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김건희’와 ‘사랑꾼 윤석열’만 남았다

황준범 기자 2024. 1.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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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빈 방문과 프랑스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1월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편으로 귀국하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황준범 정치부장

어지러운 2박3일이었다. 20년 지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각각 정부와 여당의 수장으로 마주한 지 한달도 안 돼 ‘신뢰와 지지 철회’를 꺼내며 정면충돌한다? 명품 백 수수에 관해 ‘김건희 여사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대위원을 방치했다고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다? 그러곤 이틀 만에 봉합 분위기로 간다?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여권 인사들에게 “약속대련 아니냐”고 몇번을 물었다. 대답은 단순하다. “그건 윤 대통령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고, “복잡하게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 여사가 여당에서 자신의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에 화났고, 이를 단속하도록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주의하라고 해도 말을 안 듣자 경고 수위를 높였으며, 주변에서 ‘이러면 총선 망한다’며 말리니 일단 멈췄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본 그대로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우리 내부에서 궁중암투나 합종연횡하듯이 사극 찍고, 삼국지 정치 하지 말자”고 했는데, 사극 뺨치는 드라마틱한 일이 여권 내부에서 벌어졌다. 차라리 총선 승리를 위해 당-정 차별화와 한동훈 강화를 의도한 쇼였다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낯 뜨겁다. 승자는 없다. 권력자들의 치부와 약점만 고스란히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 명분도 인기도 체통도 다 잃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직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던 태도는 실종됐다. 명품 백 수수 등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지만, 윤 대통령은 여당이 민심을 입에 올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리 앙투아네트 비유에 충격받았다는 김 여사 호위가 최우선이었다. “윤 대통령의 김 여사 사랑은 진심”이라는 말이 용산 주변에 넘친다. 이준석, 김기현에 이어 한동훈까지, 여당 대표를 대통령 마음대로 세우고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제왕적 태도와 즉흥적 스타일도 부각됐다. 한 위원장 흔들기에 의원들 동조도 거의 없어, 여당 내 확연하게 줄어든 윤 대통령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한동훈 위원장. 꺾이지는 않았으되, 보여준 것도 딱히 없다. 그는 명품 백과 관련해 “김 여사가 사과해야 한다”거나 “윤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겨우 “몰카 공작”과 “국민 눈높이”를 함께 말했을 뿐인데 덜컥 사퇴 요구를 받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엄정 수사하라’고 촉구한 것도 아니고, ‘용산은 공천에 개입할 생각 말라’고 공개 선포한 것도 아니다. 억울할 성싶다. 윤 대통령과 편하게 직언이 통하는 사이도 아닌 거로 판명 났다. 어설프게 김경율 비대위원 ‘사천’ 논란을 자초해 “이기는 공천”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용산에 꼬투리를 제공했다. ‘홀로서기’를 못 하고 고개를 숙인다면, 중도 확장에도 실패하고 비대위원장으로 나선 이유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여사.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절대자임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가 한 위원장과 김 비대위원에게 ‘서운함’을 나타내자 윤 대통령은 ‘분노’로 이행했고, 구원투수로 투입된 집권당 대표가 휘청했다. 김 여사 사안에 여권의 대응은 유별나다.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이 제기됐을 때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업 백지화” 선언으로 급발진했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특검법은 높은 찬성 여론에도 대통령과 여당은 극구 거부했다. 지난해 국가안보실장·의전비서관·외교비서관 일괄 교체 등 석연치 않은 인사 때마다 김 여사 관련설이 돌았다. 이번 윤-한 충돌 사태는 드러내놓고 ‘김건희’ 갈등이다. 대통령 배우자 리스크가 국정 운영에 이토록 큰 변수였던 적이 있었던가. 4월 선거가 ‘김건희 총선’이 될 판이다.

스릴러와 멜로, 코미디가 뒤섞인 사흘 난장판의 끝에, ‘사랑꾼 윤석열’만 남았다. 해결된 건 없고, 여권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정치 경험 전무한 두 검사 출신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으로 서 있다는 사실은 엄연하고, 여권 내부에서 ‘김건희 성역’은 더 단단해졌으며, 공천이라는 본게임이 남았다. 이해 불가한 상황을 얼마나 더 봐야 할까. 궁중암투 그만하시고, 국민 보고, 동료 시민 보고 가시길 바란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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