 “성매매 후기는 심증이 될 수는 있지만, 현장을 직접 덮치거나 증거가 있지 않으면 범죄 행위를 입증하기 어렵다. 게다가 성매매 포털 대부분이 서버를 외국에 두고 있어 피의자를 특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은 2020년 법원이 “성구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는 성매매 여부와 상관없이 권유 행위가 성립된다”며 성매매 홍보 글을 보낸 여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박찬걸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는 이런 맥락 안에서 성매매 후기도 ‘성을 사는 행위를 권유하거나 유인하는 광고’에 해당해 성매매 유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 교수는 2019년 논문에서 “성매매 업소명을 실제 거론하며 해당 업소에 근무하는 성매매 여성과의 만남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행위는 성매매 광고의 방조에 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7월 성매매 후기를 성매매 포털이나 커뮤니티 등에 게재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 성매매 처벌법 개정안 등을 내놓기도 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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