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신당, 한국형 다당제의 시작일까
지난해 12월27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을 탈당한 데 이어, 1월11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준석 신당은 ‘개혁신당’, 이낙연 신당은 ‘새로운미래’라고 이름을 정하고 창당을 완료했거나 추진 중이다. 앞서 이재명 대표 체제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민주당 의원 3명(김종민·이원욱·조응천)도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 3명은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정태근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1월14일 ‘미래대연합’ 창당준비위원회를 열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서 활동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과 정의당을 탈당한 류호정 의원(1월18일 현재),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해 12월 ‘새로운선택’을 공동으로 창당했다. 앞서 양향자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지난해 8월 ‘한국의희망’이라는 당을 만들었다. 이 5개 그룹(개혁신당·새로운미래·미래대연합·새로운선택·한국의희망)을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아닌 제3의 세력이라는 의미로 ‘제3지대’라고 부른다(〈그림〉 참조). 각종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30% 안팎에 달하는 상황에서, 제3지대가 총선 전까지 ‘하나의 당’을 만들 수 있을지가 다가오는 4월 총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신당 중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건 이준석의 개혁신당이다. 1월6~8일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준석 신당(개혁신당)은 13.9%, 이낙연 신당(새로운미래)은 8.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개혁신당의 천하람 최고위원은 “제3지대 다른 세력과 합칠 경우 지지율 합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이번 총선에만 ‘한 철 장사’ 하려는 게 아니다. 산업화·민주화 이후 새로운 시대의 어젠다(의제)를 제기하는 정당이고 싶은데, (이낙연 전 대표 등과 하나의 당을 만들게 되면) 그런 측면이 흐릿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지지율 합산 효과가 있는지 자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하는 듯하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세력 간 연대, 다시 말해 1+1이 2가 아닌 것으로 나온다. 결국 모든 것은 데이터를 보고 움직인다(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UPI 뉴스〉 1월11일)."
그래서 현재까지는 이준석 대표가 이낙연 전 대표와 거리를 두고, 이낙연 전 대표는 자세를 낮추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 “‘엄중 낙연’이라는 본인의 이미지를 바꾸지 않고는 우리와 함께하기 힘들다”라는 이준석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이낙연 전 대표는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좋은 충고다. 저도 걷어내고 싶다. 잘 안 떨어져서 그렇지”라고 화답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준석 대표의 지적에는 “저도,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잘못했다고 인정했다”라고 말했다(이낙연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총리를 지냈다).
이준석 대표는 최근 이낙연 전 대표와 방송에서 대담을 했다며 “타협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선명한 차이도 발견됐다”라고 말해, 여전히 거리두기를 이어갔다. 이낙연 전 대표의 새로운미래 창당 발기인대회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는 제3지대 대표자들이 각자의 정당 내에서 기득권에 맞서 싸워왔다며 한 명 한 명 호명하면서 이낙연 전 대표만 호명하지 않기도 했다.
“‘한 철 장사’ 하려는 게 아니다”
이낙연 전 대표가 그간 민주당 내에서 충분히 싸운 끝에 탈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 안팎에서 시각이 엇갈린다. 같은 민주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속해 있는 미래대연합도 아직까지는 이낙연 전 대표의 새로운미래와 하나의 당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지금 같이한다고 하는 것이 국민들이 볼 때 뭐라고 생각하겠냐. 쟤네 왜 민주당에서 나와가지고 결국에는 이낙연 대표 밑에 들어가려고 나왔나 보네? … 아닙니다, 절대로(이원욱 미래대연합 의원, CBS 라디오 인터뷰).” 이낙연 전 대표 쪽 신경민 새로운미래 국민소통위원장은 “설명을 들어도 이유가 잘 이해되진 않지만, 이낙연 전 대표는 그쪽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종국적으로 종착지에서 (미래대연합과) 만날 것을 의심하진 않는다. 가는 길이 조금 복잡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미래대연합은 자신들이 제3지대 5개 그룹을 잇는 ‘플랫폼’이 되겠다고 자임했다. 특히 이준석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를 연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두 사람과 김종민 미래대연합 의원이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티타임을 갖기도 했다. 미래대연합은 현재 제3지대 5개 그룹에서 현역 의원을 가장 많이(3명) 보유하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에 합류한 허은아 의원은 국민의힘을 탈당하며 의원직을 잃었고, 새로운선택에 합류한 류호정 의원도 정의당을 탈당해 의원직을 잃을 예정이다(두 사람 다 비례대표다). 