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풀가동 문제 없다"…전 세계가 베팅하는 '물 배터리'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에너지저장의 세계-上
2020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이틀간 순환 정전이 발생했다. 60여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긴 탓에 시민들은 에어컨 없이 40℃를 넘나드는 폭염을 견뎌야 했다. 이듬해 2월엔 텍사스주에서 사달이 났다. 겨울 폭풍으로 기록적인 한파에 시달리던 텍사스 주민들은 정전이 3일 가까이 지속되자 난방을 위해 프로판가스를 공급받아야 했다.
일사량이 많은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 태양광 발전 1위 지역이다. 텍사스는 바람이 세고 일정해 풍력 발전 이용률이 가장 높다. 두 지역의 정전은 신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한계점인 간헐성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재생에너지는 날씨, 낮과 밤의 변화 등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쑥날쑥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는데, 정전은 자연이 생산하는 전력의 양이 피크타임 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는 점에서다.
하루 종일 가동되는 배터리가 '물'?
우리나라의 경우 정전보다는 출력 제한(발전 가동 중단)에서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가 드러난다. 최근 제주와 전남 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 전기가 수요에 비해 과잉 생산돼 출력 제한을 반복하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해결하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남아도는 전력으로 수전해 설비를 가동해 물에서 수소에너지를 분리 및 저장하는 PX2 기술이 대표적이다. 초과 전력을 2차전지(배터리)에 충전했다가 수요가 있을 때 출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도 있다.
이들 가운데 신(新)기술은 아니지만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기술도 있다. 전기가 남을 때 하부 댐에 있는 물을 상부로 끌어올려(펌프) 저장했다가 전력 수요가 많을 때 하부 댐으로 물을 떨어뜨려(터빈) 전기를 만드는 양수발전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양수발전은 전 세계 전력 저장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그 중 상당수가 미국에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전력 저장 공간의 필요성은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됨에 따라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양수발전의 역사는 한 세기 가까이 됐지만, 최근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따라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양수발전소 관계자는 "우리끼리는 양수발전소를 '물 배터리'로 부른다"며 "잉여 전력으로 펌프를 가동해 하단에서 상단으로 물을 끌어올리고, 그 수위가 최상단에 도달하면 배터리(상단 저수지)가 완충된다는 점에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남아도는 전기를 싼값에 사들여 상단 저수지에 저장했다가 낙차를 이용해 만든 전기를 비싼값에 되파는 과정에서 차익을 남긴다.
스페인 에너지 대기업 이베르드롤라는 최근 포르투갈 타메가 강 부지에서 양수발전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략 15억유로(약 2조1000억원)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다. 타메가 발전소 터빈의 용량은 880MW(메가와트·시간당 최대 출력으로 뽑아낼 수 있는 용량)다. 최대 24시간 동안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부 저수지에 저장되는 전력의 총량은 21GWh(기가와트시)다. 이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40만 대를 충전하거나 포르투갈의 240만가구에 하루 종일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이베르드롤라의 글로벌 벤처 및 기술 책임자인 디에고 디아즈 필라스는 "화학 배터리도 전력 저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우리는 전 세계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 용량도 3GWh로 확장할 계획"이라면서도 "배터리는 전력 생산량과 최대 용량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에서 모두 양수발전보다 규모가 작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은 통상 리튬이온 배터리는 2~4시간인 반면, 양수발전소는 24시간 풀가동이 가능하다. 로얄 런던 자산운용사의 마이크 폭스 지속가능성 부문 대표는 "배터리 제조는 자본 집약적인 원자재 산업으로 그 자체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2030년 글로벌 시장 규모 5000억달러 넘는다" 전망도
발전소의 수명이 수십년 이상으로 길다는 점도 양수발전소의 최대 장점이다. 그는 "(가정용이 일반적인 태양광 시장보다) 대규모 단지로 운영되는 풍력 시장이 커지면 배터리보다 양수발전소가 '짝꿍'으로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빅터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주립대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양수발전은 전력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줌으로써 '송배전 전력망(그리드)'의 추가적인 구축 없이도 활용도를 높이게 해준다"고 했다.
최근엔 양수발전에 가변속 기능을 더해 하루에 수 차례 저장(충전)과 출력(방전)을 반복할 수 있게 변화하고 있다. 반응 속도를 더욱 높여(1~40분) 주파수 조정에 도움을 주는 초단주기 저장장치로서의 역할도 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성과에 따라 세계 주요국들은 양수 발전에 베팅을 늘리고 있다. 중국은 2035년까지 300GW 이상의 양수발전 설비를 갖춘다는 계획을 밝혔다.
호주 연방정부는 호주 전역의 수력발전소와 댐을 터널 및 송수로로 연결해 초대형 양수 저장장치를 짓는다는 '스노위 2.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8년 완공 예정인 프로젝트에는 총 120억호주달러(약 10조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다. 스노위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말콤 턴불 전 호주 총리는 양수식 발전에 대해 "모두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최상의 설비"라고 예찬했다. 그는 최근 국제수력발전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다만 상하부 저수지를 갖춰야 하는 등 입지 조건이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초대형 부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환경단체와 기존 주민 등의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베르드롤라가 타메가 발전소를 짓기 위해 끌어다 쓴 대출금 규모만 6억5000만유로에 달한다. 무엇보다 인허가, 규제 절차 등을 고려하면 완공까지 5~10년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은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해친다. 이베르드롤라의 필라스는 "100년 가까이 된 기술이지만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미래 기술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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