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위스키가 5억...경기 침체에도 끝 모르는 설 선물 최고가 경쟁
‘설 명절 최고가(最高價) 선물’ 자리를 두고 편의점 프랜차이즈가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지난해 추석에는 3억3000만원짜리 백화점 와인 선물세트가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설에는 5억원짜리 편의점 위스키가 이 자리를 뺏었다. 경기가 움츠러드는 와중에도 6개월 만에 2억여원이 뛰었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주요 유통채널은 지난 22일부터 올 설 맞이 선물 예약 판매를 마치고 본(本)판매에 돌입했다. 본 판매에 들어서면 이들은 서로 올해 최고가 선물을 자랑하듯 앞세운다.
올해는 백화점들을 제치고 편의점 CU가 내놓은 스코틀랜드 위스키 ‘윈저 다이아몬드 쥬빌래’가 가장 비싼 선물로 뽑혔다. 이 상품 가격은 5억원이다. 올해 설뿐 아니라 역대 주요 유통채널에서 공개한 선물세트 가운데 가장 고가다.
40밀리리터(ml) 위스키 한 잔에 2900만원 정도다. 스포이드 1ml에 20방울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1방울에 3만6000원이다.
이 위스키는 2009년 전 세계에 단 12병만 선보였다. 당시 판매가는 3억원으로 책정했다. 서울 지역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이 위스키를 유통한 디아지오코리아는 “위스키 제조 원가만 6만파운드”라고 밝혔다. 그 무렵 환율 기준으로 환산하면 1억5000만원이다. 이후 15년이 지나면서 3억원이었던 몸값은 5억원으로 뛰었다.
CU는 15년 전 만든 12병 가운데 딱 한 병을 확보해 이번 설 선물로 내놨다. 설 선물 카탈로그에는 ‘MD(상품 기획자) 추천’이라는 표시도 달았다.
보통 초고가(超高價) 위스키는 30년 혹은 40년처럼 시간과 얼마나 오래 싸웠는지 내세운다. 그러나 이 위스키는 얼마나 오래 묵힌 원액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전설적인 마스터 블렌더 더글러스 머레이가 숙성도와 상관없이 맛만 보고 고른 원액으로 만들었다.
“향은 풍부하고 순하다.
물과 섞으면 시원한 과일의 상큼함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강한 향이 올라오지만
잠시 뒤 부드러운 크림향과
바닐라향이 들어간 커스터드 코끝을 맴돈다.”
'윈저 다이아몬드 쥬빌래' 시음 프로파일, 더글러스 머레이, 2009
마스터 블렌더는 다른 장소, 다른 참나무통에서 각각 숙성한 여러 위스키 원액을 섞어서 개성 있는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머레이는 디아지오에서만 51년을 일한 위스키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지난 2022년 이 자리에서 은퇴했다. 매년 일정 수량 나오는 다른 제품과 달리 이 위스키는 12병이 사라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GS25는 반대로 시판하는 위스키 가운데 가장 오래 숙성한 제품을 꺼내 들었다. 온라인 주류 판매 플랫폼 와인25플러스에 MD 픽(pick)으로 선보인 고든 앤 맥페일 제너레이션 글렌리벳 80년이 그 주인공이다.
현재 시중에 공식적으로 파는 위스키 가운데 80년 이상 묵은 원액만 들어간 제품은 이 제품이 유일하다. 2021년 국내에 들여왔던 80년 묵은 세계 최고령 위스키 ‘제네레이션스 80′과 나이가 같다. 가격은 CU 윈저 다이아몬드 쥬빌래 딱 절반인 2억5000만원이다.
또 다른 편의점 프랜차이즈 세븐일레븐은 ‘누구나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술’이라며 4800만원짜리 스코틀랜드 위스키 달모어를 준비했다.
값 비싼 위스키는 오래 전부터 갈비·정육세트만큼 명절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크고 무겁지 않은 데다, 브랜드 인지도까지 높아 웃어른에 선물하기 좋았다.
하지만 수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위스키는 올해 설을 앞두고 처음 등장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추석 CU 선물세트 가운데 가장 비싼 위스키는 3400만원짜리 글렌그란트 60년이었다. 6개월 사이 34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최고가가 15배 올랐다.
동시에 명절을 앞두고 구하기 어려운 초고가 주류를 얼마나 확보하는지 여부가 편의점 MD(상품기획자)를 평가하는 핵심 역량으로 떠올랐다.
다만 이렇게 어렵게 구한 초고가 위스키가 모두 팔리진 않는다. 오히려 팔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추석에 선보였던 상품은 올해도 고스란히 카탈로그에 실렸다.
애초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이들 초고가 위스키는 ‘안 팔려도 그만’인 상품에 가깝다. ‘편의점도 백화점 못지 않게 그럴 듯한 명절 선물을 판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미끼 상품이다.
편의점 본사도 목돈이 드는 초고가 위스키를 직접 사들이지 않는다. 수입판매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개·유통만 한다. 재고나 현금 흐름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한 판매 방법이다. 카탈로그를 본 소비자가 구매 의사를 밝히면 그 때 편의점에서 주문을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찾는 사람이 드문 편의점 프랜차이즈 ‘그들만의 경쟁’에 일부 소비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명절을 앞두고 편의점 같은 유통업체가 펼치는 고가 마케팅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기 쉽다”며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도 통념을 넘어선 가격은 폭리로 비춰 부정적인 인식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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