현역 의원의 수는 향후 출범할 신당이 기호 몇 번을 부여받을지 결정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 만약 신당이 6석 이상을 확보하면, 다음 총선에서 기호 3번(현재 정의당)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기여한 세력일수록 통합 논의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단독으로 유의미한 숫자의 현역 의원을 확보하게 될 경우에는, 미래대연합과 함께해야 할 유인을 덜 느낄 수 있다. 현재 양당의 공천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제3지대 중 어느 그룹이 현역 의원을 많이 확보할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결국 공천이 마무리되는 2월이 되어야 제3지대의 폭발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친(親)이재명계가 비(非)이재명계 의원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을 뜻하는 이른바 ‘자객 출마’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지금 시점에서 몇 명이나 탈당할지 정확히 얘기할 수 없지만, 정치인들은 공천을 안 주면 자신의 논리를 세워서 새로운 정당으로 출마하려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더군다나 공천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당장 (탈당에) 정당성이 확보되고 ‘좋다, 가자’ 하면서 다 나가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 비윤석열계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현역 의원 몇 명이 제3지대에 합류할지는 지엽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예전 바른미래당 때에는 유승민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지분을 갖고 싸우다 잘 안 됐다. (현재 양당의)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이 (신당에서) 지역구에 나간들 당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관건은 비례다. 신당은 비례대표 정도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데, 이걸 누가 몇 명 가져가느냐의 싸움이 될 거다. 보통 그런 데서 타협이 잘 안 된다.이준석 대표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비례에서 많이 양보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할 거라 본다.”
여기서 이준석 신당이 처한 딜레마를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득표한 한 명만이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제3지대 신당 후보가 지역구에 출마해도 거대 양당에 밀려 당선되기 어렵다. 그나마 연합해야 가능성이 올라가는데, 이러면 다른 세력과 비례대표 지분을 나눠야 한다. 이 때문에 이준석 대표는 ‘지역구는 같이, 비례는 따로’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른 세력들은 이에 부정적이다. “정당법에 그런 내용이 없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이석현 새로운미래 공동창당준비위원장)” “사실상 비례 위성정당을 하자는 얘긴데, 불가능하다. 정치는 명분으로 하는 건데 명분이 없지 않나(김종민 미래대연합 의원)”. 정당은 따로 하되 지역구에서 야권 단일화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당을 하나로 합치는 이상, 비례대표 명부만 따로 구성할 방법은 없다. 그렇게 하려면 비례대표만을 위한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소수 정당을 더 많이 국회에 들여보내자는 취지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난 총선 때 도입됐다. 어떤 정당이 정당투표에서 10% 득표율을 얻고 지역구 의석은 6석만 얻었다면, 국회의원 300석 중 10%인 30석에서 모자라는 의석(24석)의 절반인 12석을 채워주는 제도다. 부족분의 절반만 채워준다고 해서 ‘준연동형’이다. 10%보다 더 득표했더라도 최대 30석까지만 배분해주도록 한시적으로 캡(상한)을 씌웠다. 그런데 만약 정당투표에서 10%보다 더 많이 득표한 정당이 위성정당을 따로 만들어서 비례대표 후보를 낸다면, ‘30석’이란 한계가 있는 경우에 비해 의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배분하자는 제도의 취지를 해킹한 시도라고 비판받은 바 있다. 이렇게 해서 지난 총선에서 등장한 비례 위성정당이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이었고,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했다가 기본소득당으로 돌아간 의원이 용혜인 의원이다.
용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녹색당, 열린민주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 진보당, 조국 전 장관이 추진하는 신당, 민주당 등에 ‘개혁연합신당’을 꾸려 ‘반윤석열 연대’를 하자고 제안했다. 용 의원은 이것이 지난 총선의 비례 위성정당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대해, 새로 꾸려질 22대 국회에서 완수해야 할 개혁 과제를 합의하는 조건으로, 민주당 중심이 아닌 수평적 연합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그때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 의원 제안에 대해 “위성정당 제도를 방지할 수 없을 때 불가피한 선택지 중 하나” “논의를 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비명계 민주당 의원은 “어떤 형식으로 포장하든지 간에 위성정당이다. 애초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에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위성정당도 막지 못한다면, 차라리 병립형(예전처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따로 뽑는 제도)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길게는 2월 하순까지 이어질 선거제 개편 논쟁에 따라 제3지대를 포함한 각 세력과 정당의 연합 전략이 출렁일 수 있다. 만약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비례 위성정당을 허용한다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으로 쏠리는 힘이 더 강해진다.
