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아르헨, 새정부 출범 후 첫 파업
"국민이 무슨 잘못"·"이대로는 안된다는 걸 말하려고 나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저는 이 전에 단 한 번도 이런 투쟁에 참여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오르는 물가에 정말 먹고 살길이 막막한데, 우리에게 어쩌란 말인가요"
"평범한 가정의 주부"라는 마리아(52) 씨는 24일(현지시간) 난무하는 과격한 구호와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내 나라는 팔 수 없다'라고 적힌 피켓과 아르헨티나 국기를 들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한복판에 비교적(?) 조용하게 서 있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남반구 아르헨티나의 더운 열기에 그는 이따금 땀을 닦으면서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다, 눈물을 보이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마리아 씨는 "저는 정치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서 "물가 상승은 언제나 있었지만, 현 정부 정책을 보고 있자니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 포함, 식구 4명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최대 노동자단체인 전국노동자총연맹(CGT)과 아르헨티나자치노동자연맹(CTA-A), 아르헨티나노동자연맹(CTA-T) 등 3개 단체가 전국 각지에서 조직한 총파업이 이날 정오부터 12시간동안 진행됐다.
지난달 10일 아르헨티나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0일도 채 안 돼서 처음으로 대규모 파업이 벌어진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주부, 교사, 학생, 은퇴자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업 참여자들은 국회 앞을 집결지로 삼았는데, 집결지까지 가는 그 길은 멀고도 험했다.
"차도를 침범하면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한다"는 정부의 엄포에 시민들은 좁은 인도에 밀리고 치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늘어난 인파에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도 중간중간 있었다.
국회까지 동행한 역사 교사 마릴리나(47) 씨는 366개 규제 철폐를 한꺼번에 모은 '메가 대통령령'과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 처리를 추진하는 밀레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예컨대 교육 부문의 경우 졸업 전 모든 과정에 대해 시험을 봐야 한다는데, 이건 시급한 사안도 아닌 데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축구팀 유니폼을 입은 후안(63)과 엘사(79)씨는 "노조원 아닌 시민의 권리 주장을 위해" 총파업에 동참했다고 강조하며 "밀레이가 배격하려고 한 카스타(기득권을 의미)가 우리 같은 은퇴자들과 유리지갑의 노동자라니 기가 막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이번 총파업에는 이례적으로 중소상공인 단체(MP 25M)도 동참했다.
이 단체 소속 카를로스(69) 씨와 다니엘(69) 씨는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도, 2015년 출범했던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권 때에도, 무분별한 시장 개방은 국내 중소기업 줄도산으로 이어진다는 학습을 한 바 있다"며 "그런데도 밀레이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이른 실패를 반복하려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터뷰를 옆에서 듣던 한 시위자는 "밀레이는 중소기업가들도 파업에 참여하게 만드는 기적을 만들었다"는 씁쓸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는 한국 야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나온 교사 크리스티안(36) 씨는 "제 주변에 많은 동료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국민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토로했다.
후안 파블로(43) 씨와 나탈리아(50) 씨 등 정부 공무원들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독단적인 국정 운영은 분명히 민주주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총파업은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64) 정부 시절인 2019년 5월 이후 5년 만에 전국 규모로 조직됐다.
총파업 주최 측은 예초 "100만명이 참여할 것"이라고 예고했으나, 정부의 불법행위 엄단 의지와 '큰 팻말만 들어도 구금할 수 있다'는 시위 프로토콜 시행 등으로 실제 참석 인원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CGT 등은 "노조원 30여만명에 더해 일반 시민까지 대거 함께하며,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 (총파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현지 일간지 페르필은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로마 등지에서도 아르헨티나 총파업 취지에 동참한 연대 시위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총파업 참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와는 관계 없이 '소통을 전제로 한 개혁'을 요구하는 아르헨티나 민심은 정부를 향한 선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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