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빈곤시대]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100만원 내야 하는 아파트 살기 어려워
생활비·임대료 내고 남는 돈 많아야 57만원
청년들 “내 집 장만 위한 저축 어려워”
부모 지원 여부 따라 청년층 자산 격차 커져
“월급의 3분의 1 정도가 월세랑 관리비로 나가는 것 같아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는 60만원이라 부담은 조금 되는데, 서울에 있는 방 2개짜리 빌라를 이 정도 가격에 구한 건 굉장히 저렴한 편이에요.”
서울 노원구에 사는 최연지(가명·33세)씨
“직장 근처인 수원에 1억40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했어요. 월세가 아니라 매월 나가는 돈은 많지 않아 부담은 적어요. 그런데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빨리 오르는 집값을 생각하면 언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사는 김성진(가명·32세)씨
청년층이 마주한 ‘부동산’은 뛰어넘기 어려운 거대한 장벽이다. 성인이 되며 꿈꿔온 나만의 보금자리 마련은 2020~2021년 부동산 가격 폭등 시기를 거치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 돼버렸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15년을 넘게 모아야 집주인이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청년층 10명 중 8명은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임차인으로 주택 구입을 위해 저축을 하는 대신 보증금을 마련하고 월세를 내기도 급급하다.
집값이 빠르게 오르다 보니 부모의 지원을 받은 청년층과 그렇지 못한 청년층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부모의 지원이 있는 청년층은 빠르게 자산을 형성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청년층은 집 마련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투자’를 하며 빚에 허덕이고 있다.
◇ 서울 평균 월세 69만원…청년 79% “임대료 부담”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가구의 평균 보증금은 1800만원, 월세 37만7000원이었다. 전세로 사는 경우 평균 보증금은 1억6324만원으로 집계됐다.
지역을 서울로만 좁히면 매달 40만원의 월세를 지불하는 것도 싸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청년층은 최소 69만원의 월세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서울 연립·다세대·원룸 평균 월세는 69만원이다. 오피스텔 월세는 평균 72만원이며, 아파트의 월세금액은 102만원이다.
서울에서 면적 33㎡ 이하 원룸의 월세가 가장 비싼 곳은 강남구로, 평균 월세가 91만원에 달했다. 이어 ▲용산구 86만원 ▲서초구 85만원 ▲중랑구 78만원 ▲금천구 76만원 ▲동대문구 75만원 ▲성동구 75만원 ▲영등포구 73만원 등이었다. 가장 월세가 싼 지역은 노원구 43만원으로, 서울 자치구 중에서 유일하게 월세가 40만원대인 곳이었다.
높은 주거비는 청년층에게 부담이 된다. 청년가구의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중위수 기준)은 17.4%로, 일반가구 16%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이는 주거비 부담이 일반 가구에 비해 크다는 의미다. 청년가구의 79.6%는 임대료와 대출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청년가구는 생활비와 임대료를 제외하면 여유자금이 많지 않다. 국토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가구는 지난해 평균적으로 월소득 288만원 중 생활비로 162만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활비에는 식비, 주거관리비, 의류비, 교육비, 보건의료비 등이 포함되며, 주택임대료나 대출 원리금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서울 원룸에 사는 청년이라면 월세를 내고 나면 24만~57만원의 여윳돈만 손에 남게 되는 셈이다. 만약 보증금에 대출이 있는 경우라면 이마저도 모으기 어려워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 부모 지원 없으면 ‘영끌’로 집 구입
주거비 부담이 치솟으며 ‘내 집’을 마련하려고 해도 청년층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돈을 모아 월세에서 전세로, 또 자가로 집을 이사하는 게 당연할 일이었다. 하지만 청년가구에게 돈을 모아서 좀 더 넓고, 주거환경이 좋은 집에 산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이야기다. 주거 사다리가 사라진 것이다.
청년가구는 직전 주택이 전세인 경우 현재 전세로 이사(14.0%), 월세인 경우 현재 그대로 월세로 이사(44.4%)한 경우가 많았다. 계약기간이 만료돼 비슷한 수준의 집으로 이사를 갈 뿐, 점유형태 측면의 주거 상향 이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청년가구의 주거 상향 비율은 20.3%로 일반가구(28.6%)에 비해 낮았다.
청년가구는 자가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월세로 주거 하향 이동을 한 경우도 4.6%에 달했다. 주택가격이 폭등하면서 전·월세로 밀려나는 청년층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청년 가구의 임차 거주 비율이 82.5%로, 201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가 보유율은 13.2%에 그쳤다.
청년층은 지금이 아니면 집값이 더 올라가 다시는 주택을 구입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23에 따르면 주택을 소유한 청년은 176만6000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 중 11.8%였다. 이들의 대출잔액 중앙값은 1억4150만원으로, 주택을 소유한 중장년층과 노년층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청년들이 더 많은 빚을 내 주택을 구입했다는 의미다.
청년층의 부채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대 이하 가구의 부채보유액 증가율은 2018년에서 2021년 사이 93.5% 증가했다. 30대 역시 39.8% 늘어났다. 40~50대의 부채 증가율이 22.0%에 그쳤다는 점에서 청년층의 부채가 굉장히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부모 찬스’가 있는 청년층은 집 구하기가 한층 쉬운 게 현실이다. 국무조정실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함께 발표한 ‘2022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63.7%는 주택을 구입하거나 보증금을 마련할 때 부모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이 거주하는 주택 중 자가로 거주하는 가격이 지난 10년간 평균 1억원 이상 증가했다”라며 “전세보증금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데, 이는 부모 지원이나 대출 없이 안정적 점유형태를 자력으로 마련하는 데 근원적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라고 설명했다.
◇ 청년층 “주거 위한 금융 정책 더 필요해”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층이 한정적이다 보니 청년가구의 절반가량은 정부의 주거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주거실태조사에서 청년층의 55.6%가 정부의 지원 필요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집값이 비싼 수도권 지역의 청년가구로 대상을 좁히면 정부의 주거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8.5%로 올라간다.
청년가구는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으로 ‘전세자금 대출지원’(38.3%)을 꼽았다. 이어 ‘월세 보조금 지원’(22.1%), ‘주택 구입자금 대출지원’(20.3%) 순으로 응답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거주 청년으로 나눠보면 수도권에 사는 청년층은 필요한 정책 2순위로 월세 보조금 지원(23.8%)을 응답한 반면, 비수도권 거주 청년은 주택 구입자금 대출지원(23.7%)을 원했다.
☞ [청년빈곤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학자금 대출에 빚투, 결국 불법사채로… ‘빚 수렁’ 벼랑끝 2030
② 출발점 달랐던 두 청년, 10년 후 모습은… 빈곤 대물림 겪는 2030
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⑥ 20대 금융이해력 49점… 범죄·사기 노출된 금융문맹 청년층
⑦ “한국 청년은 왜 가난한가요?”… 촘촘한 청년 지원책 갖춘 독일·싱가포르
⑧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 끝나… 복잡한 청년 문제 맞춤형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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