지역구는 같이, 비례는 따로?
이준석 대표는 제3지대가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는 전략도 닫아두지는 않은 상태다. 단, 이낙연 전 대표의 ‘파격’을 요구하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이번 총선에 불출마하기로 한 데 대해 이준석 대표는 “사심 없는 도전의 결과물이 불출마인 건 약간 제 문법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지역구 출마를) 하시면 선봉에 서셔야 한다”라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제3지대 신당으로서 가장 어려운 과제인 지역구 출마를 제안한 것이다. SBS 라디오 인터뷰에선 아예 호남을 콕 집어 출마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의 고향은 전남 영광이다. 이에 대해 이낙연 전 대표 측 신경민 새로운미래 국민소통위원장은 “본인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밀알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고, 그것을 번복할 생각이 옆에서 보기엔 아직 거의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재로 이준석 대표와 지난해 11월 회동한 바 있는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는 1월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3지대 신당의 혁신은 단일 정당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보듯, 현재 언급되는 제3지대 5개 그룹은 아직 ‘단일한 정당’이 아니다. 미래대연합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인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새로운선택이 통합의 파트너이긴 하지만, (새로운선택에 합류한 정의당 탈당파인 류호정·조성주는) 당내에서 의견이 달랐다. 정체성 정치를 해온 분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5개 그룹 중 이낙연 전 대표의 새로운미래, 민주당·정의당 탈당파가 포함된 미래대연합, 금태섭·류호정·조성주의 새로운선택이 온전히 합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들과 이준석의 개혁신당 간 연대로 단일 정당이 되기까진 갈 길이 멀다. 1월24일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양향자의 한국의희망은 합당을 선언했다. 이낙연의 새로운미래와 민주당·정의당 탈당파가 포함된 미래대연합은 창당대회를 앞두고 통합을 위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종전의 제3당 흐름인 민주노동당(현 정의당)이나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과 최근의 제3지대 흐름은 결이 다르다고 본다. 민주노동당, 국민의당과 같은 ‘제3의 정당’이 나타나 정치에 충격을 준 게 아니라, 거대 양당에서 튕겨져 나온 세력들이 좌판을 연 모양새여서다. 아직까지는 기존 양당 독과점 구조의 그림자이자 파생물이라는 것이다.
“당원 교육을 비롯한 정당의 체계란 그저 요식행위가 아니다. 기존 정당에 대한 반대만으로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정당이 되려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안정된 정치적 견해 구조, 그 정당을 필요로 하는 조직 기반, 그를 바탕으로 제기하는 새로운 사회적 의제가 있어야 한다. 정당의 가치와 신념 체계를 선거를 앞두고 급조하긴 어렵다.”
박 연구위원은 설령 제3지대 일부가 하나의 정당을 만들더라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 이후 대통령실 중심의 국정 운영이 계속되면서 양극화된 양당 독과점 구조가 자리 잡았다. 조기 레임덕으로 가속화될 대선 국면에서 신당이 양당 독과점 구조로 빨려 들어가는 걸 피하긴 쉽지 않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그럼에도 제3지대가 만들어낼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그는 2016년 총선부터 보수 우위의 유권자 구조 붕괴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소위 ‘박정희 보수’ ‘태극기 보수’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적 보수가 아닌 보수층 유권자들이 (2015년 국정교과서 파동 이후) 보수 블록에서 떨어져 나왔다. 당시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의 제3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후이기도 하다. 이들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집권 2년 만에 드러났고, 이 수요를 이준석 신당이 충족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준석 신당이 보수의 분화라면, 이낙연 신당 등은 어떻게 봐야 할까. 박 교수의 분석이다. “기존 보수의 거울 이미지가 지금의 민주당 또는 정의당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떨어져 나온 이낙연 신당 등은 기존 민주당 또는 정의당과 자신이 무엇이 다른지, 이준석이 대표하는 새로운 보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줄 의무가 생긴다. 지금으로선 민주당이나 정의당이든 그로부터 탈당한 이들이든, 윤석열 정부를 같이 비판하는 것 외에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더 진보적이라 할 만한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걸 얼마나 잘 설득해내느냐에 따라 정치적 지분과 발언권이 생길 것이다. 그에 따라 ‘한국형 다당제’가 출현할지 판가름날 것이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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