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석 텅 빌라”…대형 스포츠행사 비인기 종목 ‘동원령’ 여전
주민들에겐 전세버스 임차·식비 지원도
2024 겨울청소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의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등이 관람석을 채우기 위해 자체 예산을 들여 대규모 관중 동원 계획을 세운 사실이 확인됐다. 한겨레가 24일 입수한 한 지자체의 내부 문서를 보면 대회 기간 전체 관중의 절반 이상을 지역 주민과 공무원들로 채우려는 계획이 명시돼 있다. 무리하게 국제행사를 유치한 뒤 텅 빈 관중석을 채우기 위해 빠듯한 지자체 예산까지 쪼개 공무원 등을 동원하려는 모습을 두고선, 국제행사 유치가 단체장의 치적으로 여겨지던 관치 시대의 유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한겨레가 입수한 ‘강릉시 청소년올림픽 관중참여 지원계획’ 문서를 보면, 전체 관중 25만명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15만명을 강원도와 교육청, 조직위 등이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청소년올림픽 관중 일부가 공무원이나 동원된 주민일 것이란 추측은 있었지만 지자체 공문을 통해 구체적인 수치까지 확인되지는 않았었다.
세부적으로는 교육청 등이 청소년 8만명(32%)을, 강원도가 지역주민과 유관기관 등 4만명(16%)을, 중앙부처와 조직위 등이 기관·관계자 3만명(12%)을 담당하는 식이다. 지난달 7일 부시장 결재까지 받은 이 문서에서 ‘자발적 참여’로 표기한 일반 관광객은 10만명(40%)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기관들도 ‘비자발적 참여’인 동원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문서에 따라 4만명을 담당하기로 한 강원도는 도청과 16개 시·군에 각각 인원을 배정했다. 개최 도시인 강릉시와 평창군이 각각 2만1000명과 4000명, 강원도 5000명, 원주시 2400명, 춘천시 1800명 등이다. 특히 2만1000명으로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배정받은 강릉시는 이를 다시 21개 읍·면·동에서 1만2390명, 시청 56개 부서에서 3440명, 50개 유관기관·단체에서 5170명을 충당하겠다는 세부 추진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충당한 인원은 20일 1127명, 21일 3082명, 22일 2019명 등 청소년올림픽이 끝나는 2월1일까지 경기 날짜별로 배정됐다.
이 문서는 또 21개 읍·면·동에서 참여하는 주민 1만2390명을 태워 나르기 위해 버스 임차비로 1억4400만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시청 공무원들은 배정된 날짜별로 ‘부서 직원의 4분의 1’이 경기를 관람하도록 했으며, 경기를 관람한 직원에게는 ‘상시학습 시간 인정’이라는 혜택도 제공하는 것으로 돼 있다.
강릉뿐 아니라 강원도 내 다른 시·군도 유사한 방식으로 공무원과 주민 등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 철원군에서 입수한 ‘청소년올림픽 관람지원 계획’을 보면, 23일부터 31일까지 모두 네차례에 걸쳐 780여명의 공무원과 주민 등이 경기장을 찾을 계획이다. 이 가운데 각종 사회단체 회원과 이장협의회 소속 주민은 600명으로, 이들이 버스를 타고 오가고 식사를 하는 데만 2364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에서 400명을 배정받은 양구군도 오는 28일 버스 10대를 동원해 단체로 경기를 관람할 예정이다. 주민 320명을 위한 버스 임차비와 식비 등에 1472만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직원 80명에겐 출장여비 300만원이 지급된다.
행사에 동원되는 공무원들은 불만이다. 박지원 전국공무원노조 강원지역본부 정책국장은 “정치인인 단체장의 치적을 위해 국제행사를 유치한 뒤 공무원을 동원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자체 등은 “행사 성공을 위한 적극적 행정 지원이지, 강제 동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청소년올림픽은 아무래도 국민들의 관심이 덜한데, ‘자발적으로 오세요’라고만 홍보하면 날도 추운데 많이 오겠냐. 참여 희망자를 찾아 편의를 제공한 거지 강제로 동원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강원도 쪽도 “우리 도에서 잔치가 벌어지는데 너무 관중이 없어도 민망하니 지자체 차원에서 목표를 정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목표 관중을 채우지 못했다고 불이익을 주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청소년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지역 주민 등의 참여는 해당 지자체에서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직위에서 직접 관여하지는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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