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세기말 견뎌낸 두 여성이 움켜쥔 용기 '세기말의 사랑'
'한 세기의 끝' '몰락해 가는 때'를 의미하는 '세기말'과 '사랑'.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단어로 시리게 아름답고, 울컥하게 귀여운 영화가 탄생했다. '69세'로 걸출한 감독의 탄생을 알린 임선애 감독이 새롭게 선보이는 '세기말의 사랑'은 한 세기를 견뎌낸 사람들이 한 해를 견뎌낸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과 용기로 가득찬 새해 인사다.
1999년 12월 31일. 세상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영미(이유영)는 남몰래 짝사랑하던 도영(노재원)을 향해 인생 최대의 용기를 발휘한다. 그러나 2000년 1월 1일. 돈도 사랑도 모두 날린 채 새천년을 맞이하는 순간, 영미 앞에 도영의 마누라라는 낯선 여자 유진(임선우)이 나타난다.
'69세'로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떠오른 임선애 감독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던 1999년, 짝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영미에게 짝사랑 상대의 아내 유진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뉴 밀레니엄 드라마 '세기말의 사랑'으로 돌아왔다.
'세기말의 사랑'은 '69세' 임선애 감독 작품답게 따뜻함과 다정함이 깔려 있다. 임 감독은 전작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고된 삶, 인생의 파고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내며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위로와 용기, 희망을 보여줬다. '세기말의 사랑' 역시 지난날에서 살아남아 다시 앞을 향해 살아가는 두 여성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용기, 희망을 전달한다.
영화는 초반 20분가량, 세기말이라 불렸던 1999년 12월 31일 전 영미의 삶을 흑백으로 보여준다. 흑백 속 영미는 수많은 짐을 양어깨에 얹고, 수많은 상처를 품에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런 영미의 삶은 색을 찾아볼 수 없는 흑백의 화면과도 같다.
흑백의 삶 속, 영미는 카메라의 중심에 놓이지도 못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채 자신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영미는 주눅들어 있고, 삶에 지쳐 있다. 장례식장에서도 영미의 얼굴을 비춰야 할 순간조차 카메라는 그의 감정이 담긴 눈 대신 입 모양만 비출 뿐이다. 이러한 흑백으로 된 영미의 삶 속에서도 나란히 포커스 맞춰질 때가 있다. 바로 짝사랑하는 도영을 바라보고 그와 함께 있는 순간에서다.
자신의 외모가 혼란스럽다고 해서 '세기말'이라 부르는 사람 속에서 영미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순간은, 세상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지구 멸망의 시점인 세기말을 앞둔 그때다. 그렇기에 세기말 이후 영미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이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의 컬러로 전환되는 것은 여러모로 유의미하다.
흑백으로 그려졌던 것처럼 영미의 세상은 어쩌면 1999년 12월 31일 만이 아니라 늘 '세기말'이었을지 모른다. 세상이 멸망이라 부르는 때에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모두가 세기말이라 부르는 자신도 멸망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이자 짝사랑 상대 도영의 아내라고 하는 유진을 만나면서 또 다른 파도를 맞이한다.
그러나 변곡점을 지난 영미의 세상은 애초에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세상의 세기말, 영미의 세기말 이후 영화는 컬러로 전환한다. 세기말이 누군가에게는 '종말'의 의미였을지 몰라도, 적어도 영미에게는 힘들었던 흑백의 세상에 종말을 고하고 새 세상을 맞이한다는 의미였을지 모른다. 세기말이란 단어로 용기를 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순서를 바꿔서 말하자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영미와 유진의 지난 삶은 비극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런 둘을 마냥 비극적인 톤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세기말에 어울리는 원색 톤이 가득한 화면, 그리고 그들 안에 숨어 있는 희극적인 순간들을 포착해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그들의 삶이 마냥 비극이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 그리고 멀고도 가까운 스크린을 통해 둘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그들의 삶을 비극으로 보지 않게끔 만든다.
영미는 자신을 향한 어떠한 악의에도 받아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이를 향해서도 모질게 굴거나 동일한 방식으로 되돌려 주지 않는다. 그런 영미는 사실 영화 속 그 어느 인물보다도 강하다. 자신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인 유진은 얼핏 보기에는 나약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유진은 타인이 자신을 내려다볼지언정 스스로 자신을 아래에 두지 않는다. 그런 유진의 인생 역시 영미 못지않게 굴곡지고 처절하다. 그러나 유진은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주저 없이 그 모든 후회와 반작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렇기에 유진 역시 강인하다.
앞서 말했듯이 세기말을 지나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는 영미와 유진의 모습은 컬러다. 세기말을 지난 영미가 기억하는 과거도 어느새 흑백이 아닌 컬러로 구현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미와 유진은 검은색 옷을 하나씩 입고 있지만, 검은색은 오롯이 그들을 표현하는 색이 아니다. 알록달록한 또 다른 색을 입은 그들의 모습 역시 희망과 용기를 말한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영미의 위치도 중심 밖으로 밀려난 흑백에서 중심 안으로, 나란한 위치의 컬러로 바뀐다. 점차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들어오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아내는 방식이다.
비장애인 영미와 장애인 유진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카메라가 어떻게 어느 각도로 두 사람을 비추는지에서조차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지 않고 우리 눈높이에 맞춰 유진을 비추며 자연스럽게 장애인을 향한 우리의 눈이 위치하는 자리를 바꿔나간다. 여기에 임선애 감독의 세심함이 녹아 있다.
영화에서 이유영과 임선우는 영미와 유진 그 자체로 다가온다. 결은 다르지만 모두 인생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어낸 두 인생을 두 배우 역시 온몸으로 그려냈다. 그렇기에 영미와 유진의 이야기에, 그들의 감정에 푹 빠진 채 어느덧 엔딩에 다다르게 된다. 두 여자가 사랑하는 도영 역의 노재원 역시 안정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입고 관객들을 세기말의 사랑으로 초대한다.
'69세'에서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노년의 주인공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향한 희망과 용기를 건넸던 임선애 감독은 세기말을 통과한 두 젊은 주인공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세기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건넸다. 비슷한 듯 다른 색깔로 끊임없이 다정하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임선애 감독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116분 상영, 1월 24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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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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